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의원에 절대 유리한 ‘물 공천’ 비판…팬덤 확보했지만 당내 세력화 실패 평가
#불 공천 아닌 물 공천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원장 체제 때 ‘희생’이란 키워드를 받아들었다. 부산에서 3선을 한 하태경 의원이 서울로 지역구를 옮기겠다는 발표를 한 뒤 실제 이를 행동에 옮겼고 역시 부산 3선이자 ‘친윤 핵심’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쇄신’ ‘희생’ 등의 단어가 국민의힘을 휘감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런 뜻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면서 현역과 다선에 대한 물갈이를 담보하는 듯한 공천 제도를 내놨다.
국민의힘은 지난 1월 지지율에 따라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로 현역 의원을 평가, 하위 10%에 해당하는 의원들을 컷오프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무 감사 결과에다 당 기여도 등을 반영해 교체 지수를 산정하고 하위 10%를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되면 불출마 선언을 한 의원들을 제외한 지역구 현역 90명 중 자동적으로 7명이 우선 컷오프되는 결과가 나온다고 국민의힘은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중진들을 험지에 재배치한다는 명목을 달면서 공식적으로 컷오프된 의원은 나오지 않았다.
다선 의원 물갈이를 시사하는 듯한 공천 시스템도 나오기는 했다. 동일 지역구 3선 이상은 15%를 감점하고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30%일 경우, 20%를 감점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뚜껑을 열어보니 현역 의원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였다.
대구·경북(TK)을 비롯한 텃밭에서 당원 투표 50%, 일반 여론조사 50%를 반영하면서 정치 신인들은 당원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현역에게 밀렸다. 정치 신인은 인지도가 높지 않다보니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현역을 제치지 못했다.
시스템 공천은 조직력을 가진 현역 의원에게 절대 유리한 ‘현역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국민의힘 텃밭인 경북 의성·청송·영덕·울진 지역구에서 재선에 도전한 박형수 예비후보가 경선을 통해 3선 출신의 김재원 예비후보를 꺾고 본선에 올랐다. 김재원 후보의 경우, 3선 출신에다 오랜 방송 출연 경력으로 인지도가 꽤 높았지만 현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현역 불패와 함께 여당 공천의 또 다른 키워드는 ‘다선 불사’다. 국민의힘은 5선 김영선 정우택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주호영 정진석 조경태 권성동 권영세 김학용 김기현 윤상현 등 4·5선 중진들이 예상을 깨고 대부분 공천을 받았다. 5선 서병수, 4선 박진, 3선 김태호 조해진 의원은 선거구를 옮겨 공천을 받았고 민주당에서 넘어온 5선 이상민, 4선 김영주 의원도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이 밖에 3선 윤재옥 김상훈 박대출 유의동 윤영석 박덕흠 안철수 김도읍 이종배 이헌승 한기호 의원도 본선에 올랐다. 현역들이 대거 살아남아 다선 의원의 지위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이웃집 더불어민주당은 상황이 달랐다. 친이재명계 공천 논란이 벌어지면서 “친명 횡재, 비명 횡사” 논란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쇄신을 앞세워 다선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불출마를 선언한 6선 박병석, 4선 우상호, 3선 김민기 의원 외에 5선 변재일 안민석 4선 김상희노웅래 홍영표 3선 박광온 인재근 도종환 유기홍 전해철 김경협 전혜숙 의원 등을 비롯한 현역 의원이 대거 공천 탈락했다.
민주당 내에서 살아남은 다선 의원은 5선 조정식, 4선 김태년 안규백 우원식 윤호중 이인영 정성호 의원이다. 3선은 여권 강세지역에 출마한 홍익표 원내대표 등 12명이다. 3선 이상 중진 교체율은 40%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텃밭인 TK 지역에서 다선과 재선 대부분이 공천을 받은 것과 달리 민주당 강세지역인 호남에서는 경선이 진행 중인 곳을 제외하고 공천이 확정된 다선 및 재선은 4명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야당의 특검법 통과 엄포가 족쇄가 되면서 현역을 대거 쳐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선이 대거 살아남았고 현역 교체율도 낮아 한동훈 위원장의 당 내 지분은 많이 확보되지 못했다. 세력 확장 측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필터링 작동 안했나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대구 중·남구의 도태우 후보 공천을 지키려 했던 국민의힘이 결정을 뒤집었다. 3월 14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결국 공천 취소를 결정했다. 도 후보가 두 차례 내놓은 사과의 진정성을 믿어보겠다며 공천 유지를 결정한 지 불과 하루 만이었다.
공관위는 공천 취소 입장문에서 “도 후보의 경우 5·18 폄훼 논란으로 두 차례 사과문을 올린 후에도 부적절한 발언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관위는 공천자가 국민 정서와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한 경우 등에는 후보 자격 박탈을 비롯해 엄정 조치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고덧붙였다.
공천 취소 결정이 나온 날 오전까지만 해도 지도부와 공관위는 도 후보의 공천 취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도 변호사가 5·18 폄훼 발언에 대해 두 차례 사과문을 썼고, 특히 두 번째 사과문에서 5·18 정신을 존중하고 충실히 이어받겠다고 표방한 점 등으로 볼 때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 내에서는 안철수 후보를 비롯해 도 후보에 대해 강도 높은 질타가 나왔다. 더욱이 도 후보의 추가 막말 논란까지 터졌다. 도 후보는 2019년 8월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문재인의 이런 기이한 행동을 볼 때 죽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뇌물 혐의가 있던 정치인은 죽음으로 영웅이 되고, 그 소속 당은 그로 인해 이익을 봤다”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까지 한 것도 밝혀졌다.
국민의힘 공관위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취소한 것은 도 후보가 네 번째다. 3월 2일 경기 고양정에서 김현아 후보의 단수 공천을 취소하고 김용태 전 의원을 우선추천했다. 3월 8일에는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박일호 후보 공천을 취소하고 박상웅 전 국민의힘 중앙연수원 부원장을 우선추천했다.
3월 14일에는 충북 청주 상당 정우택 후보 공천을 취소하고 서승우 전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을 우선추천했다. 이어 도 후보까지 3월 14일 하루 동안에만 두 명의 공천을 취소했다. 최근엔 부산 수영 후보인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의 부적절 발언 논란도 일파만파로 확산 중이어서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당 내에서는 공천 결과 번복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오긴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3월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대구 중·남구 도태우 후보의 공천을 전격 취소한 것에 대해 “경선으로 후보가 됐으면 다음 판단은 본선에서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공당의 공천이 호떡 뒤집기 판도 아니고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비판했다.
홍 시장은 “중요 국가정책 발표는 하나도 없고 새털처럼 가볍게 처신하면서 매일 하는 쇼는 셀카 찍는 일뿐이니 그래가지고 선거가 되겠느냐”면서 한동훈 위원장에게 직격타를 날렸다. 그러면서 “일부 영입 좌파들에 얹혀서 우왕좌왕하는 정당이 되어버렸는데 우리가 투표할 맛 나겠느냐”면서 “또다시 가처분 파동이 일어나겠다”고 쏘아붙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공천을 취소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취소된 후보들이 반발하면 선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무엇보다 왜 공천 과정에서 그런 문제들이 걸러지지 않았느냐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심각하게 안 봤다면 안일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원톱 공고하지만 세력화는 실패
공천에 대해 여러 말이 많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한동훈 위원장 원톱 체제에 대해 이견이 없다. 여당의 선대위도 한동훈 위원장 원톱 총괄선대위원장 체제로 꾸려졌다. 나경원 원희룡 안철수 윤재옥 4명은 공동 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여권에선 강한 팬덤이 형성돼 한 위원장의 당 장악력 확보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한 위원장의 팬덤층 형성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여권 내에서 확고한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이고 뒤따르는 대선 잠룡들과의 격차도 크다. 이재명 대표와의 지지율 비교치에서도 박빙이다. 한 위원장이 방문하는 곳마다 구름 인파가 몰려드는 것도 그가 여당의 공고한 원톱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한 위원장은 이번 공천 국면에서 특검법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노출, 용산과의 완전한 차별화를 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낳았다. 꼬리표인 아바타 논란을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공동 선대위원장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경우, 당내 세력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인천에서 이재명 대표를 꺾는다면 당내에서 세력 전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험치를 근거로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예측했다.
“안철수 의원은 한때 대단한 지지율을 나타냈지만 대선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정치인은 팬덤도 중요하지만 정당 내에서 강력한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이 세력이 여론을 만들어가는 선순환 효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안 의원은 친안 세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달리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친박과 친문을 만들어내면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 공천 국면에서 친한을 다수 창출하지 못했는데 이 부분을 향후 극복해내야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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