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입대 기피’ 고의 교통사고 동영상 캡처. 이 씨가 시속 50㎞로 달려오는 차량에 실제로 부딪히는 장면이다. |
지난해 11월 28일 오후 2시,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황령산 레포츠공원 인근의 한 골목에 20대 남녀 7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한낮이었지만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인데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인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젊은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 내용도 심상치 않았다. “네 차로 퍽 떨어지는 거 아닐까?” “잘될까” “어떡하지” 등 뭔가를 심각하게 논의하는 듯 보였다.
이내 여자들만 남겨둔 채 남자 2명이 움직였다. 한 남성은 검은색 SM5 차량에 올랐고 수십 미터 앞에 또 다른 남성이 자리를 잡고 섰다. 운전대를 잡은 남성은 고 아무개 씨(26)로 골목에 선 이 아무개 씨(22)와는 동네 선후배사이. 두 사람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이더니 고 씨는 곧장 이 씨를 향해 차를 몰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씨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바라보기만 할 뿐 피하려 하지 않았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 다행히 차는 멈춰서 친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고 씨는 차량을 몰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이번엔 그대로 이 씨를 들이받았다. 시속 50㎞가 넘는 속도의 차에 부딪친 이 씨는 공중으로 솟구친 뒤에 땅으로 떨어져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주변에서 재미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촬영하던 친구들도 이 모습을 보곤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와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완전범죄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이 씨의 교통사고 자작극은 친구 A 씨의 ‘배신’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 9월 24일 이 씨와 갈등을 겪던 A 씨가 범행 현장에 있던 친구로부터 동영상을 넘겨받아 국민 신문고에 올리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 결국 이 씨는 지난 7일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경찰에 검거됐으며 다른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고 씨에게서도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난 이 씨의 입대 연기 경력은 화려했다. 2009년 현역1급 판정을 받은 이 씨는 2008년에 발생한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핑계로 재검을 신청해 2급 판정을 받아냈다. 그 후 이 씨는 대학 진학을 이유로 한 차례 병역을 연기했으나 학교는 한 달 만에 자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다음에는 국가고시를 준비한다며 입영을 미뤘는데 이 역시 거짓이었으며 다시 입영통지서가 날아오자 교통사고 자작극까지 벌이게 됐다고 한다.
더욱이 이 씨는 특수절도 전과 2범으로 교통사고 보험사기단에 몸담고 있었던 터라 ‘일’은 수월했다. 고 씨 역시 칠성파 조직원 출신으로 또 다른 조직에서 교통사고 보험사기단을 꾸리고 있어 공범으로는 적격이었다. 하지만 완벽했던 두 사람의 사기극은 이 씨와 함께 보험사기단으로 활동했던 A 씨의 고발로 막을 내렸다. 보험금 배분문제로 이 씨와 갈등을 겪다 여자문제까지 생기자 이를 참지 못하고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부산연제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당시 이 씨는 여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던 상태로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때문에 자작극을 벌이기 전에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입영 연기가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몇 차례 입영을 연기한 바 있던 이 씨는 병무청으로부터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다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후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현장에 있었던 나머지 5명은 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이 씨는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는 이상 죗값을 치른 뒤 입대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학사과정을 마친 신 아무개 씨(36)는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지난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단 하나, 군복무를 위해서였다. 일정 절차를 밟아 얼마든지 해외영주권을 획득해 군복무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신 씨는 자진해서 입대를 했다. 부끄럼 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 위해 입대를 선택했다는 신 씨는 지금도 자신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신 씨뿐 아니라 이미 해외영주권을 가지고 있어 군복무 의무가 없는 남성들도 자진입대를 희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육군훈련소는 해외영주권자의 적응을 돕기 위해 1주간의 초기 적응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벌써 1038명에 이르는 장병이 이곳을 거쳐 갔다. 국적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들이 자진입대를 선택한 것은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이유뿐이었다.
30세의 늦은 나이에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이현준 씨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미국 국적을 가져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입대 직전까지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비록 국적은 미국이었으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지 않았던 이 씨는 종종 외국인으로부터 “군대는 갔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의무가 아니기에 심각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군복무. 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반복될수록 당당히 “네”라고 대답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결국 지난 8월 이 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