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증가했지만 현금 지원 비중은 축소…‘템플스테이’ 등 연관성 없는 사업 지적도
#부풀려진 ‘인풋’ 효과 없는 ‘아웃풋’
‘저출산 예산’은 범위가 매우 넓은 예산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출산 관련 비용 지원, 영유아 보육비 지원 예산이 있는가 하면, 정부부처에 따라 저출산 예산으로 생각되지 않는 사업까지 포함돼 있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관광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가족여가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교육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교의 학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 사업’ 예산을 저출산 예산으로 편성했다.
실제로 저출산 예산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저출산 예산’이 학계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정책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보건 복지 전문가들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육아나 보육에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예산만을 지칭하지만 대한민국은 저출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면 모두 저출산 예산 범주에 포함된다.
따라서 출산·육아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뿐만 아니라 교육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예산도 포함되고, 뜬금없는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청도 저출산 예산을 편성한다. 심지어 국방부도 예외가 아니다. 해외 기준으로 저출산 문제를 대응하고자 하면 대한민국의 저출산 예산은 ‘뻥튀기’ 되어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저출산 대책에 대한 불신을 줄이기 위해 가정에 직접적으로 보탬이 되지도 않으면서 규모만 키워온 저출산 예산의 착시 효과부터 거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출산 예산을 산정하는 구체적 기준 역시 임의적이다. 대표적인 간접 지원 예산인 주거 지원 사업의 경우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자금 대출 사업과 임대주택 사업이 핵심이다. 그런데 대출 사업의 경우 대출 원금 전액을, 임대 주택 사업에는 주택 건축비를 반영한다. 다시 보전이 되는 자본 예산이란 점이 반영되지 않아 예산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저출산 예산을 분석해보니,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사업은 5년 새 8배 넘게 증가해 2020년에는 약 18조 원이 편성됐다. 당해 전체 저출산 예산의 44.8%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사업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원래 투입돼야 할 예산이라는 점이다.
한편 매해 투입되는 저출산 예산은 점점 부풀고 있다. 2006년 2조 1445억 원이었던 저출산 예산은 2012년 11조 430억 원, 2015년 20조 1985억 원, 2021 46조 6846억 원, 2023년 48조 1680억 원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23년까지 18년 동안 투입된 금액은 379조 8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오히려 곤두박질쳤다. 더 많은 예산을 사용했지만 정작 사태는 더 악화된 셈이다.
#줄어드는 현금 지원 비중
2023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은 48조 원이 넘는데 출생한 신생아 수는 23만 5000여 명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신생아 1명당 2억 원씩을 지급해도 예산이 남는다. 현실은 어떨까. 2024년 기준으로 출산 가정에는 ‘첫만남이용권’이라는 바우처가 지급된다. 첫째는 200만 원, 둘째 이후부터는 300만 원이다. 또한 ‘부모급여’라는 명목으로 0~11개월 아이의 부모는 월 100만 원, 12~23개월 아이의 부모는 월 50만 원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만 2세부터는 가정양육 시 지원되는 월 1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과, 8세 미만 아동에게 지원되는 월 10만 원을 전부 합쳐도 2억 원이라는 숫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원인은 저출산 예산 속 낮은 현금 지원 비중에 있다. 저출산 예산은 크게 직접 지원 예산과 간접 지원 예산으로 나뉜다. 직접 지원 예산에는 현금 지원 예산과 서비스 지원 예산 등이 있으며, 현금 지원은 앞서 단순 계산한 것처럼 직접 현금을 주는 방식이고, 서비스 지원은 어린이집이나 돌봄학교 등 아이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시설에 지원함으로 육아와 가사에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정부가 18년 동안 380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예산을 보면 오히려 현금 지원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신생아 1명당 2억 원의 지원도 가능하단 일부의 기대가 어긋났던 이유기도 하다.
2023년 10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초저출산 장기지속 시대의 인구위기 대응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 지원 정책의 비중은 2019년 기준 GDP의 0.32%에 불과해 OECD 평균(1.12%)의 3분의 1 수준이다. 보고서는 “저출산 예산 증가는 줄곧 과대 계상됐으며 해외와 비교 가능한 가족지원 지출 비중 지표에서는 여전히 작고 그마저도 서비스 지원에 편중됐다”며 “예산 증가가 정책 수요자들이 체감할 만한 가족지원 증가로 이어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살펴봤다. 2005년 9월부터 시행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출범한 대통령직속협의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총 4차에 걸친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추진 중이다. 제1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2006년~2010년)과 제2차 기본계획(2011년~2015년)은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지향했다면, 제3차 기본계획(2016년~2020년)은 사회구조적인 대응을, 제4차 기본계획(2021년~2025년)은 삶 전반의 질 제고 측면으로 방향이 점차 이동했다.
제1차 기본계획의 세부 예산은 대부분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를 중점 과제로 삼으며 현금 지원 예산이 중점적으로 편성됐다. 전체 저출산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영유아 보육료 지원(여성가족부) 예산은 2006년 8383억 원에서 2008년 1조 5175억 원, 2010년에는 3조 3363억 원까지 증가했다. 전체 저출산 예산 가운데 영유아 보육료 지원이 차지한 비중은 2006년 약 40%에서 2010년 약 57%로 커졌다. 만 5세 이하 교육비 지원(교육인적자원부) 예산 역시 각각 2006년 3886억 원에서 2010년 5153억 원으로 상승했다.
실제로 당시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현금 지원 정책에 대한 인식률이 간접 지원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2007년 리서치 업체 엠브레인이 패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6%가 현금 지원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 정책을 인지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저출산 정책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은 응답은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 정책, 영유아 양육비 지원 정책 순이었다.
제2차 기본계획의 경우도 제1차 기본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양육비용 지원 확대’라는 정책 과제에 해당하는 영유아 보육료 지원과 유아교육비 지원이 대표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전체 저출산 예산(7조 3950억 원) 중에서 약 61%를 차지하는 사업은 보육료 지원(보건복지가족부)으로 4조 5394억 원이 배정됐다. 제1차 기본계획과의 차이는 휴직 전 임금의 40%를 보장하는 육아휴직급여 정률제를 시행하고, 시간연장형 보육서비스 지원을 확대하는 데 1조 원 이상의 예산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는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과 유치원 교육과정을 통합한 누리과정 정책(교육과학기술부)이 실시됐다. 이에 따라 1조 108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영유아 보육비 예산 대비 교육비 지원 예산 비중이 커졌다. 누리과정이 3~5세 아동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2015년 기준 저출산 예산의 20%가 교육비용 예산으로 집계되기 시작했다.
제3차 기본계획은 이전의 저출산 계획과는 큰 차이를 드러냈다. 제3차 기본계획부터는 청년일자리, 주거지원 등 환경 조성과 관련한 간접 지원 예산이 빠르게 증가했다. 제3차 기본계획의 방향성이 사회구조적 대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38%였던 간접 지원 비중은 2020년 50%를 넘겼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처럼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되지 않아도 집행됐을 예산이 제3차 기본계획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초과했다.
반면, 출산과 보육, 돌봄 등 출산·양육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항목의 예산은 2016년 이후 저출산 예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축소됐다. 2015년 보육비와 양육수당 등 현금 지원 비중은 31.4% 수준이었지만, 2016년 11.5%로 급감했다. 구체적으로는 아동 양육비용 지원의 증가 폭이 둔화됐고,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제3차 기본계획의 과제 자체는 80%를 상회하는 높은 이행률을 기록했지만, 결과적으로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9명으로 떨어진 이후 약간 회복세를 보이다가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감소해 2020년 0.84명에 이르렀다. 제1·2차 기본계획은 영유아 양육비를 직접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비중이 매우 높은 예산 구성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016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는 합계출산율과 현금 지원 비중의 감소는 유의미하게 비례하는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행 제4차 기본계획은 더욱 착시효과가 심한 예산 구성을 보인다. 2019년 영유아 양육비 지원 예산을 앞지르기 시작한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사업(국토교통부)은 2022년 23조 3980억 원으로 당해 저출산 예산의 45%를 차지했다. 앞서의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제4차 기본계획의 ‘삶의 질 제고’라는 패러다임 하에서 저출산 대응에 포함되어야 할 사회정책과 포함되지 않아야 할 사회정책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주거 지원 정책이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저출산 대응을 정확히 타기팅하는 효과는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부터 부모급여 등 현금 지원을 강화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과 늘봄학교 추진 등을 통한 직접 지원 정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실제로 2024년 예산안에는 2023년보다 부모급여 등 현금 지원에 약 7600억 원,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에 약 1100억 원이 증액된 금액이 반영됐다. 하지만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에 반해 재정적자가 심해지면서 향후 저출산 대응 예산의 확보를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제기되는 상황이다.
#‘프로스포츠 인재 발굴’이 저출산 정책?
일각에서는 직·간접 지원의 차이보다는 저출산 대응과 연관성이 낮은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정부부처 간 혼선이 빚어지는 탓에 저출산 정책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무늬만 저출산 예산’인 정책을 각 부처가 면피성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380조 원으로 편성된 거대 예산을 하나씩 뜯어보면 저출산 대책과 거리가 먼 사업들이 많았다.
2021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에 따르면 ‘기타 예산’으로 분류된 저출산 예산의 세부 내용은 2011~2015년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노숙인 등 알코올중독자 사례관리’, 2016~2018년 ‘고성장기업 수출 역량 강화, 국가직무능력표준 개발 활용’, 2019년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2021년 ‘기술창업투자연계과제 R&D’ 등이다.
‘기타 예산’이 아닌 명확한 항목으로 포함됐지만 저출산 대응과 연관성이 낮은 예산도 있었다. 제1차 기본계획에서 가족의 여가문화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로 종교문화활동 지원(약 39억 원), 템플스테이 운영 및 시설지원 사업(약 700억 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7년 청소년위원회(2008년 보건복지부로 흡수)는 위기 청소년에게 전문가 및 필요 기관을 연계하여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52억 원, 청소년 약물남용 등 예방 및 치료 재활 예산에 4억 5000만 원의 저출산 예산을 편성했다.
제2차 기본계획에는 공무원의 원격근무를 지원하는 ‘스마트워크센터 구축 사업’과 ‘성범죄자 재범방지 조치 강화’가 포함됐는데 각각 5년 동안 154억 원과 198억 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제3차 기본계획 기간인 2016년부터 2018년 총 3년 동안에는 대학교의 학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 사업이 저출산 예산 명목으로 무려 5237억 원을 배정 받았다.
제4차 기본계획에도 저출산과 연관성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상당수의 예산이 존재했다. 2022년 저출산 예산 항목에는 ‘군인 및 군무원 인건비 지원(987억 원)’, 스마트 교육 인프라 및 학교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조성(1조 8293억 원)’, ‘만화·웹툰 관련 산업기반 조성 사업(40억 원)’ 등이 포함됐다. 이 밖에도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조 7115억 원이 투입된 고용노동부의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역시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됐다. 특히 같은 기간 ‘프로스포츠 우수 인재 발굴 사업(22억 원)’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돼 당시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안수지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에서 “2022년 기준 저출산 대응 사업 예산에는 군무원, 장교, 부사관 인건비 증액이나 대학 육성사업, 관광 활성화 사업 등 저출산 대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거나 효과성이 낮은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업은 줄이고 출산이나 보육과 관련한 지원 예산은 늘려야 한다는 게 국회입법조사처의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기본계획에서 명확한 방향 설정이 부재한 상태로 개별 부처에 저출산 과제를 촉구하는 식으로 이행된 점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개별 사업들이 상호작용하며 아이를 낳기 좋은 사회를 구축했어야 하지만, 과제 이름만 ‘저출산’으로 내건 면피성 정책이 많다 보니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이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각 부처에 ‘저출산 정책을 내놓으라’ 하니 부처마다 내긴 내야 하고 실적도 있어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저출산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들이 꽤 많다”며 “기본계획을 정해 놓고 딱 ‘이거를 하자’가 되는 게 아니라 기존에 하던 사업 중 기본계획에 들어갈 만한 사업을 제시하는 식이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2018년 ‘3차 기본계획 재구조화 연구’을 통해 “(저출산) 정책수단의 성격과 다양성이 충분히 고려돼 정책 간 균형과 소관 부처들 간 조율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과제들은 부처별로 기획·수립된 고유 사업들 가운데 관련 부분이 조정·협의를 통해 기본계획에 편입된 형태로 부처 개별의 중장기 기본 계획 및 전략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낸 바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부터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전 부처 저출산 대책 예산을 받아 전수조사를 진행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출산) 정책이 나열적·분산적으로 진행돼 많이 흐트러졌고 여전히 정책 간 엇박자는 심하다”라면서 “예산 검증, 정책 비판을 제대로 못한 국회 책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 원인은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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