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 대통령과 야당 대통령을 모두 배출한 부산·경남지역의 표심 향방에 대선 주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 서면시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새누리당에서 나와도 찍어주고 민주당에서 나와도 찍어주고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부산이 그런 게 없다 아입니꺼.”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동수 씨(43)의 말이다. 새누리당 지지자이면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를 좋아한다고 밝힌 그의 말은 현재 부산 민심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 씨는 “다음 정부는 서민을 위해 제대로 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누차 강조하며 각 대선후보에 관해 “안철수 후보는 사람은 좋은데 대통령이 되어 다른 정치인들을 이끌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문재인 후보는 당 안에서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또 박근혜 후보에 관해서는 “좋은 점이 많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도 흠”이라며 “어느 후보에게 표를 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현재 부산을 중심으로 한 PK 민심은 화약고와 같다. 고향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틋함과 5년 전 표를 몰아주다시피 해 만든 MB정권에 대한 반감이 뒤섞여 3개월여 남은 대선의 향배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여기에 ‘가깝고도 먼’ TK와의 묘한 경쟁심도 표심을 자극하는 데 한몫하고 있어 ‘절대강자’ 박근혜 후보의 우세를 쉽게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택시기사 조 아무개 씨는 “일반 서민들은 박근혜 후보 역사관이니 인혁당이니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측근들이 돈 받아먹어도 그냥 넘어가고, 동남권 신공항 건설같이 중요한 문제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는 태도 때문에 점수가 많이 깎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통합당 부산 경선에서 문 후보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일요신문DB |
▲ 안철수 후보의 강연을 듣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부산 대학생들. 일요신문DB |
또 다른 택시기사인 김성수 씨는 “밀양이 되든지 가덕도가 되든지 해외 나갈 일 없는 서민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문제다. 하지만 지금 박 후보의 태도를 보면 화가 나는 게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표만 달라고 하고 있다. 신공항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과 부산이 영영 결별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시장 민심 역시 박 후보에 대한 끈끈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읽을 수 있었다.
초량시장에서 만난 서혜숙 씨는 “후보들 능력은 비슷비슷한 거 같다. 우리(부산시민)로서는 박근혜 후보를 밀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초량 육거리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대학생 자식이 둘이나 있어서 향후 10년은 더 가게를 지켜야 하는데 이런 서민부담을 덜어주는 게 첫 번째 일”이라며 “열 번 잘하더라도 한 번 잘못하면 지지자들 마음을 잃어버리는 게 정치인들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후보가 그동안 잘해왔지만 그 옆에서 일을 망치는 측근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박 후보에 대한 흔들리는 믿음은 PK 출신의 또 다른 대선후보인 안철수-문재인 후보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하고 있음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택시기사 김성수 씨는 “나는 야당 성향은 아니지만 내 밑에 아들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며 “큰아들은 골수야당 지지자고 둘째 아들은 문재인 후보를 밀어주자고 한다. 셋째는 날 닮아서 보수적인 면이 있는데 특히 안철수 후보에 대해 관심이 많으면서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가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 아무개 씨(24)는 “여성 후보가 가질 수 있는 장점도 많을 것 같은데 박 후보는 너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정치인 같은 느낌이 든다.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인기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박 후보에 관해 “돈과 관련된 의혹이 진짜 문제 같다. 본인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 주변사람들까지 단속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최근 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비상이 걸린 새누리당에서도 PK 민심 다잡기에 나설 채비다. 안철수 후보의 기자회견이 있던 지난 19일, 박근혜 후보는 태풍 피해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장소로 경남 사천을 선택했고 추석을 앞둔 24일경 부산을 방문해 과거사 등의 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 홍준표 전 대표를 전략 배치하는 등의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박 후보의 경선캠프에 참여했던 한 보좌관은 “최근 부산 지역 지지율만 한정해 놓고 보면 87년 대선 때의 3자 구도로 가도 박 후보가 위태로울 수 있고,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박 후보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다.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대선이 부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부산=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