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계 ‘당원 100%’ 고수에 수도권 당선인 중심 ‘반기’…여권 지지율 추가 하락 땐 ‘개정’ 결단 가능성
#친윤 ‘당규 개정 불가’
여당 주류인 친윤 의원들은 전당대회 룰을 바꿔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황우여 비대위’가 깃발을 올리자마자 포문을 열었다. ‘찐윤’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은 5월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선거를 앞두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은 어떻게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며 “당원투표 100%로 돼 있는 현행 규정대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고 공개 언급했다.
이 의원은 “필요하다면 정통성 있는 지도부가 구성되고 난 다음 당원의 총의를 모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 그때 하는 것이 옳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당 비대위가 전당대회 규정 개정 논의에 착수하려는 출발점에 서자마자 현행대로 하는 게 맞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 규정 개정 불가에 대한 근거도 제시했다. 황우여 비대위를 ‘관리형 비대위’로 규정, 권한의 분명한 한계를 내놓았다. 이 의원은 5월 13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실 때 (윤재옥 전) 원내대표가 ‘지도부 선출 과정을 관리하는 관리형 비대위원장을 모셨으면 좋겠다’고 해 추인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원들이 직접 선출한 지도부가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나”라며 “현 비대위의 역할이 무엇인지 (황 위원장이) 충분히 인식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규정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비대위 구성원들이 친윤 일색이라는 점도 당규 개정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5월 12일 발표된 지명직 비대위원 4명 중 3명(유상범 전주혜 엄태영)이 친윤 성향으로 분류된다. 황우여 비대위원장과 함께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참여하는 추경호 원내대표와 정점식 정책위의장 역시 친윤으로 꼽힌다. 7명으로 구성된 비대위의 절반 이상이 친윤계로 채워진 것이다.
유상범 비대위원은 4월 25일 KBS라디오에서 “당심 100%에 의한 당대표 선출이 민심 이반을 야기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전당대회 규정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유 위원뿐 아니라 대다수 친윤 비대위원들의 기류는 규정 개정 불가로 읽힌다. 친윤계는 당심만으로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도록 한 현 규정이 주도권을 쥐고 가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늘어나 자칫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인물이 당대표가 될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다.
친윤계는 대선 1년 6개월 전 당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대권·당권 분리 규정’을 완화해 대선주자급 인사가 당대표를 맡도록 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이 역시 대통령과의 완전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는 당대표의 등장을 막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철규 의원은 앞서의 5월 14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2006년도에 만들어진 규정인데 지금 이 시기에 왜 그런 주장이 대두되는지 곱게 보이지 않는다”며 “이것 역시 새로운 지도부가 고치는 게 맞다”고 했다.
판사 출신으로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성향의 황우여 위원장 평소 성격, 그리고 최근 발언 모습을 봐도 전당대회 규정을 쉽게 바꾸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 위원장은 5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 규정 개정에 대해 “당헌당규는 헌법개정 같은 문제이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서 공정하게 정확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헌법학 박사이기도 한 그가 ‘헌법’이라는 단어까지 소환하면서 전당대회 규정을 얘기한 것은 규정 개정을 절대 쉽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임기가 짧은 비대위가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황 위원장의 정치 이력을 봐도 ‘돌파형’은 아니다. 황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있을 시절인 2012년 5·15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2년 임기를 채웠는데 무난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몸을 사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황 위원장은 당대표 시절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의혹 등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이 벌어졌는데 전투력이 없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황 위원장은 이에 앞서 원내대표 재임 당시 같은 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 국회 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다. 이 꼬리표가 발목을 잡아 국회 선진화법 반대를 외쳤던 정의화 당시 의원에게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경쟁에서 패배, 가장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였지만 국회의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황 위원장과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황 위원장은 신중하다. 당심과 민심에 괴리가 있는지를 일단 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데이터를 보면 당심과 민심에 차이가 거의 없다.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모바일 선거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를 황 위원장이 잘 읽고 있기 때문에 당의 분란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보수적 결정을 할 것으로 본다.”
논란이 됐던 전당대회 시기는 일단 7월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사무총장에 내정된 성일종 의원은 5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점으로 7월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룰 개정 목소리 거세
4·10 총선 수도권 낙선자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 ‘첫목회’는 5월 15일 보수 쇄신안과 당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연구원에서 밤샘 끝장 토론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전당대회 규정과 관련, ‘국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첫목회 구성원들은 5월 7일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전대 룰 개정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민심을 경청한다는 의미에서 전당대회 룰 변경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외 조직위원장 160명도 전대 룰을 ‘여론조사 50%·당원투표 50%’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당대회 규정을 고칠 권한을 쥔 비대위원 중에서도 룰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태 비대위원(경기 포천가평 당선인)은 5월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당원 의사도 중요하고 결국 수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니 민심도 반영돼야 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며 당심과 민심 반영 비율에 대해 “5 대 5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7 대 3도 차선”이라고 했다.
서울 도봉갑의 김재섭 당선인은 총선 직후부터 전당대회 룰을 ‘당심 50%, 민심 50%’로 바꾸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는 4월 18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이 정치 동아리는 아니지 않나”라며 “국민께 책임 있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당원 100% 구조는 바뀌는 것이 맞다”고 썼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윤상현 의원도 총선 직후부터 룰 개정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안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뽑혔던 전당대회는 민심 50%, 당심 50%였다. 꼭 바꾸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윤상현 의원도 4월 22일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75% 대 25%인데 우리는 70% 대 30%에서 당원 100%(가 됐다)”라며 ‘혁신형 비대위’를 꾸려서 룰 개정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애초에 룰을 당원 100%로 바꾼 게 잘못됐던 것이다. 당규 개정은 이를 바로잡자는 요구”라면서 “총선에서 진 후 당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변수는 여론
변수는 있다. 바로 여론이다. 윤 대통령과 당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면 황 위원장이 당원 투표 비율 100%를 수정, 일반 여론조사를 산입하는 내용의 전당대회 룰 개정을 전격적으로 결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론조사에서 뚜렷하게 두드러진 지지율이 나오는 당대표 후보가 없는 만큼 전당대회 규정을 바꿔도 선거 구도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굳이 기존 규정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규정을 바꿔 민심 동조화의 문을 열면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도 키울 것이라는 전망도 이 논리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친윤계가 쉽게 당규 개정 논의에 응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 100% 규정은 이른바 반윤 후보들에 대한 출마 봉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면 그 장벽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친윤 진영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 직전까지 윤 대통령 지지율 변화 추이를 살피면서 황 위원장이 다양한 설득용 명분을 동원해 신의 한 수를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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