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맞설 인지도 있는 리더 ‘찐윤’ 체제 굳히기…윤 대통령 지지율 저조 속 ‘조기 출전’ 우려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위기감에 휩싸인 국민의힘의 4번 타자가 될 수 있을까. 한동훈 전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여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설 대선주자급의 인지도 높은 당 리더가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에 대한 그립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평이다.
반면 국민의힘 내에선 윤 대통령의 ‘복심’을 내세워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위원장으로서도 첫 시험대인 총선에서 패하게 되면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된다. 정치 신인인 한 위원장을 향한 강도 높은 검증도 이뤄질 전망이다. 타석에 선 한 위원장에게 이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강속구가 날아올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게 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2월 2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의원·당협위원장·당 상임고문 등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추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12월 21일 오전 윤재옥 권한대행을 비공개로 만나, 당 비대위원장직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김기현 전 대표 사퇴로 비대위 체제 전환을 결정한 지 7일 만에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윤 권한대행은 인선 배경으로 외연 확장과 보수층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청년층과 중도층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고, 우리 당 보수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위원장은 차기 정치지도자 여론조사에서 당내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젊은 세대와 중도층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원과 보수층의 총선 승리 절박함과 결속력을 불어넣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 위원장은 12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고 사실상 비대위원장직 수락 의사를 내비쳤다. 이어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을 사릴 때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생각된다”고 부연했다.
12월 21일 이임식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서는 비대위원장 수락 이유에 대해 “비상한 현실 앞에 잘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보다 잘해야 되겠다는 책임감을 더 크게 느낀다”며 “상식 있는 동료시민과 함께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길을 같이 만들어가겠다. 국민의 상식과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앞장서려 한다. 그 나침반으로는 길 곳곳에 있는 사막과 골짜기를 다 알 수 없지만, 지지와 비판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끝까지 가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을 진두지휘하며 전국을 누빌 인지도 높은 당의 수장이 필요했다. 실제 한 위원장 외에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등 중진급 정치인이 비대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한 당협위원장은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라는 대선주자가 당을 이끌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대선주자급 인사가 총선을 전면에 서서 지휘해야 한다. 김기현 전 대표가 당대표에 선출됐을 때 우려했던 점도 서울·경기 수도권 등에서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위원장이 여권에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이 대표와 맞설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이 사직서를 내자 곧바로 사의를 수용했다. 앞서 지난 12월 15일 비대위 관련해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선 김성원 여의도연구원장과 지성호 의원 등 친윤계 의원들이 “한동훈 장관을 삼고초려해 모셔와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한 전 장관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긴 이유는 ‘친윤’ 체제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여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내년 4월 총선 공천 작업을 주도할 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법조인’ 출신 인사를 물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사단 검사 출신 법조인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핵심 두 축인 비대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장을 ‘찐윤’ 인사로 내정함으로써 공천 과정에 내분을 사전 차단하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에 윤석열 검찰 사단이 대거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돼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현역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돼 지역구를 내줄 상황에 내몰리면 반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때 ‘친윤’ 색채가 옅은 중진 정치인이 비대위원장으로 있으면 함께 반대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측근’을 비대위원장과 공관위원장에 앉히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은 4선의 이한구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 주도로 ‘진박’ 공천 논란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당시 대표가 추천장에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내분에 휩싸인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22석을 얻으며 1석 차이로, 원내 제1당 자리를 내줬다.
‘한동훈 비대위’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최측근’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내년 총선을 이끌면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12월 15일 의총에서도 비윤계 일부 의원들이 이러한 점을 들어 한동훈 추대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웅 의원은 “우리가 국민의힘이냐, 용산의 힘이냐. 왜 짜고 와서 한동훈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미느냐”며 “의총이 북한이 김주애에게 하듯이 한 장관을 새 영도자로 추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냐”고 지적했다. 이어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면 내년 총선은 어렵다”며 “100석 이하로 가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상황을 보고 싶으냐”고 비판했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여권 관계자는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 평가’ 성격이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어렵다 하는 것도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30%대로 낮기 때문”이라며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해도 부족한 판국에 ‘윤 대통령 황태자’ 이미지의 한 전 장관이 비대위원장으로 국민의힘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면 도움이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한 전 장관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고, 더 나아가 현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한 전 장관이 그런 면모를 보여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12월 21일 이임식 이후 ‘당정관계 정립’에 대해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정부든 모두 헌법과 법률 범위 내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고 협력해야 하는 기관이다. 나는 그런 기본을 잘 알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비록 소수당이지만 대선에서 승리해 행정을 담당하는 이점이 있다. 국민의힘이 하는 정책은 곧 실천이지만, 다수당이지만 민주당이 하는 정책은 약속일 뿐이다. 큰 차이다. 그 시너지를 잘 이해하고 활용해 국민에 필요한 정책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최근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12월 19일 기자들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명품수수 문제’에 대해 묻자 ‘몰카공작’이라고 규정하며 “몰카공작 당사자인 ‘서울의소리’가 고발했던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만 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그 법안은 정의당이 특검을 추천하고 결정하게 돼 있다. 그리고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독소조항까지 들어있다.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그런 악법은 결국 국민들의 정당한 선택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몰카공작이라고 선을 긋는 것은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아니냐. 몰카공작을 떠나 김 여사가 명품수수를 받은 건 사실이다. 그걸 먼저 수사해야 한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독소조항을 언급했는데, 이는 과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때도 있었던 조항이다. 당시 수사팀장이 윤 대통령이고, 수사팀원이 한 위원장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거냐”고 했다.
정가에선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내년 총선 승리로 이끈다면 단숨에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스스로 ‘9회말 2아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여당의 상황은 좋지 않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 사무처에서 작성한 ‘22대 총선 판세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지역이 ‘여당 텃밭’인 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을 등 6곳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하게 되면 한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가 타격을 받게 된 여권 내부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여당의 원로들이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우려를 내놓은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12월 20일 윤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당 상임고문 간담회를 가진 뒤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비대위원장이 당대표보다도 더 막중하고 험한 자리”라며 “한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키우고 이모저모 활용해야 할 분이라는 여망이 있는데 시기적으로 이 카드가 적절하냐 하는 점에서 걱정들을 하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9회말 2아웃에 역전을 노리려면 가장 노련하고 믿음직한 선수를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타석에 한 번도 서본 적 없는 초짜 선수를 내보내 홈런을 기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럼 초짜 선수도 문제지만, 그런 선수를 대타로 기용한 감독에게도 책임론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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