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내려놓고 제대로 된 B급 코미디 연기…“연극 때부터 맞춰본 이희준과 브로케미 완벽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대중들에게 진중하고 강렬한,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안정적인 압도감을 선사했던 배우 이성민(56)이 이번엔 제대로 된 ‘B급’ 코미디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백팔십도 다른, 모든 것을 다 내려놔 버린 파격 코믹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그는 여간해선 진심 어린 웃음이 잘 터지지 않는 언론배급시사회에서도 관객들을 ‘빵’ 터뜨리는 데 성공했다. 제목과 포스터 속 캐릭터들의 괴리가 먼저 눈길을 끄는 이 영화 ‘핸섬가이즈’로 사정없이 망가지기로 한 결심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감독님이 처음 제게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마침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을 때쯤 받은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무엇보다 부담스러웠던 건 캐릭터들의 외모였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 보기에 불쾌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었죠(웃음). 사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오해했었어요. ‘핸섬가이즈? 내가 무슨 핸섬이야’ 그랬는데 나중에 가서 그 뜻을 이해했죠. 감독님이 저와 이희준 배우를 캐스팅 할 때 그런 얘기를 하셨대요. ‘양면이 보이는 얼굴’이라고요(웃음).”
전면에 내세운 코미디와 더불어 공포부터 고어, 스릴러 장르가 한데 섞인 영화 ‘핸섬가이즈’는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 분)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분)가 꿈에 그리던 유럽풍 드림하우스에서 새 출발 하려다 젊은이들의 잇따른 연속 사망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린다. 속내는 누구보다 여리고 다정해도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되지도 않는 오해를 사게 되는 이들 콤비는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자 나름대로 해결하려 애쓰지만 도리어 의도치 않은 더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성민은 무엇보다 ‘더러운 인상’과 ‘여리고 따뜻한 속내’를 가진 이들의 갭을 더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첫 등장 신에서 표정에 특별히 힘을 줬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극 중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더 불쾌하게 볼지에 중점을 뒀어요. 초반에 재필이가 정말 쓸데없이 인상 쓰고 얼굴에 힘주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있는 거죠(웃음). 좀 더 과하게 험상궂어 보이려고 했는데, 거기엔 제 아이디어도 어느 정도 들어간 게 있어요. 특히 그 외모나 옷차림은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멧돼지 사냥하시는 분한테서 따왔죠(웃음). 재필이 헤어 스타일도 꼬랑지 머리라 굉장히 특이한데 그것도 제 아이디어예요. 당시 머리가 많이 짧아서 분장팀이 수고를 정말 많이 해주셨죠(웃음).”
‘핸섬가이즈’에서 이성민은 강렬한 분장과 더불어 대역 없는 ‘상의 탈의 신’을 몸소 선보여 코믹 연기 이상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신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은근슬쩍 나타나는 그의 속살(?)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던 시사회 반응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는 “흰 속살이 제 진짜 살이고, 까만 부분이 분장한 것”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 옷을 벗으면 멋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 까만 겉 피부와 하얀 속살의 대비로 시선을 분산시키려 한 거죠. 다들 하얀 피부가 분장한 거 아니냐고 그러시는데 그건 원래 제 배고요, 제가 원래 하얍니다(웃음). 나름 명분으로는 이들이 거친 얼굴과 거친 피부를 가진 사람이지만 속은 하얗다는 상징을 보여주려고 한 거였어요. 그런데 사실 옷 벗는 건 좀 싫어요, 몸이 좋으면 또 모르겠는데(웃음). 제가 영화 ‘보안관’땐 운동해서 몸이 좀 볼만했거든요. 그땐 ‘야, 이래서 몸 좋은 애들이 맨날 옷을 벗고 다니는구나’ 했었죠(웃음).”
이성민이 은근한 노출을 책임지는 동안 함께 콤비를 이룬 이희준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어리숙하고 순박한 ‘귀요미’ 캐릭터로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채워냈다. ‘로봇, 소리’(2016)부터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에 이어 영화로는 네 번째 호흡을 맞춘 그와 콤비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었다. ‘브로맨스’에서 ‘로맨스’가 빠진 완벽한 ‘브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낸 이들을 보며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은 ‘주성치와 오맹달 못지않은 콤비’라며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희준이와는 이미 연극 때부터 많이 맞춰봤었어요. 연극에서 저희가 코미디 연기를 꽤 했었거든요. 워낙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고, 그걸 또 즐기는 사람이죠. 극단에 같이 있을 때도 앙상블 연기는 익숙해져 있어서 이번 작품에서도 서로의 포지션을 잘 지켰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호흡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거 같아요. 영화에서 재필이와 상구의 케미스트리를 보시면 하나가 외조를 하면 하나는 내조를 하잖아요? 그렇게 밸런스를 잘 맞춰서 정말 너무 완벽했죠(웃음).”
‘핸섬가이즈’의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성민은 한 해가 짧다 싶을 만큼 숨 가쁘게 달렸다. 지난 2년 동안 영화 ‘대외비’와 ‘서울의 봄’에 이어 드라마 ‘형사록 시즌 1~2’, ‘재벌집 막내아들’, ‘운수 오진 날’까지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이성민’은 단순한 배우가 아닌 작품을 책임지는 ‘브랜드’나 다름없다는 것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 ‘핸섬가이즈’ 공개 전 배우 인생 처음으로 ‘번아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다만 활활 타오르던 불이 갑자기 꺼져버리는 허탈함보단 ‘올 게 왔구나’라는, 다소 신기하다는 감정이 먼저 솟았다는 게 이성민의 이야기다.
“예전엔 ‘휴식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작품 끝났을 때 동료들이 자기는 여행 간다, 마음을 비운다 뭐 그런 말들 하길래 저는 ‘뭘 비워, 비울 게 뭐 있다고’ 그랬거든요(웃음). 그렇게 휴식이란 걸 지금껏 모르고 살다가 번아웃이 한 번 온 거죠. 그때 딱 ‘드디어 왔구나’, ‘다들 이래서 쉬는구나’라고 깨닫게 됐어요(웃음). 이번에 여행도 다녀오고, 혼자 한 달씩 쉬다가 여름에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데 정말 힐링도 많이 되고 좋더라고요. 다들 이래서 휴식을 가지나 봐요(웃음).”
그에게 잠깐의 휴식이 큰 충전이 됐던 것처럼, 이성민은 ‘핸섬가이즈’가 복잡한 삶 속에 치여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길 바랐다. 굳이 영화를 보러와서까지 해석과 이해를 위해 골머리를 썩일 필요 없이 A부터 Z까지 주어지는 이야기만을 즐기고, 그 안에 담긴 코미디에 시원하게 웃은 뒤에 극장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 만큼 기쁜 일이 없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뇌를 빼놓고 봐도 이해되는 영화’라는 평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 이성민은 “시사평들이 좋은 걸 보면 저희 상품에 하자는 딱히 없는 것 같으니 이젠 소비자만 찾아주시면 될 것 같다”며 만족감과 자신감을 함께 드러냈다.
“사실 촬영할 때만 해도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는데 지금 보면 MZ세대에겐 오히려 그게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될 것 같아요. 복잡한 서사가 크게 필요 없는 숏폼 시대에 잘 맞는 영화이지 않나(웃음). 제가 감독님한테 ‘우리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누군가 제동을 걸어 줘야 하는데도 그냥 계속 달리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요즘 관객들에겐 그게 더 장점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언론시사평도 보면 다들 작품을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고 호감을 가지시더라고요(웃음). 일반 관객분들도 그렇게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입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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