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대 투입 적정” 혐의 부인, “핼러윈 용산서 담당” 주장…검찰 “압사 상황 보고 받았는데도 퇴근”
#공소사실 단 한 가지도 인정 안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결과만 놓고선 미리 예측이 가능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비현실적 주장으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론에 불과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김 전 청장 측 변호인은 3월 11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권성수)에서 열린 공판 준비기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김 전 청장은 법정에 출석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등 혐의를 벗는 데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전 청장은 4월 22일 열린 첫 공판에서 역시 검찰의 공소사실을 단 한 가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로서는 '최선'의 조치를 이행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변호인은 "사건 전 언론보도를 봐도 과거만큼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였다"며 "용산경찰서가 경험에 기초한 보고를 했고, 서울청은 가용 경력을 최대한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결과론만 갖고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점을 의식한 듯 초반부터 그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와 전문성을 부각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은 2004년 경정 특채로 입직해 서울경찰청장에 오르기까지 경찰 업무에 관한 고도의 전문성을 지녔다"며 "그에 따른 권한도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그러면서 "2005년 상주시민운동장 압사 사고 이후 경찰은 다중운집행사 관련 매뉴얼을 갖추고 운영해오고 있다"며 "하지만 이태원 참사 때 김 전 청장은 사전에 각종 보고를 받았음에도 다중운집 대응 체계를 적절히 가동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때 검찰은 김 전 청장이 받았던 보고의 핵심 내용들을 전부 읊기도 했다.
이날 쟁점은 참사 당시 경찰의 기동대 배치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이뤄졌는지 여부였다. 김 전 청장 측은 "언론 등이 코로나 때 자료만 참고해 기동대가 적게 배치했다고 말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는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도록 하고자 이례적으로 많이 배치했었다"며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참사 당일 기동대 투입 규모는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그 부분은 다시 살펴보고 따져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전 청장은 참사 당일에 압사 신고가 잇따른다는 상황을 보고받았는데, 인근 삼각지역에서 집회·시위 관리 업무를 마친 기동대를 추가 투입하지 않은 채 해산시켰고 본인도 그 자리에서 퇴근했다"고 참사 발생 당일 그의 행적을 들춰냈다.
이제 시작된 김 전 청장 재판을 끌고 갈 쟁점은 앞으로 크게 두 가지다.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와 기동대 등 경찰력 배치·투입이 적정했는지다. 이날 재판에서는 기동대 투입에 관한 공방이 주로 오갔는데, 김 전 청장의 여러 주장들 가운데 경력 지원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한 대목은 두고두고 비판 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요신문이 참사 당일 오후 10시 18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 26분까지 소방 무전 기록을 분석해보니, 이 시간 동안 경찰이 언급된 교신은 총 44차례에 달했다. 이 가운데 경찰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만 19건이다. 오후 10시 20분부터 경찰 추가 투입 요청이 잇따랐고 그 후에는 '경찰 출동 독촉 좀 해달라'는 교신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밤 11시 23분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처음으로 교신한 무전도 경찰 출동이 필요하다는 지시였다. 그는 "이제 내가 직접 지휘한다"며 "○○은 서울경찰청에 연락해서 기동대 빨리 출동되도록 하라"고 했다. 이 지시를 받은 당사자는 7분 뒤 관제대에 전한 무전에서 "경찰, 뭐 특수기동대나 경찰 요청 좀 많이 해 달라"고 또 부탁했다.
결국 경찰 기동대는 사고 발생 약 1시간 30분이 지난 밤 11시 40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11기동대였다. 뒤이어 11시 50분 77기동대, 이튿날 0시10분 67기동대가 도착했다. 그러고도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어느 의료진이 경찰에 가로막혀 사고 골목에 진입이 힘들다는 무전도 있었다.
#희생자 유족들 "김광호 엄벌" 촉구
김 전 청장이 가야 할 길은 매우 길고 험난해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시행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도 내용에 담겼는데, 사실상 김 전 청장 등 '윗선'의 혐의 입증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라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미 기소까지 된 김 전 청장은 재판 도중에도 새로운 사실관계나 혐의가 추가로 반영될 수도 있다. 준비기일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있으나,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김 전 청장에 불리한 재판이 전개될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김 전 청장은 자칫 '덤터기'를 써야 할 수도 있어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참사 예방은 물론 사상자 발생을 방지 혹은 축소할 수 있는 실효적 권한이 김 전 청장에 집중돼 있는 탓이다. 행안부 장관이든 경찰청장이든 김 전 청장에 책임을 떠넘기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다.
현행 경찰법을 보면 각 시·도경찰청장은 '국가경찰' 업무는 경찰청장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자치경찰' 사무는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질서 유지 및 경찰력 배치 권한이 전적으로 김 전 청장 몫이었다는 뜻이다. 기동대 운영 역시 시·도경찰청장이 '총괄 지휘한다'고 돼 있다.
실제 최근 재판은 앞으로 남 탓 공방이 오갈 수도 있는 여지도 일부 보여줬다. 이번 김 전 청장 재판에는 함께 기소된 류미진 서울경찰청 전 112상황관리관과 정대경 전 112 상황팀장도 법정에 같이 섰는데, 이들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다른 이들 쪽으로 돌렸다.
예컨대 '112신고를 통해 이상 상황을 빨리 감지하고 초동 조치를 다 하지 않은 이유'를 놓고 두 사람 측 변호인은 "112신고 등을 통해 이상상황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면서 "초동조치 등은 상황관리관이나 팀장의 역할이 아니라, 상황실장이 서울청장의 권한을 대리행사 하도록 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청장 측마저도 '기동대 파견' 문제를 놓고 "핼러윈 축제는 용산경찰서 담당으로 서울경찰청은 지원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며 마치 문제의 근본적인 책임이 용산서에 있다는 듯 발언했다. 김 전 청장은 또 "언론뿐 아니라 행정기관은 물론 행정기관의 장들 가운데서도 참사를 예견한 쪽은 없었다"고도 부연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공판 전 법정에 들어서는 김 전 청장을 둘러싸고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의 옷가지와 머리채를 잡은 채 "내 아이 살려내" 소리치고 오열했고, 법정을 향해서는 "김광호를 엄벌하라"고 촉구했다.
재판에서도 발언 기회를 얻으며 엄정한 판결을 요구했다. 고 신희진 씨 어머니는 "서울경찰청장은 나이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냐"라며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실력 없는 사람을 임명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부디 상식이 법이 되고 법이 상식이 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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