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운태 광주시장은 지역민들에게 내재된 문화 DNA가 발현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과 같은 행정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광주시장배가 탄생했을 때, 한편으로는, 한국 바둑의 텃밭 호남에서, 호남의 중심 광주에서 이제야 바둑대회가 생기다니, 약간의 만시지탄 속에서도 어쨌든 반가운 마음으로 소식을 전했던 생각이 난다.
광주는 보통 예향으로 불리지만, 바둑계에서는 ‘기향(棋鄕)’으로 통하는데, 짐작이나 느낌이 아니라 정말 그런가, 우선 프로기사 쪽을 보니 17명이 광주 출신이다. 올해 한 명이 늘어 18명. 현재 프로기사는 모두 273명이다. 호남 전체가 아니라 ‘광주 한 도시에서만 18명’이라는 숫자도 숫자려니와, 그 중에 요즘 우리 바둑계를 좌지우지하는 박정환 백홍석 김지석, 또 여자 이창호로 일찌감치 스타 반열에 올라가 있는 최정, 최정을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는 이영주가 들어있는 것.
사실은 그때 기향의 수장을 만나 한번 만나 바둑대회 창설의 소회 같은 것을 들어보고 싶었으나 수장의 일정이 워낙 빡빡해 시기를 놓쳤던 건데, 그러다 이번에 세계대회 유치를 계기로 기회를 잡았다. 10월 24일 오전 11시, 강운태 광주시장(64)을 만났다. 시장 접견실. 약속된 시간은 역시 길지 않았다.
“…저는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합니다. 그저 아주 조금 두는 정도지요. 그러나 바둑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계승 발전시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마음이 급해, 초읽기에 몰린 듯 속기로 질문을 했는데, 강 시장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는 얼굴이었다.
“…정신적인 가치가 높지요… 이번 국무총리배 대회에는 세계 70여 나라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무튼 이런 만남을 통해 국경이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정신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은 승부를 떠나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회 개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대한바둑협회가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우리도 대한바둑협회에 감사합니다…^^.”
▲ 국무총리배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각국의 선수들이 바둑실력을 겨루고 있다. |
▲ 국무총리배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각국의 선수들이 바둑실력을 겨루고 있다. |
“아직은 초창기라 그렇지만, 광주시장배도 그렇고 세계대회도 그렇고 앞으로 더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웃음 끝에 김 위원이 제안을 했다. ‘광주에 기재 있는 어린이 청소년이 많다. 그런데 프로기사를 꿈꾸는 아이들은 대개 서울로 유학을 간다. 물론 여기서 공부해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서울만은 못하다고 보는 건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유명 바둑도장에 나가 공부하고,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뽑히고 그러려면 최소 3~4년 동안 월 평균 300만~400만 원이 들어가니 그런 부담 때문에 뜻이 있어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 유학을 가지 않고, 광주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전문적인 바둑 교육기관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것도 검토해 보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시설은 예컨대 폐교를 리모델링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 요즘 폐교가 꽤 있잖아요, 가르치는 분들이 부족하면 초빙하면 될 것이고… 괜찮은 생각이시네요.”
인터뷰 전 대변인실에서 받은 자료가 꽤 방대(?)했다. 광주시가 펼치고 있거나 펼칠 엄청난 규모의 사업들이 죽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조성 사업’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와 남북단일팀 구성’ ‘세계 아리랑 축전’ 같은 것들이었다. 만남의 주제는 어차피 정치 경제 관련 사업보다는 바둑과 문화가 될 터이니까.
“너나할 것 없이 21세기는 문화경쟁, 심지어는 문화전쟁의 시대라고 말하지요? 문화는 다른 말로 하면 창조성과 다양성입니다. 그런데 문화에 관한 한 우리 지역은 이미 유전적으로 그 창조성과 다양성의 DNA가 내재된 고장이라는 것, 모두들 인정하는 바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사회적 틀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가령 K-POP이나 요즘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가수 싸이를 보면, 이들이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문화적 심성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정서를 흔들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 문화적 심성의 뿌리라고 할까, 밑바탕이 저는 호남의 정서, 광주의 정서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가 세계적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한류의 본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바둑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광주의 공기에는 상처의 냄새가 있다. 그래서 불현듯 애잔하다. 역사의 현장, 격랑의 중심이었던 때가 많았는데, 그래서일까. 창조적이고 싶고 다양해지고 싶은 유전자가, 상투적이고 진부하며 늘 똑같은 일상을 참지 못하고, 그래서 때로 상처를 입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상처가 창조와 다양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인지, 순서는 모르겠다.
“‘세계 아리랑 축전’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 아리랑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문화재로 등록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두고 볼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화상징이라는 것을 세계에 주지시키고 현대적으로 계승하자, 그게 아리랑 축전의 취지입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