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티 전 CFO 기소 유일 성과, 브로커 황 씨 혐의도 모호…사건 오래된 데다 주요 피의자 진술 엇갈려
#비싸게 산 땅은 맞을까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용성진 부장검사)는 삼성생명과 아난티의 서울 송파구 신천동 부지 부정거래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2009년 4월 아난티가 500억 원에 매입해 불과 2개월 뒤 삼성생명과 '준공부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1년 6개월 뒤 삼성생명에 970억 원으로 되판 땅이다. 현재 삼성생명 잠실 사옥이 위치한 곳이다.
이번 수사는 금융감독원이 2019년 아난티의 회계감리를 벌이다 허위공시 정황을 발견해 검찰에 통보하며 2023년 2월 시작됐다. 검찰은 삼성생명이 땅을 약 470억 원씩이나 비싸게 사고, 아난티가 그만한 차익을 본 경위를 살피려고 수사에 돌입했다. 차익의 일부가 삼성생명 관계자에 뒷돈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을 주로 의심했다.
애초 해당 수사는 2023년 8월쯤 마무리가 예상됐다. 검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했기에 이때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 이전에 끝날 것이란 분석이 컸다.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이홍규 전 아난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기소한 게 현재 유일한 성과다. 이마저도 금감원에서 적발한 허위공시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23년 3월 이뤄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건이 워낙 오래된 데다, 피의자 진술도 첨예하게 엇갈리는 탓에 수사가 지체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대한방직이 아난티에 소유권을 넘긴 배경을 놓고도 여러 진술이 나왔으나, 당시 대한방직 대표였던 고 설원식 전 회장이 이미 세상을 떠난 까닭에 수사가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건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삼성생명이 땅을 비싸게 샀다고 볼 수 있는지부터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고 알려졌다. 아난티가 500억 원에 산 땅을 삼성생명이 두 달 만에 970억 원에 사기로 약정한 자체는 사실이지만, 삼성생명이 토지뿐만 아니라 건물까지 사들였으므로 비싸지만은 않다는 주장이 있었다.
실제 아난티는 2009년 4월 3일 고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 개인이 보유해온 이 토지를 500억 원에 매입하고, 두 달 뒤인 6월 22일 삼성생명에 '건물 준공'을 조건으로 약 1000억 원에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6월 24일 아난티는 신세계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준공에 나섰고, 삼성생명은 2010년 12월 토지와 건물을 970억 원에 샀다.
검찰이 옛 삼성생명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9명을 소환해 조사했지만 불입건 방침을 내린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들 9명은 당시 신천동 부지를 970억 원에 매입한 게 적절한지를 심사했다. 결과적으로 승인이 이뤄지며 투심위도 배임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거론됐는데 검찰은 혐의 없음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이에 검찰은 삼성생명이 굳이 아난티를 거쳐 부동산을 매입한 이유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는 대한방직의 설 전 회장이 아난티가 아닌 삼성생명에 먼저 땅을 팔 수 있었다는 추측 때문이다. 대한방직 옛 관계자들이 검찰에 참고인으로 나와 "삼성생명이 아난티보다 비싸게 땅을 매입할 의사를 타진했었다"고 진술한 게 추론 배경이다.
검찰은 이러한 진술을 뒷받침할 자료도 이미 확보했다. 해당 부지 매각에 관여한 대한방직 관계자들이 간직한 삼성 측 부동산 담당 임원들의 명함과 일정표 등이다. 당시 신천동 땅 문제가 아니라면 양측이 만날 이유는 많지 않았다(관련기사 [단독] '아난티-삼성생명' 부정거래 수사망, 대한방직 오너일가까지 번지나).
이대로라면 설 전 회장은 삼성생명보다 싼값을 부른 아난티에 땅을 판 셈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거래이므로 검찰 시각에서는 설 전 회장이 아난티와 다운계약서를 쓰고, 남은 금액을 따로 챙겼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다만 이 부분 역시 입증은 쉽지 않았다. 설 전 회장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브로커의 진짜 정체는…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꼽히는 황 아무개 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검찰은 황 씨가 아난티와 삼성생명의 토지 거래를 중개한 '브로커'로서 본인도 대가를 지불 받고, 삼성생명 관계자들에 뒷돈이 흐를 수 있도록 조력했다고 의심해 왔다. 이에 수사 직후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질 인물로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그렇지만 황 씨가 기소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황 씨 역시 검찰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아난티 측 인사가 검찰 수사 초반부터 '황 씨에게 증빙 없는 돈 수억 원을 줬다'고 주장했으나 말 그대로 '증빙 없는 돈'인 데다, 황 씨도 "중개수수료 등 알선 대가 성격으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황 씨는 삼성생명 출신이지만 사건 당시에는 다른 회사에 소속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소속된 회사 동료가 대한방직 고위 임원이라, 그를 통해 설 전 회장의 신천동 부지가 매물로 나왔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다고 한다. 이에 회사 차원에서 투자 목적으로 땅을 구입한 뒤 되팔기로 구상했다.
황 씨가 당시 소속된 회사는 내부 검토를 거쳐 신천동 땅을 600억 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포기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해 회사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황 씨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아난티 관계자에 해당 땅을 소개해줬을 뿐, 브로커는 결코 아니라고 항변하는 중으로 파악됐다.
다만 검찰은 신천동 부지 거래 직후 황 씨의 수표가 서울 소재의 한 개발지에 투자금으로 흐른 흔적을 확인했다. 이를 신천동 부지 브로커 활동 관련 대가로도 의심하지만 결론은 아직이다. 우선, 출처가 불분명한 곳에서 종합소득세 신고상 기타소득에 잡히지 않는 수표 등을 대거 받은 정황에 따라 탈세 혐의부터 추가로 살피고 있다.
이 밖에 삼성생명이 토지의 최종 소유자가 된 배경을 놓고도 갖은 진술이 나왔다고 전해졌다. 검찰의 의심대로 삼성생명 일부 관계자가 브로커를 통해 뒷돈을 수수하고자 매입 작업에 나섰다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단순히 삼성의 여러 관계·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이 처음으로 잠실에 자리 잡는 차원에서 이같이 됐다는 증언도 있었다.
한편 검찰은 최근 전직 삼성생명 부동산 사업부장 이 아무개 씨를 배임 등 혐의로 소환했다. 2024년 2월에는 이만규 아난티 대표도 같은 혐의로 불러 조사하며 수사 칼날은 윗선을 겨누고 있다. 단, 1년 전 기소한 이홍규 전 아난티 CFO 재판은 공전 중이다. 2024년 1월 예정됐던 2차 공판도 검찰이 돌연 연기를 신청해 제자리걸음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방직 측은 '옛날 일이고 설 전 회장 개인 땅이었으므로 잘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 역시 사건이 오래 전 일이라 사실관계 확인 등이 어렵다고 전했다. 아난티 측은 당장 이만규 대표가 사건에 얽혀 있지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전해드릴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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