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논란’ 등 연이은 악재에 정권 심판론 재가동…유승민 등판 등 대책 요구 높지만 한 위원장은 선 긋기
한동훈 위원장이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은 용산 대통령실의 여러 실책으로 인해 ‘정권 심판론’이 재가동된 탓이 일단 크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혼자서 야구를 하고 있는 한 위원장 책임도 크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승민 구원투수’에 심지어 개혁신당과의 막판 전략적 제휴를 통해 스피커를 보강해야 한다는 충고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야속한 용산에 한숨만 가득
여당의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거대 공룡 정당으로 만들어줬던 4년 전 21대 총선 참패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당 전체를 휘감았다. 여권에서는 이대로 가면 개헌 및 탄핵 의석(200석)을 야권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막판 공천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 간 갈등이 불거진 데다 이종섭 주호주대사·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둘러싼 논란도 여권 비토 세력을 키워 놨다는 분석이다.
여야 곳곳에서 이 추세로 간다면 범야권이 200석, 국민의힘은 100석도 확보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각 언론사들의 분석도 다르지 않다. 우세지역 전망에서 국민의힘은 80석 안팎에 불과하고, 더불어민주당은 110석 내외다. 여기에 조국혁신당 돌풍 현상이 얹히면서 여의도 정가에서는 범야권 200석도 전혀 가능성 없는 전망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석 숫자가 가장 많은 수도권뿐 아니다. 여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부산권 일부지역에서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는 판단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범야권 200석’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3월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많은 후보가 위기감을 가지고 있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불리하다는) 그런 의견을 표출하는 분들도 있고 언론에서도 여러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위기감에 휩싸인 당 분위기를 숨기지 않은 셈이다.
여당을 위기 국면으로 몰아넣은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용산의 실책이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진이 여러 오류를 범했다는 진단이다. 이종섭 주호주대사 문제에다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막말 논란,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 의대 증원 강행에 따른 의정 갈등 및 의료 공백 장기화 등은 여당에 큰 부담을 줬다.
실제로 표밭을 누비는 여러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만난 현장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의견을 앞다퉈 내고 있다. 부산 북구갑에서 출마한 서병수 의원은 3월 26일 페이스북에 “(국민의) 꾸지람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을 거론했다. 그는 “할인에 또 할인, 쿠폰까지 끼워서 만들어낸 가격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며 “한 단 가격이 875원이라면서 국민께 상실감을 안겨 드린 책임, 국민의힘에 있다”고 했다.
서울 종로의 최재형 후보는 3월 26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에 따른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에게) 그런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모시고 간 보좌 기능에 문제가 있다”며 참모진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대구 달서병 권영진 후보는 3월 27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나와 “대파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잘못 모시고 간 것”이라며 “물가를 점검하려면 물가가 비싼 곳으로 가야 한다”고 때렸다.
#한동훈 원스피커 한계론
한동훈 위원장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는 당내 의견도 공공연히 들린다. 총괄선대위원장까지 맡은 한 위원장의 원톱 스피커 독점이 전체적인 스피커 볼륨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들에게 ‘한동훈 피로감’까지 주면서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전국에서 쇄도하고 있는 방문 요청에 한 위원장은 살인적 일정을 소화해왔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8일부터는 더 많은 지원 부탁이 들어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 외에도 이해찬·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상임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선거를 지휘하는 더불어민주당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서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이 등판했고, 나경원·원희룡·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이 함께 뛰고 있지만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여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무엇보다 공동선대위원장들은 본인 선거가 치열해 선대위원장 역할 수행이 벅차기만 하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부실장을 맡고 있는 홍석준 의원은 3월 25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와 “한 위원장이 잘하고 있지만 그동안 원희룡, 나경원,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들이 지역구에 몰입을 하다 보니 전반적인 메시지를 내기가 쉽지 않고 의견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우려가 사실 있었다”면서 “앞으로 스피커를 좀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당 내외에 많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신평 변호사는 3월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한 위원장이 당무 독점, 전횡을 해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설 연휴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한동훈 위원장 공은 분명하지만 그의 효용성은 거기까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오가며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3월 2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가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장동혁) 사무총장도 보면 국회의원 된 지 1년 반밖에 안 되는 그런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이 전체를 다 총괄하고 있으니 정상적으로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지금 국민의힘 위기가 정치 초보 한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에 있다는 뜻이다.
한 위원장을 둘러싼 피로감 논란 속에서 한 위원장은 거친 발언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위원장은 공식 선거 운동 첫날인 3월 28일 서울 강북 유세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강한 어조로 이들을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이지, 정치 자체는 죄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정치인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비속어까지 소환한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한 위원장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당 상황이 어땠느냐. 패색이 짙었다. 그나마 한 위원장 등판으로 간신히 올라왔다. 구원투수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다. 그런데 용산에서 계속 실점을 하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쪽에서 투수 교체 시기를 늦춰서 이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승민 등판? 글쎄
여권에서는 스피커 보강 차원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투입하자는 제언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서울권역 공동선대위원장인 김성태 전 의원은 3월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유 전 의원의 이번 총선에서의 역할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면 누구든 가려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유 전 대표는 개혁보수의 목소리도 일정 부분 담고 있는 보수”라고 했다.
유 전 의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일부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유 전 의원은 3월 28일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열린 유경준(경기 화성정 출마) 후보 출정식에 참석, 국민의힘 지지를 호소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여러분 손으로 뽑은 우리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3년인가”라며 “아직 3년이나 소중한 임기가 남은 이 정부가 최소한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의석은 이번 총선에서 확보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3월 29일에도 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이종철 국민의힘 서울 성북갑 후보와 함께 퇴근길 인사를 했다. 이 후보는 과거 유 전 의원이 대표를 지낸 바른정당 대변인을 맡았었다. 유 전 의원은 총선 당일까지 지원유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유 전 의원과 가까운 복수의 정치인들은 “수도권 등 여러 선거구에서 유 전 의원이 꼭 와달라고 하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유승민 역할론’에 대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위원장은 3월 26일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역할론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에 “제가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라며 유 전 의원 등판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 위원장이 유 전 의원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차기 대선의 경쟁자라는 인식에다 유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꾸준히 대립각을 세워온 정황을 생각한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보수 결집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도 고려해야 하는데 유 전 의원이 이 부분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위원장이 갖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계속 밀린다는 판단이 서면 스피커를 더 동원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장동혁 사무총장은 3월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 위원장만으로는 스피커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유승민 역할론이 제기되는데 추진하는 게 있나’라는 물음에 “총선 승리를 위해 스피커뿐 아니라 여러 방안들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여러 고민을 해 보겠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지면 윤석열 정부는 곧바로 식물정부로, 한 위원장은 민주당의 특검 공세에 의해 정치 보복의 대상이 된다. 유승민 등의 스피커 추가 확보는 물론, 이준석 개혁신당과의 막판 후보 단일화까지 해야 새 바람을 일으키고 현재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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