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탓 승진 시 저평가, 기업금융은 남성 전유물” 주장…여성 리더 양성 프로그램 ‘결실’도 시간 필요
지난해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일반직 직원 중 여성 비율은 약 50~60%인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하나은행의 여성 비율이 63.83%(여 6645명, 남 3766명)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우리은행 57.87%(여 7126명, 남 5188명), KB국민은행 56.65%(여 7849명, 남 6006명), NH농협은행 49.21%(여 6542명, 남 6753명), 신한은행 48.94%(여 5892명, 남 6148명) 순이었다.
반면 경영진 성비는 대조적이다. 5대 시중은행 각 사에 따르면 은행마다 여성 임원은 많아야 2명이고 1명에 불과한 곳도 많다. 5대 시중은행 통틀어 사외이사가 아닌 여성 임원의 수를 합하면 모두 7명이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2명이고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은 각 1명에 그쳤다. 5대 시중은행 전체 경영진 수(112명)를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비율도 6.25%에 그친다.
심지어 은행들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금감원)에도 여성 임원은 전체 임원의 6%에 그쳤다. 금감원이 공개한 경영정보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총 15명의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은 단 1명뿐이다. 금감원은 은행들에 이사회 구성 변화와 여성 임원 비율 확대를 압박하고 있으나 정작 내부 ‘유리 천장’은 공고한 모습이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간사는 “금융권 내에서 여성 직원의 임원 수준까지 진급은 거의 없다”며 “심지어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임원추천위원회에도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정호철 간사는 또 “(여성 직원의)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가 승진에서 저평가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에도 금융권은 일반직 직군 내 여성 근로자의 비중이 높은 분야기에 임원도 지금보다 더 생겨야 할 것”이라고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승진 불이익은 전혀 없다”며 “오히려 남성 직원에 대한 육아휴직도 격려하는 분위기”라고 선을 그었다.
은행권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성의 임원 승진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에 근무 중인 한 행원은 “일반직 직군 내 ‘기업금융·기업금융전담역(RM)’ 업무는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며 “여성 직원은 대부분 ‘개인금융’으로 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서도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부인한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 개개인의 성향이나 스펙에 따른 배치일 뿐”이라며 “오히려 최근에는 한 직군 내 특정 성별이 몰리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22년 8월 5일부터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165조의 20이 시행됐다. 하지만 은행 내부 경영진의 다양성을 규정한 조항은 따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 내부의 경영진 성별 분포에 대한 치우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며 여성 리더십을 지원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여성 리더 육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하나금융의 ‘하나 웨이브스’, 우리은행의 ‘우리 WING’, 신한금융그룹의 ‘쉬어로즈’ 등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 시행된 이후 임원급 리더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 임원이 많을수록 직장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며 "특히 여성 직원들의 복지뿐 아니라 전 직원의 조화를 위한 장이 더욱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여성 임원이 고객 상담이나 상품 개발에서 고객과 관계를 중심으로 접근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호철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금융업, 특히 은행은 성별에 따른 업무 제약이나 퍼포먼스 격차가 크지 않은 산업군”이라며 “여성 임원 인사가 전체 임원의 6%인 것은 심각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여성 리더들이 가진 섬세함이 업무마다 필요한 영역이 있다”면서 “여성 리더들이 더욱 양성될 수 있도록 은행 측에서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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