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와 무관하게 전당대회 도전 유력…현재권력과 충돌 불가피, 당내 잠룡들도 견제구 전망
국민의힘이 패배하더라도 한 위원장이 고스란히 덮어쓰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 예상이다. 용산 책임론과 함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제시하며 전당대회 도전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한 위원장과 여러 차례 각을 세운 바 있는 용산과 당내 잠룡들이 이를 좌시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앞세워 직진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한 위원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올라선다. 정치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명실상부 여당 원톱이 되는 셈이다. 반면,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면 한 위원장 위치는 패장으로 바뀐다. 이 경우에도 한동훈 위원장은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 위원장에겐 ‘명분’이 있다. 물에 빠진 국민의힘을 구해낸 선거였다는 게 한 위원장 측 입장이다. 하락하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지율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해낸 것은 본인의 개인기 덕분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강한 러브콜에 등장했던 한 위원장으로선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달라는 격’이라고 항변할 여지가 있다.
실제 이번 총선 유세 과정에서 당내 일부 후보들이 노골적으로 윤 대통령 비토론을 들고 나올 만큼 용산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종섭 전 주 호주대사 임명을 둘러싼 논란, 황상무 전 수석 발언 등은 선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표밭을 누벼본 결과, 용산이 민심을 나쁘게 만들어 이번 선거를 그르친 가장 큰 원인이 됐다는 한목소리를 상당수 후보들이 발신했다.
서울 마포을 함운경 후보는 윤 대통령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가 나온 4월 1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대국민담화는 한마디로 쇠귀에 경 읽기”라며 “의료 개혁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료 개혁을 누가 동의하겠나”라고 따지면서 윤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그리고는 “거추장스러운 국민의힘 당원직을 이탈해주길 정중하게 요청한다”며 현직 대통령 탈당까지 요구했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재선의 정운천 의원도 4월 1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정 운영의 난맥상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고집 센 검사 이미지가 남아 있는 모습으로는 더는 안 된다”고 때렸다.
대통령 사진을 선거 공보물에서 아예 빼놓은 후보들도 속출했다. 한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70% 넘는 비율의 국민의힘 후보가 윤 대통령 사진을 넣지 않았다. 선거사무소 현수막에도 윤 대통령 사진을 넣지 않은 사례가 셀 수 없을 정도였고 그 자리를 한동훈 위원장이 대신 차지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달랐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후보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자당 후보들 선거 공보물과 현수막의 지정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은 선거를 치렀고, 설사 패배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전적으로 질 리 만무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관된 해석이다. 총선에 출마한 다수 후보들은 한 위원장 유세 지원을 앞 다퉈 요청할 만큼 이번 선거 과정 내내 그의 몸값은 적어도 여권 인사들 중에선 가장 높았다.
한 위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도 그의 성격상 정치권에 발을 담근 이상 쉽게 물러나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검찰에서 그와 같이 일해 봤다는 한 법조계 인사는 “선거에서 이긴다면 오히려 뒤로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하지만 졌다고 그만두겠다는 식은 한 위원장 스타일이 아니다. 대권까진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설 것이고 전당대회에도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위원장도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한 위원장은 자신에게 제기되는 ‘교체설’ ‘해외유학설’ 등에 대해 3월 31일 “누군가는 이번 선거에서 저 한동훈을 보고 찍어줘 봤자 나중에 쫓겨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여러분을 위해 총선 이후에도 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에 앞선 3월 22일에도 지지연설 도중 선거 이후 유학에 대해 선을 강하게 그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정용선 후보 지원을 위해 찾은 충남 당진시장에서 “아침에 누가 그러던데, 내가 선거 끝나면 유학을 갈 것이라고 한다”며 “지금은 뭘 배울 때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공적으로 봉사할 일만 남아있다”고 힘줘 말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도 3월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아주 멋지고 훌륭한 밥상이 한동훈 위원장을 위해서 차려져 있는데 한 위원장이 이것을 외면하고 왜 밖으로 나가겠나”라며 “그것은 아주 근거 없는 말이며 한 위원장은 반드시 남아서 당권을 쟁취하고 2027년(대선)을 향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거침없이 쏟아질 태클
한 위원장을 향한 태클은 벌써부터 들어오고 있다. 국민의힘 최대 지지 세력인 대구·경북(TK) 맹주를 자임하면서 차기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홍준표 대구시장이 선봉에 섰다. 홍 시장은 4월 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선거에 무슨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있느냐”며 “총선에서 이기면 탄탄대로의 길을 걷겠지만 제1당이 못되면 그건 황교안 시즌2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선거에서 지면 2020년 총선 참패 직후의 황교안 전 대표처럼 무조건 나가야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홍 시장은 “공천 주었다고 다 내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국회의원은 모두 당선 즉시 자기가 잘나서 당선된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선거가 끝나면 공천장을 줬던 한 위원장에게 현역 의원들이 등을 돌리는 게 시간문제라는 예측을 내놓은 셈이다.
홍준표 시장은 4월 3일 페이스북엔 “얼치기 좌파들이 들어와 당을 망치고 있다”라는 등의 표현을 통해 한동훈 위원장을 직격했다. 그는 “내가 한 위원장을 대권 경쟁자로 보고 꼬투리 잡는다고 하는데 윤 대통령 임기가 2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셀카나 찍으면서 대권놀이나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서 참다 참다 못해 충고한 것”이라고 했다.
홍 시장뿐 아니라 선거가 끝난 뒤 한 위원장을 향해 낯을 붉힐 잠재 후보군은 당내에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붙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 동작을 탈환에 나선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이다.
무엇보다 강한 태클은 용산에서 들어올 수 있다. 총선 기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구체적으로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김건희 리스크 대응, 이종섭 전 대사, 황상무 전 수석, 비례대표 공천 문제 등을 놓고 불협화음이 새어 나왔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로 해석했다.
총선을 앞두고 ‘윤-한 갈등’은 봉합되긴 했지만 감정의 골은 깊게 패였다는 게 중론이다. 총선이 끝난 후 용산이 어떤 식으로든 한 위원장을 향해 공세를 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위원장 역시 총선 공천 등을 통해 확보한 당내 지분을 바탕으로 용산과의 일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원외 한동훈, 대안부재론으로 극복?
한 위원장의 ‘졌잘싸’ 논리는 명분은 있지만 여러 난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이번 선거에서 원내 진입을 하지 않은 것을 큰 실수로 본다. 이는 유승민 전 의원 사례를 대입해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유 전 의원은 보수 대통합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 원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유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당내 유력 정치인 가운데 가장 많은 계파 식구들을 원내로 진출시키면서 대선주자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류성걸 강대식 김희국 조해진 하태경 김웅 등 ‘유승민계’로 인식되는 의원들이 다수 21대 국회로 들어왔다.
세력을 가졌는데도 유 전 의원에게 원외의 한계는 컸다. 스피커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세력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유 전 의원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정치 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홍준표 대구시장에게도 밀렸다.
한 위원장 측에선 원내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대안 부재론’에 기대를 거는 기류다. 한동훈 위원장 외에 여권에서 내세울 만한 인물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 위원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보수 정치인들 중 이러한 부분을 갖춘 인물이 지금 당장 누가 있느냐고 한 위원장 측근들은 되묻고 있다.
한 위원장과 가까운 의원들은 2020년 4월 총선을 압도적 대승으로 이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을 소환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에서 제1야당 대표였던 황교안 후보를 물리친 것은 물론, 총선을 압승으로 이끈 최대 공신이 이낙연 당시 위원장이었다. 하지만 팬덤이 약하다보니 이후 당대표가 되고도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계속 밀리면서 정치적 추락을 거듭한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 말이다.
“당내 인사들은 이번 총선에서 패장이 되더라도 한 위원장이 졌잘싸 논리와 대안 부재론을 앞세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신장개업형 전당대회에 도전한다는 추론을 한다. 그러나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용산 쪽에서는 현재권력을 능가하는 강력한 미래권력보다는 관리형 리더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큰데 이 부분이 한 위원장에게는 큰 장애물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큰 충돌이 나타날 걸로 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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