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 불가 vs 가능 논쟁…‘한약제제’ 법적 분류 안 된 점도 충돌
“영양제 주세요.”
지난 6월 25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A 약국 주변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북적거렸다. 약국 한쪽 벽면에는 ‘약사추천’ ‘건강기능식품’ ‘장건강, 유산균’ 등의 안내 문구가 적혀있었고 그 아래 일반의약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운을 입은 약사들은 복약지도를 하느라 몹시 바빠 보였다.
“이 약국에는 약사 아닌 한약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약사는 약사가 아닙니다. 한약사는 조제약·일반의약품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한약사는 약사 면허가 없습니다.”
A 약국 입구에서 불과 5m도 안 되는 맞은편 길가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약사들이 서너 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마이크를 들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가운을 입고 있지만 약사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약국은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라고 강조했다. 즉, A 약국에서 복약지도를 하던 이들은 약사가 아닌 한약사였던 것이다.
서울시약사회 소속 약사들인 이들은 6월 10일부터 매일 A 약국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당초 A 약국은 6월 1일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시약사회의의 성명발표와 릴레이 시위가 이어지면서 15일에 개업했다. 한편 A 약국 측은 21일 서울시약사회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금천경찰서에 고소했다.
시위를 하는 약사들의 목소리는 약국 바로 앞 횡단보도를 넘어 들려왔다. 지나가던 시민들 대부분은 고개를 돌리고 피켓에 적힌 문구를 읽었다. 그때 신호를 기다리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일행에게 물었다.
“그럼 저 약국은 불법인가?”
#모호한 약사법 두고 약사와 한약사 아전인수
한약사가 양약국을 개업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일까 합법일까. 이에 대해 한약사들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약사들은 ‘불가하다’고 말한다. 한 사안을 두고 양쪽의 주장이 갈리는 이유는 현행 약사법에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약사와 한약사들은 약사법을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아전인수하고 있다.
약사들은 “약사면허증을 취득하지 않은 한약사들의 일반의약품 판매 행위는 한약사가 업무 범위를 초과한 행위”라는 입장이다. 근거가 되는 법조항은 약사법 2조다. 약사법 2조에 따르면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 업무를 담당하는 자’라고 되어있다. 또 약사와 한약사는 교육과정이 달라 전문적인 지식 없이 양약을 취급할 경우 약물 오남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영희 서울특별시약사회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한약사 약국개설 문제의 본질은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범위에 있다”며 “한약사가 자신의 면허범위를 준수하지 않고, 현행법령의 미비점을 이용해 면허범위를 벗어난 보건의료행위를 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약사들은 ‘약국은 약사와 한약사만 개설할 수 있다’는 약사법 20조와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이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약사법 50조에 근거하여 한약사도 약국 개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회 회장은 26일 “현행법에 따라 한약사는 약국을 개설할 수 있으며, 약국 개설자는 처방전 없이도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또한 의약품 분류 기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약품은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만 나뉠 뿐 비한약제제라는 것은 없다”며 “한약사 국가고시에 일반약과 전문약을 다루는 과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약제제’의 정의와 구분도 충돌지점이다. 한약사들은 한약제제가 법으로 분류되지 않아 면허범위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행법은 의약품을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 구분할 뿐, 한약제제에 대해서는 분류를 하지 않는다. 약사들은 관계부처에 한약제제 분류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모호한 약사법 때문에 해석에 따라 서로의 업무 범위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약사의 약국 개업으로 인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에는 한 한약사가 서초구의 100평대 대형 약국을 인수해 파문이 인 바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와 업계에 따르면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은 2020년 700여 곳에서 2022년 800곳을 넘어섰고 2023년에는 838곳으로 증가했다.
한편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저렴한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 있으면 좋다는 쪽이 많았다. A 약국에서 약을 구매한 60대 B 씨는 “다른 건 몰라도 영양제는 확실히 저렴한 것 같다”며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아닌데 기왕이면 싸게 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약사의 시위를 지켜보던 자영업자 C 씨는 “이제 편의점에서도 감기약을 살 수 있는데 오남용 방지를 이유로 한약사의 약국 개원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도 “상도라는 것이 있는데 (한약사가) 약사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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