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59조 ‘업무개시명령’ 근거, 의사들 전화 끄고 잠적하자 문자 명령 발송…법조계 “복지부 힘 우세” 관측
#정당한 사유 없인 진료 중단 불가
핵심 쟁점은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행위를 진료 거부나 집단 휴업으로 간주해 형사 처벌할 수 있느냐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은 “파업이 아닌 일신상의 이유로 인한 개별적 사직”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역시 의사들의 사직서 제출은 자유의사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2월 17일 첫 회의를 개최한 비대위는 회의가 끝난 뒤 “면허 박탈을 예고하며 전공의의 자발적 사직이라는 개인 의지를 꺾는 (정부의) 부적절한 발언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지속해서 겁박에 나설 경우 법적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상황에서 내는 사직서는 현행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사들이 실제 사직의 뜻이 없으면서 업무개시명령을 사전에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 사표를 제출했으므로 내용상 집단행동에 속한다는 것이다. 현재 복지부는 ‘의료법 제59조’ ‘전문의 수련규정’ 제15조 등에 의거해 각 수련병원에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를 명해 놓은 상태다. 이에 근거해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시 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강경책도 내놓았다.
근거는 의료법 제59조다. 이 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집단으로 휴·폐업하면 의사나 병원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사업자의 영업 자율권과 노동자의 업무 선택 자유를 상당 부분 무력화할 수 있는 조치다. 실제로 2020년 의사 집단행동 당시 법무부는 “단체 행동의 일환으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적법하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 처벌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 의견이 갈리는 대목은 ‘정당한 사유’에 대한 해석이다. 현재 유권해석상 인정되는 사유로는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해 진료를 행할 수 없는 경우 △인력 부족 및 의학적 특수성으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 △의사에게 환자를 치료할 만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경우 △환자가 치료방침을 따르지 않는 경우 등이 있다.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고 밝힐 경우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의사들이 ‘일신상의 이유’를 앞세워 사직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현재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하고 그 시간에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는 등 실질적 집단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개인적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법을 피해 가기 위한 우회적 사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나 대한의사협회 등은 의사들의 이익단체로 노동법상 노동조합은 아니”라면서 “이익단체의 집단 휴업이나 집단 사직서 제출 등의 행위는 노동법에서 보호하는 노조의 단체행동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일을 그만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동찬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표를 내는 건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자유의사”라며 “사직서 제출이 업무개시명령 거부에 해당하는지를 정부가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변호사는 “의협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은 사직서를 낸 경우는 민법 제107조의 비진의의사표시 또는 110조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사직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페이닥터로 일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개인의 판단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할 자유까지 막을 법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 및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각 수련병원이 의사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가능하다고 본다. 신용훈 동서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는 “수련을 위한 피교육자 신분과 근로자의 신분이 혼재된 전공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우선 적용된다. 사직과 관련해서는 수련계약서나 규칙에서 정한 절차가 있으면 따르게 돼 있는데 일반적으로 수련규정에서 정한 사직절차는 합의해지 형식으로 병원에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아웃' 전략으로 업무개시 회피
업무개시명령의 방법과 효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행정명령이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대상자에게 적법한 절차로 도달했는지를 따지는데 이 과정에서 대상자들이 행정명령서를 받지 않고 반송하거나 전자메일을 읽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2000년 의약분업 파업에서 법원은 유효하지 않은 방식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의사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2020년 파업에서는 의사들이 의도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놓는 등 이른바 ‘블랙아웃’ 전략으로 업무개시명령을 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문자 송달이다. 복지부는 문자를 통한 업무개시명령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근거는 2022년 7월 추가된 행정절차법 24조 2항이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있으면 휴대전화 문자 등으로도 처분할 수 있다. 이 경우 명령 발송을 곧 송달로 간주해 휴대전화를 꺼도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다만 절차적 요건에 문제가 있는 경우 효력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조진석 의료전문 변호사는 “업무개시명령은 서면 전달이 원칙이고 전자문서 송달 시에는 상대방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장은 복지부의 힘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직서 제출 행위의 경우 개인의 단순 의사표시로 형사처벌이 어렵다고 해도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진료거부는 명령 위반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단체가 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취소소송 등을 청구한다고 해도 실제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몇 개월에서 최대 몇 년이 소요된다.
의료소송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현재 복지부가 내놓는 대책에 법리적 흠결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만에 하나 위법 혹은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었다고 해도 이는 추후 법원에서 가려지는 문제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당장 의료 공백이 길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지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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