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용도변경·버티기로 ‘사분오열’…분위기 전환되자 ‘법개정 촉구’ 집단 대응 움직임
생활숙박시설은 숙박용 호텔과 주거형 오피스텔이 합쳐진 시설로 취사시설과 바닥난방, 발코니 설치까지 가능해 최근 수년간 아파트 대체 상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세제나 청약, 전매 제한 관련 규제도 거의 없는 장점 때문에 분양 수요가 급증하자 공급량도 2015년 총 3480여 실에서 2021년 1만 8800실로 껑충 뛰었다. 2023년 8월을 기준으로 전국에 준공됐거나 건축 중인 생숙 객실은 총 18만 6000실로 추산됐다.
그런데 정부가 생숙을 주거용 오피스텔과 같은 ‘준주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고 올해 말까지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자 기존 입주자나 신축 수분양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져왔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생숙 객실의 약 50%는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정부는 이를 투자 목적의 불법적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년간 한시적으로 특례기간을 부여해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하지만 실제 용도 변경에 나선 곳은 일부에 그친다. 피난·방화, 안전, 주차시설 등 오피스텔에 맞는 건축기준을 새로 충족해야 하는 데다 지자체가 해당 구역의 지구단위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제약도 있어서다. 무엇보다 기준공 시설은 전체 소유주의 80%, 건축 중인 곳은 수분양자 100%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건이 큰 장애물이 됐다.
이런 이유로 마땅한 길을 잡지 못한 전국의 생숙 입주민과 수분양자들은 관할 지자체와 충돌하거나 시행사, 개발사 등과 소송전 벌이는 등 파열음을 내고 있다. 오는 8월 준공 예정인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생숙 수분양자들은 잔금 납부를 앞두고 생숙에 대한 대출 한도가 당초 인지한 수준에서 크게 축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오는 23일 시공사 본사가 위치한 서울 잠실에서 집단시위를 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내년 10월 준공될 경남 창원시의 생숙 수분양자들은 최초 분양 당시 실거주와 전입신고가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지난 1월 말 시행사 대표와 분양대행업체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기 남양주시에선 2021년 준공된 생숙시설이 지난해 말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신고한 것을 동주민센터가 받아들이지 않자 시청 민원조정위원회가 나서서 재검토를 권고하는 등 지자체 내부의 혼란까지 노출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생숙의 준주택 인정을 검토할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자 현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1월 25일 국토위 수석전문위원실은 준주택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국민 5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내면서 “생활숙박시설이 통합주거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주거형태임을 감안할 때 준주택 포함 여부를 검토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기술했다.
예고에 없던 국회발 메시지에 전국의 생숙 시설들은 대체로 ‘긍정 신호’로 받아들이면서도 각자 상황에 따라 온도차가 감지된다. 박미준 힐스테이트창원센트럴 수분양자협회장은 “공동의 지향점이어서 반가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실성 측면에서 판단이 좀 갈릴 수 있겠다”며 “지역이나 단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국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각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권고를 정부가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갈린다. 여러 건의 생숙 관련 소송을 맡아온 조정희 법률사무소 청한 대표변호사는 “수분양자분들이 관련 기사를 서로 공유하면서 반가워하고 희망을 갖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실현이 힘들 수 있다고 냉정하게 보면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국토부 입장에선 국회의 ‘난데없는’ 정책 재검토 권고에 부담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3년 가까이 밀어붙인 정책의 일관성을 깨는 것이 여러 모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학환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장은 “국토부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회 차원에서는 또 선거철을 맞이해 이러한 민원을 외면할 수 없으니 난감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면서 “만약 준주택 인정이 된다면 원래의 생숙 용도에 따라 적법하게 써온 사람들, 또 정부가 제시한 기간 안에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한 사례들과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고 짚었다.
현재 국토부는 일단 국회발 메시지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 건축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14일 통화에서 “국회에서 나온 의견에 대해 국토부가 뭐라고 (반응)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현재 국토부의 기본 입장은 생숙이 주택 기준에 맞으면 준주택으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주택 기준에 안 맞는데 맹목적으로 준주택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해 9월 보도자료에서도 “숙박업으로 정상 사용 중인 준법 소유자와의 형평성과 주거환경 등을 고려할 때 생숙의 준주택 편입은 곤란한다”면서 “생숙은 주택이나 주거용 오피스텔에 비해 주차장·학교 등 생활인프라 기준과 건축기준이 완화돼 있고, 주거지역에 들어서는 것도 불가해 주거용도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현장에서 생숙 시설들의 요구에 직접 대응하는 지자체들 입장에선 상황이 조금 다르다. 자체 판단을 아끼며 기본적인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하지만 국회의 이 같은 권고가 논리적 방어에 부담을 주면서 민원인들과의 갈등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던진 공이 결국 현행법 개정 요구로 바뀌어 국회로 돌아갈 구조라고 진단한다. 정부의 정책 수정 역시 현행법이 선개정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생활형숙박시설을 주거시설로 인정하려면 법을 고치거나 법에 유예기간을 더 두거나 또는 법에 여러가지 규제를 완화해 숙박도 할 수 있게 겸용 허가를 내주는 등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러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생숙을 지금에 와서 다시 준주택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특혜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전국 생숙 시설들의 법개정 요구 움직임은 가시화된 상태다. ‘전국비아파트총연맹’은 오는 3월 중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어 생숙의 준주택 인정을 요구하는 법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한편 생숙의 오피스텔 용도변경이 용이하도록 요건 완화를 촉구하는 시위도 열릴 예정이다. 송민경 한국레지던스연합회장은 지난 14일 통화에서 “생숙시설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려면 수분양자 100%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은 너무 과도한 규제”라며 “집회를 열어 관련 법안과 시행령 개정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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