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9일 SK 대 롯데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3회말 SK 정상호가 롯데 홍성흔을 홈태그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 잔뜩 긴장한 초보감독
야구기자에게 포스트 시즌은 그리 환영할 무대는 아니다. 취재가 제한된 까닭이다. 포스트 시즌 기간 중 그라운드엔 취재 제한선이 쳐져 있다. 그날 TV 중계 해설위원을 제외하곤 그 안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그게 관례다.
포스트 시즌엔 선수들도 원체 긴장한 상태라, 최대한 말을 줄이는 통에 기자들은 ‘건질 이야기가 없다’고 난리다. 취재원은 오직 감독뿐. 베테랑 감독은 전날 승패와 관계없이 취재진에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그러나 초보 감독은 선수보다 더 긴장해 말을 아낀다.
▲ 두산 김진욱 감독 |
두산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는 ‘수석코치답지 않은 행동’으로 관심을 끌었다. 대개 수석은 감독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감독의 의중을 선수단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토 수석은 준플레이오프가 끝날 때까지 감독과 떨어져 경기를 지켜봤다. 포스트 시즌 기간 중 그가 한 일도 백업포수 최재훈을 훈련시키는 게 다였다. 특히나 그는 다른 코치들과 포스트 시즌을 상의하기보다 자신을 취재하러 온 일본방송사 NHK 다큐멘터리 팀과 더 오래 함께 있었다.
두산 내부에서 “일본에서도 수석코치가 저렇게 행동하느냐”고 불만이 터져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롯데의 새로운 입담꾼 손아섭
롯데의 새로운 입담꾼도 화제였다. 지난해까지 롯데의 포스트 시즌 입담꾼은 홍성흔이었다. 홍성흔은 취재진에 뉴스거리를 귀띔해주며, 언론을 활용해 팀 분위기를 살리려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 시즌은 말을 아낀 채 ‘진중 모드’를 유지했다.
그 자릴 대신한 선수가 바로 손아섭이었다. 평소 화려한 언변과는 거리가 멀었던 손아섭은 취재진이 몰려와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팀 분위기와 재미난 포스트 시즌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손아섭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두산 김현수 선배가 초구를 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도 3차전에서 또 초구를 치더라”며 “그걸 보고 현수 형은 진정한 남자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더그아웃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SK 조인성은 잔뜩 준비한 방송용 코멘트가 팀 패배로 날아간 경우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조인성은 선발포수로 출전해 5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6회까지 팀이 4대 1로 앞서며 조인성은 경기 MVP가 확실했다. 하지만, 팀이 4대 5로 역전패하며 조인성은 쓸쓸히 구장을 떠나야 했다. ‘효자’로 유명한 조인성은 지난 2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바 있다. 조인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만약 MVP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꼭 준비한 코멘트를 말하겠다”며 아버지가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장인과 사위 사이로 유명한 SK 김바위 원정전력분석원과 롯데 외야수 전준우는 갑작스러운 언론 관심에 당황한 케이스다. 김 분석원은 포스트 시즌에서 SK가 상대할 팀을 집중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롯데 주축타자이자 전준우의 단점을 찾아내는 것도 김 분석원이 할일이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전준우가 3타수 무안타에 그치자 SK 내부에선 “김 분석원의 공이 크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전준우가 4타수 4안타를 기록하자 “장인이 사위에게 뭔가 조언을 해준 게 아니냐”는 농담이 흘러나왔다.
김 분석원은 “집에서만 사위지, 프로 세계에선 그저 상대 팀 선수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사위가 잘하는 대신 시리즈에선 SK가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 손아섭.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 이승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야구 팬들은 포스트 시즌만 되면 불만이 많다. 표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야구 팬들은 야구커뮤니티사이트에 “인터넷 예매가 5분도 되지 않아 끝난다”며 “화장실 다녀온 사이 ‘매진’이 돼버려 정작 경기를 보려면 당일 운동장 주변에서 3배의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포스트시즌 티켓 예매는 인터넷은 G마켓, 스마트폰 티켓 예매는 ‘티켓링크’가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판매되는 티켓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포스트 시즌 티켓 가운데 25~30%가량이 구단과 KBO, 야구관계자, 언론사 몫”이라며 “실제 70% 정도의 표만 야구 팬들에게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사실이다.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은 모그룹용으로 다량의 표를 가져간다. KBO는 업체 관계자용으로 나머지 표를 가져가고, 이런저런 야구관계자들이 KBO와 구단에 부탁해 다시 수백 명분의 표를 가져간다. 언론사도 KBO에 표를 부탁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공짜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일은 아니다.
KBO 관계자는 “수십 곳의 언론사 기자들이 찾아와 표를 부탁한다”며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언론사용으로 수백 장의 표를 따로 빼두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일선 기자들도 괴롭기만 하다. 한 스포츠전문지 기자는 “윗분이 ‘표를 구해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구해드려야 한다”며 “KBO에 표를 부탁할 때마다 ‘이래도 되는가’싶어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그룹용이 아닌 구단 관계자가 표를 빼돌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주로 현장 판매용 표를 빼돌리는 수법을 쓴다. 포스트 시즌엔 예매표 중 취소분이 있을 경우 당일 경기 3시간 전부터 현장 판매를 실시한다. 일부 구단 직원은 구장 티켓 판매소에 찾아가 돈을 주고 이 표를 사곤 한다. 현장 판매용 표를 사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야구팬들로선 속이 뒤집힐 일이다.
더 가관인 건 암표의 상당수가 구단 직원들이 빼돌린 현장 판매용 표라는 것이다. KBO와 구단이 ‘표’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닫는 이유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