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중은행이 영화 관객 수에 따라 추가 금리를 지급하는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 ‘KB영화사랑적금’. |
▲ 우리은행 ‘시네마정기예금’. |
금융권에 따르면 영화 관객 수에 따라 추가 금리를 얹어주는 시중은행의 시네마 특판 예·적금 가입자가 하반기 들어 급등하고 있다. <도둑들>이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몰이를 하면서 영화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하반기 들어 예금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알토란 같은 추가 금리를 제공하는 특판 예금에 대한 관심이 쏠린 덕분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5일 현재 ‘KB영화사랑 적금’의 총 가입자 계좌 수는 4만 4737좌, 가입금액은 총 425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9월 한 달 신규 가입계좌 수가 1만 733좌를 기록, 8월(1287좌)과 비교해 7.3배 급증했으며, 이는 영화 비수기인 지난 7월 667좌에 비해서는 15배나 늘어난 수치다.
영화사랑 적금은 상품에 가입하기 전 2개월 이내에 개봉한 한국 영화의 누적 관람객 수가 300만 명 이상이면 연 0.1%p, 500만 이상이면 연 0.3%p, 1000만 명 이상이면 연 0.5%p의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상품. 영화 불법 내려받기(다운로드)를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연 0.2%p, 적금 가입시점부터 만기 2개월 전까지 KB 국민카드로 3회 이상 영화를 예매하면 연 0.3%p를 추가로 줘 최고 연 4.9%까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가입자가 한꺼번에 몰린 것은 영화 <도둑들> 흥행 효과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8월 중순 <도둑들>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고 연 4.9%의 금리를 확정하고 나서 가입자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추가금리 혜택을 볼 수 있는 시한인 9월 24일을 앞두고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렸다”고 말했다. 지난 7월 개봉한 <도둑들>은 개봉 6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2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광해>가 지난 10월 20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영화사랑적금 가입 열기가 10월에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 동안에만 영화사랑적금에 288계좌. 약 2억 원이 몰렸다. 10월 1일부터 25일 현재까지 이 상품의 신규 가입계좌 수는 4010좌로 8월 한 달과 비교해도 3배가 넘는다. <광해>는 9월 13일 개봉했기 때문에 11월 12일까지 적금에 가입하는 고객은 최고금리를 확보한다.
영화사랑적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행은 씁쓸한 표정이다. 최근 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화사랑적금의 금리가 부담인 탓이다. 이 상품의 금리는 국민은행의 대표 적금인 ‘KB골든라이프적금’의 금리(연 4.0%)보다 0.9%p 높고,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적격대출 금리(연 4.7%)보다도 높다. 영화사랑적금으로 월 100만 원씩 36개월 납입하면 고객들이 받는 이자는 230만 원, 일반 상품이 18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은행은 가입계좌 1만 좌당 500억 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국민은행 영화사랑적금이 최고 금리를 준 것은 2010년 출시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그동안 한국영화 흥행 성적이 주춤했던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금리가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추가 금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크지 않았다. 2010년 이후 개봉한 영화 가운데 관객 수 500만을 넘은 영화도 <최종병기 활>(746만 명), <써니>(732만 명) 등 4편에 그쳤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광해> 대신 <간첩>으로 출시한 특판예금도 가입 실적 총 8150좌, 금액 1200억 원으로 당초 계획한 2000억 원 한도의 절반 수준에서 접수를 마감했다. 이 상품은 가입기간 1년, 기본금리 연 3.4%에 <간첩>의 관람객이 100만 명을 넘으면 0.1%p, 200만 명이 돌파하면 0.2%p를 추가로 제공한다. <간첩>의 누적 관객 수는 130만 3700명으로 이 예금은 추가금리 1%p 얻는 데 그쳤다.
반면 하나은행은 올 초 쇼박스와 손잡고 출시한 ‘도둑들-e-플러스 공동구매 적금’으로 인기몰이한 데 이어 지난달 <광해>와 연계해 출시한 특판 적금으로도 인기몰이를 했다. 총 가입계좌 수는 1608계좌, 10억 3400만원으로 은행이 목표로 계좌 수인 1000좌를 50% 이상 훌쩍 뛰어넘었다. 이 상품은 기본금리 3.2%에 영화 관람객, 모집계좌 수에 따라 최대 0.4%p의 금리를 추가 지급하는 상품이다. 시네마 특판상품은 젊은 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화를 매개체로 사용한 ‘미끼상품’이다. 상품 자체가 ‘비용’이기 때문에 많이 판매하는 것보다는 적게 팔면서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리는 것이 목적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모두 상품 활용에 실패한 셈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시네마 특판 상품은 영화가 흥행하지 않으면 추가 금리를 줄 수 없어 소비자의 눈길을 못 끌지만, 반대로 금리를 너무 높게 잡으면 상품이 적자가 난다”면서 “성공이 보장된 영화를 선택해 적자가 나지 않을 수준으로 금리를 책정하고, 최대한 적게 판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