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합격점 ‘장원영 친언니’ 꼬리표 떨쳐…“차기작은 빌런 아닌 4차원 캐릭터 맡고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장다아에게 있어 데뷔작이면서 동시에 출세작이기도 하다. ‘피라미드 게임’은 한 달에 한 번 피라미드 게임이란 이름의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으며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한데 뒤섞인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점점 더 폭력에 빠져드는 학생들의 잔혹한 서바이벌 서열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장다아는 2학년 5반의 절대 권력자이자 피라미드 게임의 주동자 백하린 역을 맡아 선하고 아름다운 얼굴 아래 지독한 본성을 숨긴 사이코패스 악역 연기를 선보여 큰 호평을 받았다.
“백하린이란 캐릭터는 비언어적으로 표현할 부분이 많았어요. 대사라는 말의 힘도 물론 중요하기도 하지만 하린이의 작은 표정이나 몸짓의 디테일이 정말로 중요했죠. 제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하린이 연기의 버전 1부터 3까지 다 준비해 가기도 했는데, 워낙 감독님께서 배우들이 준비해온 걸 다 보시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셨기 때문에 저처럼 현장이 처음인 사람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제 연기를 볼 땐 만족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네요(웃음).”
피라미드 게임은 비밀 인기투표를 통해 25명의 학생을 A부터 F까지 등급 매기고 0표를 받은 F등급을 반의 ‘공식 왕따’로 정해 모든 폭력을 허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철저히 민주적인 투표로 등급 순위가 정해지는 것 같지만, 결국 ‘부동의 A등급’인 백하린에 의해 게임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전학생 성수지(김지연 분)가 ‘영원한 F등급’이었던 명자은(류다인 분)과 함께 반기를 들면서 백하린 역시 본성을 드러내고 이들에게 맞서게 된다. 직전까지 착하고 상냥한 반의 인기인으로 가장해 왔던 그가 서늘하고 잔인하게 돌변한 모습을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소름끼칠 만큼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었다”는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린이가 본모습을 드러내는 신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그 장면에서 제가 전보다 좀 더 자유롭게 연기했고, 연기할 때도 편안했던 것 같아요.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하린이는 인위적으로 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 어떤 선을 넘어가면 연기 속 연기를 하며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거든요. 하린이가 자은이와 수지 앞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며 ‘할 만큼 해봐, 내가 그래도 이겨’라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자은이에게 ‘도망쳐, 지금이야’ 이 대사를 하는 신이 특히 만족스러웠어요. 연기를 하는 제 자신이 스스로 즐기고 있단 걸 느끼면서 찍었던 신이기도 했고요(웃음).”
극 후반부에 이르러 백하린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그가 피라미드 게임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 전형적인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 그에게 자칫 잘못하면 동정이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설정이었지만 “너는 그저 가해자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성수지의 대사를 통해 ‘피라미드 게임’은 결코 가해자에게 동정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백하린을 연기한 장다아 역시 이 신을 중요하게 꼽으며 자신이 해석한 백하린을 설명했다.
“하린이는 심지가 굳은 캐릭터예요. 1부터 10까지 모든 것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행동하죠. 그런 모습은 실제 제 모습과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한편으론 하린이를 연기할 땐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더라도 하린이 자신만의 명분이 있다는 것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어요. 하린이가 가진 아픔과 트라우마, 상처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표현의 방식으로 ‘하린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구나’라는 걸 표현하려 했죠. 다른 사람은 절대로 하린이의 행동을 이해해선 안 되지만 최소한 저만큼은 하린이의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어요.”
신인 답지 않은 연기로 대중을 놀라게 한 장다아는 ‘피라미드 게임’이 공개되기 직전, 걸그룹 아이브의 인기 멤버 장원영의 친언니라는 사실이 먼저 알려져 그야말로 ‘핫이슈’가 되기도 했다. 배우로 인정받기 전에 다른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어버린다는 것은 본인에게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었을 터다.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동생의 인지도에 ‘묻어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대중들의 섣부른 오해를 맞닥뜨려야 하는 것도 장다아가 데뷔 직후부터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러나 본인은 오히려 의연한 태도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역시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었다.
“‘장원영의 친언니’란 수식어는 제가 의도해서 알려진 것도, 원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자연스럽게 알려진 것이라서 제가 그쪽에 신경을 쓰거나 하진 않았고 지금도 그냥 배우 장다아로서 본분을 다하려고 해요. 사실 그 사실이 알려진 건 회사 의사와도 별개였거든요. 그리고 이미 기사가 나버린 뒤엔 제가 숨기고 싶다고 숨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되니까요(웃음). 촬영할 때도 그 일에 제 에너지를 쏟아서 작품에 대한 집중을 깨트리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어요. 오로지 백하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것만을 고민했죠.”
언니는 배우, 동생은 아이돌의 길을 선택한 것은 비슷한 시기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우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는 장다아는 “그때쯤 동생도 우연찮게 그 일(아이돌)을 시작하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장원영이 아이돌로서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던 반면 장다아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무대라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이든 좋았다고 말했다. “연예계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애정 덕에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저희는 각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어요. 동생은 아이돌로 먼저 데뷔하고, 저는 줄곧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연예계 데뷔로 이어지면서 우연하게 서로 겹치게 된 거죠. 모든 현실 자매들이 그렇듯 저희도 서로 일적인 부분은 피드백 해주지 않아요. 각자 알아서 하는 식이라 동생도 제 일에 대해 그냥 ‘언니가 하고 싶은 일 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을 거예요(웃음). 워낙 서로가 자기 일을 부담하고 감내하는 성향이 똑같아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고민을 얘기하거나 의지가 돼주는 것보단 마음속으로 응원하죠.”
동생과는 다른 길을 걷기로 일찌감치 선택한 장다아는 ‘장원영의 친언니’란 타이틀을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어느 정도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연예인을 가족으로 둔 또 다른 연예인이 데뷔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홍역을 무사히 치러낸 데다 깐깐한 대중들로부터 연기로도 합격점을 받아내는 어려운 과제를 두 개나 통과해 냈으니, 앞으로의 그에겐 말 그대로 ‘꽃길’만이 펼쳐지지 않을까.
“첫 작품에서 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이번엔 악독한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다음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만날 때는 일상적인, 4차원 같으면서도 밝고 명랑하며 톡톡 튀는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또 한편으로는 진취적이면서도 솔직하게 말을 쏘아내는 강한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 캐릭터라면 제 실제 성격도 잘 반영될 것 같아요(웃음). 언젠가 대중들이 저를 기억해 주실 때 ‘다음이 예상되지 않는 배우’라고,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서 대체될 수 없는 배우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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