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 받은 TK 중진들도 모두 살아남아…잡음 줄였지만 쇄신 부재 ‘부메랑’ 될 수도
민주당에 비해 잡음은 별로 없지만 변화, 혁신, 감동 역시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에선 소위 ‘김건희 쌍특검’ 표결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현역들 눈치를 봤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현역 횡재·신인 횡사’가 불러온 쇄신 부재의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역들, 하이패스 통과
전통적인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이자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TK 공천 결과가 대거 나온 2월 28일, 현역 의원들의 잇따른 생환 소식이 들려왔다. 11개 선거구 중 8개 선거구에서 현역이 이겼다. 2개 선거구에서도 현역이 결선 투표에 진출했고, 1개 선거구에서만 현역이 패했는데 이마저도 경선 승자는 시장 재선을 지낸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라 현역 패배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TK에서는 이날 경선 승리자 8명에 이미 단수 추천을 받은 현역 4명까지 더하면 2월 29일 기준으로 현역 12명이 사실상의 당선증이라 할 수 있는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TK 전체 지역구 의원 25명 중 12명이 재공천을 확정지었다.
다선 페널티를 받은 TK 3선 이상 중진 의원들도 모두 살아남았다. 원내대표를 지낸 주호영 의원, 현재 원내대표인 윤재옥 의원, 그리고 3선의 김상훈 의원이 모두 생환했다. 이들은 동일 지역구 3선 이상으로 15% 감점이 적용됐음에도 경선에서 승리했다.
TK는 역대 총선에서 보통 절반 이상 현역이 바뀌었던 곳이다. 이번 총선은 완전히 상황이 딴판이다. TK 현역 생환율은 2020년 21대 총선 45.5%, 2016년 20대 총선 41.7%, 2012년 19대 총선 41.7%였다. TK는 수도권 바람몰이 기폭제 역할을 하기 위해 늘 현역을 절반 이상 교체해왔다.
TK보다는 지지세가 약하지만 역시 텃밭이라 불리는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현역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 2월 28일 나온 경선 결과를 보면 현역 2명이 탈락하긴 했지만 현역이 대부분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부산에서 3선 이헌승 의원이 경선에서 이겼고, 초선 백종헌 의원도 공천권을 쥐었다.
울산에서는 김기현 전 대표가 경선 승리를 거두며 5선 도전에 나섰다. 김기현 전 대표는 대표에서 물러난 뒤 불출마를 해야 한다는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불구, 무난히 공천을 받았다. 서범수 의원도 경선에서 승리했다.
전략공천 등을 통해 변화를 주기가 쉬운 텃밭 공천마저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잡음은 최소화했지만 쇄신과 변화를 포기한 것 아니냐 비판이 쏟아지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도로 꼰대당’이라는 비아냥거림도 곳곳에서 나온다. 30·40대 청년, 정치 신인, 여성 예비후보들이 현역 우위의 ‘다중 허들 시스템’에 막히면서 고인물 비판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2월 28일 기준 국민의힘이 확정한 공천 후보자 155명 가운데 30대는 4명, 40대는 16명이다. 20대는 없다. 비율로 따지면 30~40대 청년 후보가 약 13%다. 이마저도 젊은 후보들은 이른바 ‘험지’로 배치됐고 TK와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권 양지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2월 28일 기준 공천이 확정된 42명 후보 중 38명(약 90%)이 50대 이상이다.
영남권 다음으로 국민의힘 출마자들이 선호하는 강원·충청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원 지역 공천 확정자 5명 중 4명(4선 권성동, 재선 이철규, 초선 유상범 박정하)이 50대 이상 현역 의원이다. 충청권 공천 확정자 명단을 봐도 19명 중 18명이 50대 이상이다. TK 지역 예비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국민의힘 한 정치인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번에 선거에 나와 보니 책임당원을 많이 갖고 있는 현역 의원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열심히 지역구 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역 의원을 뛰어넘으려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결국 이렇게 되면 돈 선거로 흐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이번에 정말 나쁜 전례를 만들었다.”
#시스템 공천의 허점
전통적인 쇄신 공천 대상이었던 영남권 국민의힘 텃밭에서도 현역 초강세 현상이 나온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평이다. 2월 25일 발표된 1차 경선 지역구 19곳 중 현역 의원이 참여한 곳은 7곳이었는데, 이 중 지역구 현역인 5명이 모두 승리했다. 정우택(5선·청주상당) 이종배(3선·충주) 박덕흠(3선·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장동혁(초선·충남 보령서천) 엄태영(초선·충북 제천단양)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정우택 이종배 박덕흠 의원은 동일지역 3선 이상이어서 경선에서 15% 감산 대상이다. 또 이들 중에는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30%에 속하는 바람에 추가로 20% 감산이 적용돼 무려 35% 페널티를 받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영환 공관위원장도 공천 결과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하위 30%에 포함돼 감산된 의원이 3명가량 있다”고 했다. 장동혁 사무총장 역시 “다선 의원 중에는 35% 감산을 받은 의원도 있다”고 전했다.
충청권에서는 대통령실 참모 출신이 공천 경쟁에 나섰는데 이들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청년 가산점을 받은 이동석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이종배 의원에게, 최지우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엄태영 의원에게 각각 경선에서 패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경선을 통해 자연스러운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경선 결과를 보면 지역구 현역 의원의 막강한 힘이 재확인됐다. 그러자 정가에선 국민의힘이 내세운 시스템 공천의 허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역에겐 감점을, 정치신인에겐 가점을 주자는 게 시스템 공천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들은 일찌감치 지역을 다져왔다. 김기현 대표 시절 공천 룰이 확정된 후 현역들은 시간만 나면 지방으로 가서 조직 관리를 했다. 하지만 정치신인들의 경우 경선이 시작된 후에야 유세를 할 수 있고, 당원 명부를 볼 수 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뜻인데, 이는 단순히 점수를 가감하는 것만으론 극복하기 힘들다는 게 정설이다.
‘잡음을 최소화하겠다’는 몸 사리기도 시스템 공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 야당의 쌍특검 공세가 이어지면서 이탈표를 우려해 현역을 가급적 배제하지 않는 기류가 흘렀다. 더욱이 이준석 대표 개혁신당까지 나오자 이탈자 걱정까지 생겼고 국민의힘으로서는 물갈이 시도에 나서기가 힘들었다.
쇄신 부족 비판이 쇄도하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부랴부랴 비난 잠재우기에 나섰다. 총선 후보를 추천받는 국민추천제를 도입, 적용 지역으로 텃밭인 서울 강남권과 TK 일부 지역구, 울산 남구갑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2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추천제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시스템 공천을 위주로 가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며 “그땐 욕을 얻어먹겠지만, 그것이 승리하는 공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추천제는 기존 공천 신청자 외에 추가로 후보를 추천받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추천을 통해 화제성이 있고 참신한 인물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기류가 더 강하다. 총선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추천 받을 인력풀이 일단 부족하고 기존 출마자들을 배제할 명분도 부족해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점쳐진다.
#쇄신 부재, 부메랑 될 수도
시스템 공천은 현재 권력인 용산과 미래 권력인 한동훈 위원장 측과의 마찰을 줄여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시스템 공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당이 유리해지고 있다는 총선 판세 전망에 묻히는 양상이다. 심각한 공천 내홍을 겪는 더불어민주당으로 인해 여당의 무감동 공천이 일단은 여론의 큰 주목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후폭풍을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정가에선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2004년 17대 총선을 발판으로 2007년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던 사례가 거론된다. 17대에서 국회에 있었던 어느 전직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여파로 한나라당이 뭇매를 맞고 있었는데 100석도 힘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가 들어와 TK에서조차 최경환·김재원 등 젊은 후보들을 등장시키고 비례대표에도 유승민 나경원 이주호(현 교육부총리) 등을 넣어 진용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그 결과 121석을 차지해 개헌 저지선을 만들었다. 정치적 힘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이번 총선에서 그런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한동훈 위원장의 젊은 이미지가 총선 후보들에게 전혀 투영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당 안팎에서는 토로하고 있다. 텃밭에는 과감하게 젊고 신선한 후보들을 넣었어야 했는데, 세대교체의 마중물을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여파로 향후 한 위원장의 당 장악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역들이 대거 생존해올 경우 ‘정치 신인’ 한 위원장이 과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천권자 힘이 아닌 자력으로 22대 국회에 들어왔다는 의원들이 절대 다수가 될 수밖에 없어 한 위원장에 대한 도전이 잇따를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여기에 한 위원장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친한동훈 인사’로 불릴 수 있는 공천자들을 거의 내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승리의 과실과 지분을 한 위원장이 과연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번지는 배경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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