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동훈 때리며 존재감, 안철수·나경원 ‘비윤 구심점’ 가능성…오세훈·원희룡·이준석 행보도 주목
2024년 4월 초 여권 한 인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소위 ‘잠룡’이라고 불리거나, 자신이 ‘잠룡’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복지부동 자세로 현재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면서 “총선 결과에 따라 혹시나 유의미한 ‘틈’이 생긴다면 여권 내부 상황은 상당히 복잡한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점쳤다.
총선 투표함을 열자, 유의미한 틈이 발생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야권이 192석을 차지했다. 집권 3년 차인 윤석열 정부는 중간고사에서 낙제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9회말 2아웃 상황 집권 여당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총선 이튿날 사퇴했다. 보수진영 유력 차기 주자로 급부상했던 한 전 위원장이 힘없이 물러났다.
4월 11일 한 전 위원장은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저부터 깊이 반성한다”면서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면서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국민만 바라보면 그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치권 컴백 여지를 남겨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4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한 전 위원장과 관련해 “아무 정치 경험 없이 선거 관리에 뛰어들어 선거에서 패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최소한 1년 정도는 쉬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고문은 “이번 전당대회에 (한 전 위원장이) 당장 또 나타나게 되면 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전 위원장이 향후 대선에 등판할 수 있을지 여부와 관련해선 “쉽게 등판하기 힘들다”고 바라봤다.
한 전 위원장이 물러난 틈을 타 여권 내부에선 이른바 잠룡급 중진들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다. 홍 시장은 ‘한동훈 때리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 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깜’도 안 되는 한동훈이 들어와 대권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총선을) 말아 먹었다”면서 “총 한번 쏴본 일 없는 병사를 전쟁터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한동훈 전 위원장을 직격했다.
홍 시장은 ‘강성 발언’을 게시했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4월 15일 홍 시장은 “다시는 우리 당에 얼씬 거리지 말라”면서 “조용히 특검에 대처할 준비나 하라”는 글을 게시했다가 지웠다. 홍 시장은 “얼치기 좌파들과 함께 퇴출될 걸로 봤는데, 무슨 차기 경쟁자 운운이냐”면서 “그건 너희들의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는 내용도 썼다가 삭제했다. 이 역시 한 전 위원장 저격으로 풀이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여권 원로 중 한 명인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총선 패배에 따른 ‘훈수’일지 본인이 직접 등판하기 위한 ‘몸 풀기’일지는 상황을 좀 더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을 강하게 때리는 상황은 오히려 여권 내 ‘한동훈 파이’를 키울 수도 있다”고도 했다.
연일 한 전 위원장과 관련한 강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홍 시장은 4월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국정기조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본격적인 광폭 행보에 돌입한 양상이다. 홍 시장은 후임 국무총리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실과 차별화를 앞세워 입지 구축에 나선 잠룡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중간고사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은 상황에서 ‘비윤 프리미엄’을 노리는 주자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쉽지 않은 승부 끝에 생환한 나경원 당선인과 안철수 의원 이야기다. 두 사람은 모두 차기 당권주자 후보군으로 거론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최근 ‘채 상병 특검’에 대해 정부여당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복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으로 채 상병 특검에 대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소신을 강조했다. 정부여당이 ‘채 상병 특검’과 관련해 취하고 있는 스탠스와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한 뒤 국민의힘에 합류한 안 의원은 ‘친윤’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 행보를 이어왔다. 이번 총선에서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과의 빅매치 승리를 이끌어내며 ‘비윤 프리미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경원 당선인은 한강벨트 최대 승부처로 꼽혔던 서울 동작을에서 생환한 뒤 보폭을 넓히고 있다. 나 당선인은 4월 16일 국민의힘 여성 당선인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여권 내부에선 ‘독자 세력 구축 움직임’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나 당선인은 ‘차기 당권 도전’과 관련해선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선 나 당선인이 향후 ‘비윤’ 구심점이 될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윤석열 정부 탄생에 일조했던 안 의원과는 달리, 나 당선인은 줄곧 주류 세력과 대척점에 서왔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비윤 세력은 윤 대통령 행보를 견제할수록 프리미엄을 얻게 되는 구도가 됐다”면서 “차기 당권 주자가 (나 당선인 등) 비윤계에서 나온다면, 국민의힘 ‘탈윤’ 행보에 가속 페달이 밟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 행정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서의 참패가 선거 결과를 좌우했던 만큼, 여권 내부에선 ‘소통령’으로 통하는 서울시장 오세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퀴어 축제’ ‘성인 페스티벌’ 등 개최를 불허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 시장이 ‘보편타당’에 수렴하는 행정 행보를 통해 은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친윤 잠룡군’에 꼽혔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총선 ‘명룡대전’에서 패했다.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비서실장 인사 하마평에 이름이 거론됐다. 여권 내부에선 당 내부 무게중심이 단기적으론 ‘비윤’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어 원 전 장관은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각을 여권이 아니라 보수진영 전체로 넓히면 경기 화성을에서 생환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잠룡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이 대표에 대해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 있다”면서 ‘대업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이 대표와 관련해 “2027년 대선이 있는데, 그때 대선주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독자적 정치노선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한 데다, ‘강성 비윤’ 면모를 가지고 있어 향후 정치적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런 이야기들에 선을 그었다. 4월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대표는 진행자로부터 ‘용꿈 안 꾸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저는 (용꿈) 안 꾸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자꾸 주입하고 있다”면서 “머릿속에 용꿈이 들어갔다 나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잠룡들의 행보에 큰 의미를 두기엔 너무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평론가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메시지전략연구소장은 “지금은 보수 잠룡의 시간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여당 입장에서 지금은 오히려 리빌딩의 시간”이라고 짚었다. 최 소장은 “공간이 살짝 열리니 일부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선은 아직 3년이나 남았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잠룡군들이 본인들의 정체성과 지지 기반과 관련해 어떤 포지션을 잡을지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했다.
그는 “잠룡들이 기지개를 켜기엔 대선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남았고, 길목 길목에 변수가 너무 많다”면서 “현행 당헌 상 1년 6개월 임기인 차기 당권을 노리는 것도 독이 든 성배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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