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민이 음주운전 사건으로 1년간 프로에서 뛸 수 없게 됐다. KIA가 임의탈퇴 카드를 꺼낸 것은 예상밖의 초강수였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9월 21일 오전 3시 5분. 광주 서구 광천동 광천터미널 앞 도로를 SUV 차량이 지나쳤다. 잠시 후 우회전을 시도하던 SUV 차량은 앞에 세워진 경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당황한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경차 상태를 살폈을 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SUV 운전자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한 것. 여기다 이 운전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였다. 바로 KIA 사이드암 투수 손영민이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곧바로 음주측정에 들어갔고, 측정기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29%를 가리켰다. 이 정도면 만취 상태였다. 손영민은 경찰서에 인계돼 조사를 받았고,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경찰은 음주운전에 인사사고까지 낸 손영민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잠잠하던 프로야구 선수의 음주운전이 재발한 까닭이었다. KBO와 각 구단들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품위 유지 교육을 해왔다.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이 컸던 게 음주운전 방지교육이었다. KIA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음주운전이 발생하면 선수는 자숙기간을 갖느라 경기에 출전 못하고, 구단은 전력 손실로 고생해야 한다. 가뜩이나 손영민처럼 팀의 중심 불펜투수가 빠진다는 건 팀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 임의탈퇴 카드를 집어든 KIA
손영민이 일으킨 사건은 이번 음주사고만이 아니었다. 6월 중순엔 간통 시비에 연루됐다. 손영민 아내인 K 씨 가족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당시 K 씨 가족은 손영민의 부적절한 애정 행각을 폭로했다. 트위터 전문엔 손영민의 사진까지 첨부돼 있었다.
누리꾼들은 문제의 트위터를 퍼 날랐고, 삽시간에 손영민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당시 야구팬들은 K 씨 가족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당장 손영민을 야구계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IA 팬들까지 손영민의 1군 복귀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KIA는 “부부 문제라,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한다. 거기다 선수 사생활이라, 구단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손영민은 구단에 “트위터 내용 가운데 과장된 게 많다”며 “처가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손영민은 아내와 협의 이혼 절차를 밟기로 했고, KIA는 손영민이 부상에서 탈출하자 1군으로 복귀시켰다.
당시의 선처(?) 때문인지 많은 야구계 인사가 “이번에도 KIA가 손영민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KIA가 빼든 카드는 초강수였다. 바로 임의탈퇴였다. 임의탈퇴가 되면 그 즉시 소속팀을 비롯한 국내외 어느 팀에서도 1년간 선수로 뛸 수 없다. 구단이 임의탈퇴를 풀지 않는 한, 다른 팀 이적은 고사하고 국외 진출도 불가능하다. 일종의 시한부 사형선고인 셈이다.
KIA 관계자는 하루 만에 취해진 발빠른 초강수 조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수들에게 누차 ‘음주운전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교육했다. 그러던 중 음주운전 사고가 우리 팀에서 나고 말았다. 특히나 단순 음주가 아닌 음주운전에 따른 인사사고가 발생했다. 구단 상벌위원회를 열었을 때 모두가 ‘손영민이 공인의 신분을 망각한 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했을 뿐만 아니라 구단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따라서 구단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징계인 임의탈퇴 결정을 내리게 됐다.”
KIA 고위 관계자는 “다른 팀이었으면 모를까 KIA에서 음주운전은 더 가중처벌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유는 간명하다. 구단의 모기업이 자동차 회사인 현대·기아차그룹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건 모르지만, 자동차 기업인 KIA에서 음주사고를 낸다는 건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앞으로도 구단은 음주운전 사고에 관해선 가차 없이 임의탈퇴 카드를 빼들 계획”이라고 천명했다.
#KIA의 임의탈퇴, 꼼수다?
하지만, 야구계 일부에선 KIA의 임의탈퇴 카드를 ‘꼼수’로 의심한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KIA가 손영민을 임의탈퇴로 묶은 건 시즌 종료 후, 실시될 NC의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을 겨냥한 포석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올 시즌이 끝나면 8개 구단은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을 NC에 넘겨줘야 한다. 보호선수로 굳이 묶지 않아도 계속 보호할 수 있는 예외는 ‘군 보류 선수, 당해 연도 FA 신청선수, 외국인 선수, 임의탈퇴 선수’다. 8개 구단은 NC에 좋은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존 군 입대선수만 해당했던 ‘군 보류선수’를 군 제대선수로까지 확대시켰다. 그리고 FA 신청을 하지 않으려는 선수들에게도 FA 선언을 종용하고 있다. KIA가 손영민을 임의탈퇴 선수로 묶은 것 역시 그를 보호선수에 넣지 않고도, 계속 구단이 보유하려는 꼼수일 수 있다.”
그러나 KIA는 “소설보다 더한 소설”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KIA 관계자는 “임의탈퇴가 결정되면 1년간 뛸 수 없다. 손영민처럼 주전 불펜투수가 당장 뛰지 못한다는 건 팀에 큰 마이너스다. 그런 마이너스를 감수하면서까지 꼼수를 부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손영민은 경찰 조사를 받고, 구단 코칭스태프를 찾아 사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