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네임’ 이은 액션 열정 “제가 변태인가봐요”…“엄마 대면하는 신에서 막대기만 봐도 눈물이”
“이 작품을 두고 오히려 의견이 안 갈리면 더 이상한 거죠(웃음). 제게도 일본 팬 분들이 많으니까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눠지겠다고 촬영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 요즘 시대는 급변하고 있고, 새로운 것에 굉장히 빨리 적응하고 수긍하면서도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가감 없이 내세우는 그런 시대인 거 같아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쓴 글도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되, 사실인 건 사실이란 생각을 기반으로 쓴 거였고 그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답변을 바라고자 올린 건 아니었죠.”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의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크리처 스릴러 ‘경성크리처’는 그 소재의 특수성, 그리고 그 배경이 갖는 화제성으로 특히 해외에서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런 만큼 한국이 다루는 일제 강점기 배경 작품에 기이할 정도로 반감을 보이는 일본의 시청자들이 즉각적인 분노를 터뜨린 것은 딱히 새롭지 않은 반응이기도 했다.
‘경성크리처’ 시즌1이 공개된 직후였던 2023년 12월 24일, 한소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경성크리처’ 관련 글에 일본인 네티즌들이 몰려들어 원색적인 악플을 쏟아낸 것도 그 ‘대수롭지 않은’ 반응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소희의 오랜 팬으로 보이는 한 일본인 네티즌이 쓴 댓글과 그가 직접 단 담담한 답글은 작품과는 또 다른 결의 화제를 몰고 왔다.
“사실 제가 일본어를 못해서 (일본어로) 인신공격이나 악플이 달려도 모르니까 타격을 안 받아요(웃음). 다만 어떤 일본 팬 분이 한국말로 ‘(이 작품을) 보고 싶지만 일본인으로서는 조금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슬프다’고 댓글을 달아줬길래 ‘슬프지만 사실인걸. 그래도 용기 내줘서 고맙다’고 답글을 썼었죠.”
‘경성크리처’에서 한소희는 죽은 사람도 찾아내는 실력 있는 전문 토두꾼 (실종자를 찾는 사람) 윤채옥으로 분했다. 아버지와 함께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나선 채옥은 날렵한 움직임과 싸움 실력,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시대의 그림자에 쓰러지지 않는 강단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총부터 칼까지 못 다루는 무기가 없는 채옥에 걸맞게 한소희 역시 맨몸이면 맨몸, 무기면 무기로 다양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액션을 소화해 냈다. 앞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 이후로도 꾸준히 액션 연기에 대한 갈증과 열정을 보여 온 그는 연기의 고됨에도 불구하고 액션에 집착하게 되는 데에 “제가 변태인가 보다”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액션 연기도 어쨌든 액션 플러스 연기인 거니까요. 액션을 잘해서 몸놀림이 자유로워지면 대사나 감정 연기처럼 다른 부가적인 것들도 제가 더 연구하고 챙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채옥이도 총과 칼에 능숙한 캐릭터니까 제가 그 무기를 능숙하게 잡을 수 있게 되면 이 무기를 들 수밖에 없는 채옥이의 마음이나 그 얼굴 표정, 내뱉는 말까지 더 세세하게 계산할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액션을 잘 하는 게 제게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경성크리처’로 크리처(괴물) 장르에 새롭게 도전한 그에게 가장 큰 고충은 CG(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덧씌워지기 전, 현장에서 웃음을 참아내는 일이었다고 했다. 녹색과 회색 ‘쫄쫄이 옷’을 입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연기해야 할 때마다 상대가 자신을 웃기려 드는 것을 억지로 외면해야 했다고. 그렇다고 해서 연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한소희가 아니었다. 감정이 한없이 몰입됐을 땐 눈앞에 있는 녹색 막대기만 봐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물을 떨어뜨려야 했다.
“그분들이 입은 쫄쫄이 옷이 눈만 파내져 있는 모양인데, 다 아는 얼굴이니까 저랑 시선을 맞추고 있는 상태에서도 입이 막 씰룩거리는 게 다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웃음 참기 시작이죠(웃음). 또 세이신(강말금 분)하고 찍을 때 촬영 현장에서는 초록색 막대기를 보고 연기했거든요. 하지만 제 엄마니까 감독님께 엄마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여쭤 봤어요. 채옥이의 인생을 던져가면서 10년 동안 찾은 엄마가 사람도 아닌 괴생명체 몰골로, 심지어 고문 당한 흔적까지 있으면서 내가 준 목걸이는 걸고 있다는 데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그 신에서 원래 대사는 ‘어머니, 어머니 맞아? 진짜 어머니야?’였는데 제가 ‘엄마…’라고 말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 채옥이라면 ‘누가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먼저 물어볼 것 같았는데 거기에 몰입해서 그때부터 눈물이 났어요.”
시대극이자 크리처물이면서 동시에 로맨스도 함께 다루고 있는 ‘경성크리처’에서 채옥은 경성 최고의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이자 경성 제1의 정보통 장태상(박서준 분)과도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애정을 나눈다. 아무래도 크리처물이라는 강렬한 장르적 특성이 우선시되다 보니 이 둘의 관계가 다소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일기도 했지만, 한소희는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닌 시대 그 자체에 시선을 두고 다시 보신다면 이들의 관계성이 좀 더 수월하게 이해가 가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둘의 사랑에는 무조건 전우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대, 그 시절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어가며 쌓아온 전우애와 사랑이요. 저는 로맨스란 게 같이 그 사랑으로 뭔가를 극복해서 이뤄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신은 채옥이가 태상에게 ‘고맙소,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오’라고 말하고, 태상이는 ‘죽지 마시오’하고 서로 각자 갈 길을 가는 신인데요, 저는 거기서 사랑을 느꼈어요.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이 사람이 너무 간절해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보내주는 거죠. 거기서 저는 정말 이게 그 시절의 사랑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절엔 이별이 곧 죽음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이별은 엄청나게 큰 용기였고, 그 큰 용기는 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랑에서 일궈져 나가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시즌2까지의 촬영을 모두 마친 한소희는 윤채옥으로부터 약 2년 만에 벗어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몸 고생이며 마음고생까지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 캐릭터로 살아야 했으니 이래저래 시원섭섭한 후유증도 남았을 법한데, 이 질문에 한소희는 특유의 ‘빵 터지는’ 웃음을 지으며 “아유, 저는 그냥 막 시원하게 잘 빠져 나왔어요”라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아마 작품이나 캐릭터에 미련이 없어서 촬영이 끝나면 잘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 사실 멘탈 케어 같은 것도 필요하긴 한데, 저는 그냥 가만 내버려 두면 더 잘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제 나름대로의 멘탈을 지키는 법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 다 하기’예요. 정말 2년 동안 피어싱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촬영 끝나자마자 해버렸거든요.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요즘은 탈색이 하고 싶은데요, 머리카락이 다 녹아서 대머리가 될까 봐 못하고 있어요(웃음).”
모든 것에 거리낌 없고, 물러서지 않아야 할 일에 거침없는 한소희는 그의 이런 대쪽 같은 태도를 영 마뜩잖아하는 사람들과도 마주쳐야 한다. 유독 여배우들에게만 늘 사근사근하고 다정하면서도 연약한 모습을 강요하는 이런 일부에게 있어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은 튀어나와 두들겨 넣고 싶은 못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중 앞에 늘 조목조목 평가 받아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이라고 덮어놓기엔 가혹하기만 한 이 세간의 입방아를, 한소희는 “아니면 아닌 거지 뭐”라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얼마든지 털어낼 준비가 돼 있었다.
“저를 보고 많이들 걱정해주시는데 그런 게 무섭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팬들과 소통할 때 혹시라도 팬이 선을 넘거나 하면 저는 혼낼 거예요. 그런데 제 팬들은 한 번도 선을 넘으며 저를 대한 적이 없거든요. 저를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저를 보면서 ‘저 언니 왜 저래, 어유 왜 저래’하면서 조마조마해 하죠(웃음). 곡해에 대한 걱정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그런 분들께는 제가 아무리 동그라미라고 말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란 걸 아니까요. 100명 중에 100명이 다 절 좋아할 순 없잖아요? 한편으론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싫어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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