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 선수는 ‘국내 팬들을 위한 마지막 경기는 이미 치렀다’며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아무래도 올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넥센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7회 강정호한테 솔로 홈런만 맞지 않았어도 10승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경기 이후로 강정호하고는 전화 한 통 안 했다. 대전 오면 매일같이 저녁을 먹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는데 내가 삐쳐서 전화 안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전화를 안 하더라(웃음). 미안해서라도 자기가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지막 경기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10이닝을 던졌다. 역투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승을 거두지 못해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9회 끝나고 잠시 고민했지만 무조건 10승을 챙기자는 마음에 더 던지겠다고 결심했다. 더욱이 9회까지 108개 정도의 볼을 던졌기 때문에 더 안 던질 이유가 없었다. 만약 10회에도 공을 적게 던졌더라면 계속했을 지도 모른다. 정말 간절했다. 10승이….
―10승이 간절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 때문이었나?
▲(한참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사실 한대화 감독님이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실 때 나를 따로 부르신 후 하신 말씀이 있었다. ‘꼭 10승하라’고. 그래서 나도 10승을 달성하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한테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은 큰 의미가 없다. 이루면 어떻고, 못하면 또 어떤가. 한 감독님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이루고 싶었다.
―올 시즌 한화가 유독 부침이 많았다. 시즌 도중 사령탑이 경질되는 상황도 겪었는데 선수 입장에선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에이스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죄송했다. 당시 내가 6승 정도를 거둔 터라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감독님이 한화를 맡으신 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누굴 탓하겠는가. 다 내 탓이지.
―‘류현진’하면 ‘불운의 투수’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투수’ 등으로 불린다. 올해 잘 던지고도 승을 챙기지 못한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새삼 야구가 어렵다는 걸 느꼈다. 승수를 올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도 절감했다. 프로 데뷔 첫 해 18승을 거뒀는데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아득히 먼 꿈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타선의 뒷받침 여부를 내 성적과 연결짓고 싶지 않다. 타선이 터지지 않는다면 내가 더 잘 던졌어야 한다. 내가 얻어맞았기 때문에 지는 게 아닌가. 불펜도 마찬가지다. 가끔 (장)성호 형이 이런 농담을 하신다. 타선이 2점을 터트렸는데 내가 2점을 내주면 ‘현진아, 네가 잘 막았어야지’라고. 그럴 땐 나도 ‘선배님이 좀 더 때려주셨으면 되잖아요’라고(웃음). 선후배들 사이에는 성적과 관련해서 ‘이상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서로 잘했으면 된다. 남의 탓 하는 게 못난 짓이다.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처음에 감독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감독님은 평소에 기자들과 인터뷰하실 때마다 ‘현진이는 무조건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화에 오신 이후부터 말씀이 달라지셨다(웃음). 구단은 감독님 생각이, 감독님은 구단 의향이 먼저라고 말씀하시면서 미루신다.
―김응용 감독이 ‘류현진은 팀의 기둥이기 때문에 기둥이 빠지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새로 부임하신 터라 나를 보내주시기 힘들 수도 있다. 감독님 입장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난 올 시즌을 한국 팬들에게 선보이는 마지막 시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경기 때 더 멋진 모습을 선보이려 했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무조건 한화 이글스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올 시즌 이후로는 무조건 떠난다고 결심했다. 구단도 내 의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수를 직접 불러서 무슨 얘기를 해주시지는 않고 계속 언론을 통해서만 서로한테 책임을 미루는 인상을 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솔직히 ‘멘붕’ 상태였다. 더 이상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 구단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나.
▲지금은 못 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구단에서 보내주실 거라 믿고 있다. 내 인생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 돌아가는 게 없다. 무조건 직진만 할 것이다.
―시즌 종료 직전보다 의지가 더 확고해진 것 같다.
▲2년 뒤 FA가 돼서 더 좋은 조건으로 해외 진출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본다. 투수한테 1년 2년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다. 2년 뒤 내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조건으로 미국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지금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오퍼도 많고 6개 팀 정도에서는 에이전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내 상황을 보고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9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한국으로 들어와 내 투구 폼을 지켜봤다.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모양이다.
―9월 들어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다. 9월 한 달 간 거둔 성적이 3승 1패, 평균자책 1.33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보고 있었기 때문인가(웃음).
▲솔직히 ‘아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더 집중해서 던진 부분이 있다^^.
▲ 지난 10월 15일 취임식을 가진 한화 김응용 감독이 류현진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최고의 무대 아닌가. (이)승엽 형이나 (김)태균 형을 봤을 때 일본 생활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야구도, 생활도 일본보다는 미국이 더 적응하기에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릭스에서 유심히 지켜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난 전혀 관심이 없다. 일본 무대보다는 메이저리그만이 내 관심 사항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먼저 미국 무대에 나가 있는 일본 투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 같다. 다르빗슈 유의 경기를 본 적이 있나?
▲관심은 많은데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리는 시간과 내 생활이 다르기 때문에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르빗슈가 초반보다는 후반 들어 더 좋아진 것 같다. 초반에는 너무 도망 다니는 피칭을 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진출하기 전에 꼭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건 보완할 게 아니라 욕심나는 부분이다. 바로 (윤)석민 형의 슬라이더다. 석민 형의 슬라이더는 완전 탐이 난다. 그것만 제대로 던질 줄 안다면 한 마디로 ‘대박’ 아닌가. 석민 형한테 직접 슬라이더를 배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안 된다. 그걸 보면서 내 체인지업을 배우려고 애쓴 선배들이 생각났다. 나도 그런 선배가 찾아올 때마다 아낌없이 가르쳐줬다. 그런데 못 던진다(웃음). SK (송)은범 형도 나한테 체인지업을 배웠지만 내가 던지는 만큼 못 던진다. 그래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석민 형의 슬라이더를 배우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처럼 다른 선배들이 내 체인지업을 던지지 못하는 부분들이. 참 재미있는 일들이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가고 싶은 팀은 어디인가.
▲오늘 ‘만약’이라는 질문이 많다(웃음). 어렸을 때는 박찬호 선배가 뛰던 LA다저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우승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 아니 이기는 팀으로 가고 싶다.
―승리에 대한 ‘한’이 있기 때문인가?
▲그런 건 아니다. 선수라면 당연히 이기고 싶고, 우승도 하고 싶은 게 아니겠나.
―마지막으로 구단과 김응용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달라.
▲지금까지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희로애락을 겪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행복하고 기뻤던 일이 더 많다. 앞으로도 이런 기억만을 갖고 싶다. 내가 어디를 가도 멋있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구단 사무실에 찾아가 무릎 꿇고 부탁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