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전망이 밝아졌다. 플레이오프에서 SK와 롯데가 5차전까지 혈투를 치르며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객관적 전력에서 SK, 롯데를 압도하는 삼성이기에 구단 내부에서도 우승을 자신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원로 ‘3김’의 생각은 어떨까. 여기서 ‘3김’은 바로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다.
#김응용
플레이오프 4차전이 SK 승리로 끝나며 시리즈가 5차전까지 이어지자 김응용 한화 감독은 “SK와 롯데가 삼성 좋은 일만 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김 감독은 “5차전까지 혈투를 치르고서 무슨 힘이 남아 있겠느냐”며 “체력 싸움에서 이미 삼성이 완벽하게 승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구단 사장으로 우승 2회를 경험했던 김 감독은 국내 야구인 가운데 단기전 승부를 가장 잘 아는 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이미 체력싸움에서 삼성이 완벽하게 이겼다’란 말이 나온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스트 시즌 1경기는 정규 시즌 몇 경기 못지않은 체력적 부담이 있다. 그만큼 부담스런 경기를 5차전까지 치렀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선수들이 지쳤겠나. 그런 상태에서 하루 쉬고, 곧바로 한국시리즈를 치른다면 피로도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투수진의 피로도가 높은 상태다. 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한 삼성은 상쾌한 몸으로 한국시리즈 1차전을 시작할 수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누가 봐도 삼성이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사실이다. 지난해도 SK와 롯데는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렀다. SK가 3승2패로 롯데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SK는 삼성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삼성에 1승 4패로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그래서일까. 과거 김 감독은 정규 시즌 1위가 아니면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는 결국 ‘미친 선수가 어느 팀에서 많이 나오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했다.
“정규 시즌 때는 별 활약이 없다가도 가을만 되면 미치는 선수가 있다. 그런 선수가 1, 2명 나오는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다. 해태 감독일 때도 차영화, 김준환, 김정수 같은 이른바 ‘미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우승을 맛본 적이 있다. 팀 전력으로 보면 역시 미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도 삼성이 많아 보인다.”
#김인식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 4번 진출했다. 이 가운데 우승 반지를 낀 건 2번. 1995, 2001년 두산 감독 시절 우승을 맛봤다. 1995년 우승은 다소 수월했다.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까닭이다.
하지만, 2001년 우승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 두산이 정규 시즌 3위를 하는 바람에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야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려면 어떻게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쉽나. 나도 내 생각대로 시리즈가 펼쳐지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됐다. 그해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승 무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오른 뒤 현대를 3승1패로 제압하고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 감독의 희망대로 최대한 빨리 두 관문을 통과해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셈이었다.
플레이오프를 빨리 끝낸 까닭에 두산은 3일을 쉬고 정규 시즌 1위팀 삼성과 맞붙을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두산은 삼성과의 체력싸움에서 크게 뒤지지 않았다. 되레 삼성과 매경기 난타전을 벌이며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였다. 결국 두산은 삼성에 4승2패로 승리하며 6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되찾았다.
김 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혈전을 치렀다면 정작 한국시리즈에선 별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며 “플레이오프를 빨리 끝내고, 타자들의 타격감이 물오른 덕분에 ‘거함’ 삼성을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의 우세를 점쳤다.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면서 체력적으로 삼성이 우세하다. 여기다 투수진과 타선에서도 삼성을 따라올 팀이 없다. 삼성 선발투수가 6명이다. 6차전 이상 시리즈가 진행돼도 끄떡없다. 오승환이 버틴 철벽불펜은 말할 것도 없다. 타선 역시 박석민-이승엽-최형우가 버틴 중심타선은 다른 팀보다 월등히 앞선다. 무엇보다 짜임새 있는 수비가 돋보인다. 삼성이 자멸하지 않는 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 유력하다.”
#김성근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2007년 SK 사령탑을 맡아 2010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이 가운데 3번이나 우승컵을 안았다.
김 감독이 이끈 SK는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만난 바 있다. 당시 SK는 삼성에 4전 전승을 거뒀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한 건 그때가 통산 6번째였다. 그 바람에 삼성 선동열 감독은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고도 그해 겨울 경질됐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예상을 묻는 말에 “올 시즌 삼성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그 때문에 시리즈를 전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뭐 하나라도 허투루 말하는 말이 없는 김 감독은 “단기전은 대충 전망해선 안 된다”면서 어느 팀이 우세할지 말을 아꼈다. 다만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열려 삼성에 유리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규 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은 큰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1999, 2000년 양대리그제 제외)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건 단 3회에 불과했다. 1989년 정규 시즌 2위 해태(KIA의 전신)가 빙그레(한화의 전신)를, 1992년 3위 롯데가 빙그레를, 2001년 3위 두산이 삼성을 꺾은 게 기적의 전부다. 나머지 18번은 정규 시즌 1위팀이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기적을 봉쇄했다. 정규 시즌 1위팀이 우승할 확률만 치자면 무려 85.7%나 된다.
그러니까 김 감독의 말은 정규 시즌 1위라고 자만해선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기야 삼성이 14.3%의 비운의 주인공이 되지 말란 말도 없다. 그게 야구의 묘미일지 모른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