노무현 정부 거물들 이사로 등재 ‘엔터프라이즈국 논란’…장영달 비비안 사외이사 재직에 “묘한 시선”도
2022년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 사건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민주 진영을 둘러싼 ‘대북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내민 형국이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키맨으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꼽힌다. 이 전 부지사는 정치권 활동 당시 ‘이해찬계’로 분류됐다.
이 전 부지사는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대승을 거뒀다. 열린우리당이 거대 집권여당이 될 것이 예고된 상황, 제17대 국회가 출범하기 직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열렸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과 이해찬 전 대표가 맞붙었다. 당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관악을에서 5선을 달성한 베테랑 의원이었다. 정치권에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한 상황이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전 장관이 이 전 대표를 꺾었다. 이 전 대표는 이후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로 차출됐다. 열린우리당은 제17대 국회 후반기인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내리기 직전 원내대표는 장영달 전 의원이었다. 민주당 내에서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계’ 주축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민주당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계파 중 하나인 민평련계 시초를 다진 인물은 고 김근태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제17대 총선 전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총선 이후엔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제17대 국회 후반기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전환되던 시기다. 국회의장은 4선이었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었다. 서울 노원병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그가 국회의장이 된 것은 당시 ‘지역기반’이 중요했던 정치풍토상 상당히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한 회사 이사진으로 동시에 등재됐던 사례가 있다. 이른바 ‘엔터프라이즈국 논란’이다. 엔터프라이즈국은 1997년 8월 12일 설립된 회사다. 제14~15대 국회의원 출신인 이길재 전 의원이 대표이사로 있었다. 엔터프라이즈국은 2001년 금강산에 영업점을 냈다. 금강산 온정각 및 유람선 사진관 등 금강산 관광구역 내 촬영사업을 독점하던 기업으로 알려졌다.
이사진엔 앞서 언급한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근태 전 의원, 장영달 전 의원, 이해찬 전 대표 등이 이사로 등재됐다. 감사로는 천정배 전 장관, 박석무 전 의원 등이 포진해 있었다. 전남 무안 재선 출신 박 전 의원은 2004년부터 제7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엔터프라이즈국 화려한 이사진은 2007년 국회에서 화제가 됐다. 임채정 당시 국회의장이 재산신고 및 겸직신고를 누락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엔터프라이즈국 이사진 면면이 공개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논평을 통해 “현 정부(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고집한 이유는 권력 실세의 자기 이익 챙기기에 있었다”고 비판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2006년 11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김근태 전 의원은 2007년 1월 사임했다. 장영달 전 의원과 이해찬 전 대표는 2007년 3월 9일 동시에 사임했다. 장 전 의원과 이 전 대표가 사임한 날 엔터프라이즈국은 1인 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이길재 전 의원이 대표이사 겸 유일한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엔터프라이즈국은 이후에도 영업을 지속했다. 엔터프라이즈국은 수익금 일정 부분을 현대아산에 내는 조건으로 금강산 온정각 사진관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직후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했다. 2008년 12월 24일 임시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법인을 해산했다.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이후 5개월 만에 엔터프라이즈국은 간판을 내렸다. 2009년 3월 12일 엔터프라이즈국은 청산 종결됐다.
2000년대 초중반 정치권에서 활동하던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 인사는 “지금 같았으면 굉장한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면서 “현직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이사진으로 등재돼 있었던 일”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인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엔 다양한 계열사와 지자체, 사단법인 등이 연결돼 있던 반면 엔터프라이즈국 사건엔 거물급 정치인들이 등기부등본 상 표면에 드러나 있었다”고 했다.
엔터프라이즈국 이사 및 감사로 등재됐던 임원들 근황은 이렇다. 이해찬 전 대표는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야권 ‘빅마우스’ 역할을 하고 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한국기원 총재다. 2019년 5월 한국기원 총재로 취임했고 임기는 2024년 7월까지다.
장영달 전 의원은 현재 우석대학교 명예총장이다. 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 재임 당시인 2020년 광복회 복지증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국회 앞 야외 카페 ‘헤리티지 1919’가 개업하는 데 참여했다. 2020년 12월엔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입후보 자격 논란에 휩싸이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장 전 의원은 쌍방울 계열사인 비비안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은 2011년 12월 30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재단법인 ‘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김근태 재단)’은 여전히 민평련계 인사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김근태 재단 이사장은 유은혜 전 교육부총리다. 김 전 의원 부인 인재근 의원은 2012년부터 남편이 활동하던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에서 3선을 하며 현직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엔터프라이즈국 감사로 활동했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사단법인 한국-이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다른 감사였던 박석무 전 의원은 다산연구소 이사장 겸 우석대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엔터프라이즈국 대표이사였던 이길재 전 의원은 2000년대 초반 농수산홈쇼핑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2023년 11월 28일 ‘진보정치연합 원탁회의’ 구성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원로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엔터프라이즈국에서 활동했던 이해찬 전 대표와 장영달 전 의원이 여전히 쌍방울과 접점이 있는 부분에 묘한 시선이 존재한다”면서 “엔터프라이즈국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대북 이권 사업 DNA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평화정책 수혜를 입었던 현대아산이라는 기업이 ‘정치인 집합체’ 기업 엔터프라이즈국과 연결돼 있던 부분은 지자체, 기업, 정치인이 운영하는 사단법인 등이 연결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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