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정차역 두고 강동역·천호역·고덕역 주장 갑론을박…“정부가 주민 오해 부추겨” 빈축도
추진안에 담긴 정차역 중 상당수가 특정 지점이나 역이름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급 도시 이름으로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면서 해당 지역들은 정확한 정차역 위치를 두고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일부 지역은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나 부동산 관련 인터넷카페 등에서 주민들끼리 날선 비방 공격도 벌이며 지역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신설역 위치를 두고 현재 지역 내 논쟁이 가장 뜨거운 곳은 서울 강동구다. GTX-D노선 추진안에 담긴 ‘강동’ 정차역이 정확히 어디에 배치될지를 두고 “강동역이다”, “천호역이 맞다”, “고덕역이 적절하다” 등 다양한 해석이 부딪히고 있다. 정부 추진안에 담긴 이름 그대로 기존 지하철 5호선 ‘강동역’이 맞을 것이란 해석이 있는 한편 지하철 5·8호선 환승역이자 대형 상권인 ‘천호역’이 유력하다는 주장, 최근 수년 새 대규모 신축 아파트 타운이 조성된 ‘고덕역’이 적절하다는 주장 등이 충돌 중이다. 또는 특정역이 아니라 기존 역과 역 사이 새로운 지점에 생길 수도 있다는 소수의 목소리도 얹어진다.
논쟁에 불이 붙자 강동지역 온라인 공간에선 서로의 주장을 겨냥해 “희망회로다” “정신승리다” 등 거친 표현까지 오가며 갈등이 격화되는 구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관련 문의 전화를 받는 지자체도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강동구청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일요신문i’와의 통화에서 강동역 위치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 어떠한 답변도 못 드린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GTX D·E 2개 노선 추진안에 포함된 인천 영종도 지역도 정차역 위치를 두고 내부 ‘갑론을박’이 뜨겁다. 영종도는 현재 북부지역에 공항철도 ‘영종역’이 있다. 이번 GTX 추진안에 담긴 ‘영종’ 정차역은 영종도 남부 배치가 거론된다. 주민들 의견은 2026년 신설 예정인 영종구청 부지 정차가 적절하다는 주장과 아파트·중심상권이 있는 ‘영종하늘도시’ 내부가 적절하다는 주장으로 크게 갈리는 분위기다. 이에 더해 하늘도시 내부에서도 ‘상권가가 맞다’, ‘아파트쪽이 돼야 한다’ ‘해안의 송산공원 주변이 적절하다’ 등 다양한 주장이 또 엇갈린다.
김요한 영종국제도시총연합회 정책위원장은 통화에서 “영종구청 예정부지와 아파트 단지 부지 사이 거리가 2~3㎞밖에 안 되는데 통상적으로 GTX는 최소 5~6㎞ 간격으로 역을 두는 것 같다”면서 “너무 간격이 좁으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해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주민들도 있어 뜨거운 논쟁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차역 위치를 마땅히 추정하기 어려워 주민들조차 ‘물음표’만 띄우는 지역도 있다. GTX-E 추진안에 담긴 ‘신정릉’역이 대표적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일대 주민이나 상인들은 ‘신정릉’이란 표현 자체를 처음 들어 낯선 데다, 정차역 위치를 추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반응 일색이다. 기존 우이신설선 정릉역이나 4호선 길음역이 아닌, 제3의 지점을 염두에 두고 ‘신정릉’ 표현이 나온 것이라면 이렇다 할 후보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릉역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A 씨는 “정릉역과 길음역 사이 도로에 GTX역을 둔다면 결국 200~300m 거리에 기존 역이 2개나 있는 것인데 지하철은 그렇게 놓으면 정말 비효율적인 것 아니냐”면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그냥 나온 구상안이 아니겠느냐”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경기도에선 두 지역의 이름을 합친 정차역 때문에 ‘동상이몽’ 추정이 쏟아지는 곳도 있다. GTX-D 추진안에 담긴 ‘광명시흥’역이 그렇다. 광명지역 주민들은 온라인상에서 7호선 광명사거리역이나 대형체육시설인 스피돔경기장 주변 등 광명시내 내 주요 거점을 거론 중인데 일각에선 정부 추진안이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광명시흥신도시’ 내 정차를 예고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후보지를 추정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 준비에 마음이 급한 정치권이 지역주민들의 혼란을 더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직 극초기 단계에 불과한 정부 추진안을 마치 ‘확정’된 것으로 호도해 지역민들의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현재 여야 정당이 서울 5호선 강동역 주변에 내건 현수막의 경우 ‘GTX-D 강동 경유 확정’, ‘GTX-D 강동 경유! 주민과 함께 이뤄냈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있다.
인천 영종지역도 비슷한 상황이 전해진다. 영종지역의 한 주민단체 대표 C 씨는 “GTX-D·E·F노선의 경우 앞으로 제5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을 추진하겠다 뜻이지 확정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를 확정으로 표현해 홍보하는 것은 주민들을 ‘희망 고문’하는 것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심지어 우리 지역의 한 정치인은 윤 대통령 임기 안에 GTX를 착공하겠다는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주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다소 모호한 상태의 정부 발표가 현장에 일부 혼란을 줬을 가능성에 공감하면서도 책임론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가 지자체명 위주의 구상안을 내놓은 것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려 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해석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25일 GTX 추진안 보도자료에서 “역 위치 및 역 명칭은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향후 기본계획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국토부 철도국 광역급행철도신속개통기획단 황세은 서기관은 통화에서 “이번에 발표한 추진안은 저희가 연구한 노선안이고, 추후 사업 과정에서 의견을 들어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자료나 업무보고에 명시했다”면서 “국민들도 대체로 이번 추진안이 ‘미확정’ 상태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GTX 신설계획 자체가 기본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정부가 선거 정국 속에도 각종 불확실성을 고려해 되도록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GTX 신설 추진안을 내놨지만 어차피 현 정부 임기 안에 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다음 정부에서 어떻게 될지도 사실 모를 것”이라면서 “행정 당국은 보통 위험 부담을 떠안고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추진안 내용에 스스로 좀 여유를 두고 있는 것으로 봐야 맞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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