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박영선 발탁설 해프닝에 술렁, 비선라인 전횡 의혹까지…‘원희룡 정무’ 불발 영향 해석도
#흔들리는 용산
총선 결과가 나온 후 용산이 꺼내든 카드는 인적쇄신이었다. 그중에서도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이 핵심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인선은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인적쇄신을 해야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 새 인물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을 겪은 셈이다.
대통령실은 심사숙고 중이라는 메시지만 계속 냈다. 여권에선 한덕수 총리, 이관섭 비서실장 후임을 섣불리 발표했다가 검증에서 문제되거나 야권의 거센 반발을 부를 경우 쇄신 의지는 퇴색되고 국정 동력만 떨어트릴 수 있다는 걱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만큼 신중한 인선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보단 대통령실의 인사 추천 구조가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아래에서부터 올라가 보고가 이뤄지는 형태가 아닌, 최고위층 또는 특정 라인에서 “이 사람 어때”라는 식의 질러 보기식 인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정당 지지층을 황당하게 만든 사고가 터졌다.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에 각각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유력 검토되고 있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정치권은 크게 술렁였고 보수 진영에서는 “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문이 쇄도했다.
국민의힘 한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때 핵심을 맡았던 사람들을 기용하자는 생각을 누가 한 건지 모르겠다. 둘을 추천한 사람을 찾아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협치 차원에서 야당 인사를 발탁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과연 그 둘이 협치에 어울리는 인사인가. 아마 민주당에서도 반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내고 “박영선 전 장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인선은 검토된 바 없다”고 이례적으로 공개 부인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추가 취재에 들어가자 다른 말이 나왔다. 민생 안정을 위해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인재풀을 넓게 가져갈 필요가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검토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장관이나 양 전 원장이 윤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터라 실제 가능성 있는 인사로 해석하기도 했다.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라 기획된 인선이었다는 것이다. 박지원 당선인은 4월 17일 김어준 유튜브에 출연해 “이분들(박영선·양정철)이 윤 대통령과 친한 것은 사실”이라며 “찔러보기, 띄워보기이자 간보기다. 언론에 흘려 보면 1차 검증이 된다”고 했다.
박 당선인은 4월 18일 일요신문 유튜브 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해서도 “박영선 전 장관은 기자 시절 김건희 여사를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또 법사위원 시절엔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만나는 등 가깝게 지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박영선 양정철 발탁은 야권 파괴 공작이자 이간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4월 18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총리 제안이 공식적으로 오면 기꺼이 받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여권 전체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왔다. 권성동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 “박영선 전 의원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나왔다”며 “많은 당원과 지지자분들께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때렸다.
권 의원은 “총선 참패로 인해 당은 위기에 봉착했다. 엄중한 시기이고, 인사 하나하나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이처럼 당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사는 내정은 물론이고 검토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대통령실에서 위 인사를 검토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이 나왔지만, 오늘과 같은 해프닝은 메시지 관리의 부실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상당히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윤 대통령이 그 사람들을 써서, 외형상으로는 야권을 썼기 때문에 협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 사태를 수습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엄청난 착각을 하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유흥수 국민의힘 고문은 4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윤재옥 원내대표와의 원로 초청 간담회에 참석, “비서실장은 정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에게 쓴소리, 어드바이스(조언)를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정치인 출신이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전망에 대해선 “연정이 전제됐을 때 그런 인사가 가능하지만, 민주당 당직을 가진 사람을 그런 요직에 앉히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4월 16일 윤 대통령과의 만찬 회동에서 ‘김한길 총리·장제원 비서실장’ 체제를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허송세월 여당
국민의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습책 마련을 속도감 있게 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여당은 일단 실무형 비대위를 구성한 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선출하자는 대략의 일정만 잡았다. 5월 초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뒤 실무형 비대위를 꾸리고, 6월 말이나 7월 초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는 일정이다. 총선 참패 후 새 지도부가 출범하는 데 3개월 안팎이나 걸리는 긴 수습 일정을 잡아 놓은 셈이다.
현재 당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4월 15일 중진 간담회에 이어 16일에는 비례대표 당선인과의 오찬, 17일 초선 의원 오찬 등 ‘밥 정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6일 당선자 총회도 총선 참패에 대한 원인 분석이 오가는 토론은 없었고 자기소개만 하다가 끝났다는 게 복수의 참석자들 전언이다.
더욱이 당선인들 사이에서 위기감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당선인들이 ‘셀카’를 찍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참패한 정당의 당선인 대회라고 도저히 여길 수 없는 장면을 봤다고 복수의 당선인들이 얘기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당선인은 이렇게 질타했다.
“4월 17일 초선 의원 오찬도 참석자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서울시내에서 가장 밥값이 비싸다는 여의도에서 밥 먹을 때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시간만 보낼 거냐는 지역구민들의 항의 전화가 하루에 수십 통이다. 위기감을 전혀 못 느끼는 게 지금 여당의 현실이다.”
여당은 최근 전당대회 룰을 갖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원 100%로 돼있는 전당대회 참여비율을 일반여론조사도 다시 가미하자는 안이 나오면서다. 당초 국민의힘은 당원투표 70%·국민 여론조사 30% 룰로 전당대회를 치러왔는데, 김기현 전 대표 선출 당시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당원투표 100%로 변경됐다.
이번에도 친윤계는 당원 100%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윤 의원은 “전당대회를 할 때마다 룰을 바꿀 것이냐.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현행 룰대로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험지인 도봉갑에서 이긴 김재섭 당선인은 4월 18일 페이스북에 “당원들만의 ‘잔치’를 운운하기에는, 국민의힘이 정치 동아리는 아니지 않나. 국민의힘이 지금 잔치 치를 형편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룰을 놓고 친윤과 비윤이 파워게임을 벌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엔 차기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간 셈법이 자리 잡고 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다투고 싸우다 총선을 졌는데 또 싸움질을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여권, 왜 이런 모습을
정치권 관계자들은 총선에서 참패한 여권의 위기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한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특히 용산에서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렇다보니 인적쇄신 속도가 더디고 감동도 없다는 것이다.
용산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여러 얘기를 종합해본 결과, 용산은 국정 방향성은 아주 좋았는데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이 태도 점수에서 나쁜 성적을 받아서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며 “태도만 고치면 지지율이 곧 오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쇄신책이 빨리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쇄신의 첫 단추에서 실패를 보면서 전체가 꼬였다는 말도 나온다. 인적쇄신 야심작으로 ‘원희룡 정무수석 카드’를 꺼냈지만 불발되면서 전체적으로 스텝이 뒤엉키게 됐다는 것이다.
다선 의원이자 제주도지사,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지낸 정치거물을 야권과의 소통 메신저로 기용하려 했는데 이 카드가 불발되면서 인적쇄신이 속도를 붙이지 못하는 중이라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이 전했다. 정무수석직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적임이 아니라며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대통령실 정무 기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를 위해 대선 주자급인 원 전 장관을 발탁하려 했던 것”이라면서 “야권에서 원 전 장관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안다. 또 원 전 장관도 완곡히 거절했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비선라인에 대한 우려감도 고개를 들었다. 국무총리·비서실장 인선 과정에서 공식 라인이 아닌, 특정 비서관발 보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비서관 전언을 대통령실에서 부인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참모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비선 라인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우선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내부 기강부터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위기 상황이 길어지면 수습책의 약효가 떨어지고 그때부터는 서로를 향한 총질만 일어나는 데 대표적인 것이 분당 사태를 겪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이었다”며 “이런 경험으로 볼 때 위기 수습이 빨리 되지 않으면 대통령 탈당 요구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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