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체가 밀집해 있던 테헤란로 전경. |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멀리는 19세기 ‘부의 평등’의 실현방안으로 주창된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라는 단어에서부터 가깝게는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논의는 그 정의에서부터 갑론을박을 벌이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재벌을 옥죄는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의 경연장이 될 수밖에 없는 기본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을 목표로 기업의 민주화(Corporate Democracy)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서, 기업 의사결정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 즉, 기업의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였던 오너와 그의 측근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사외이사나 노동조합, 채권단과 같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을 기업의 의사결정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 등과 같은 공적연금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경제민주화가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우리 스스로의 사색에서, 그리고 지인들과의 토론 자리에서 쾌활한 지적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주요 내용을 주제별로 비교·검토해본다. 이번에는 그 첫 번째 주제로 안철수 무소속 후보 진영에서 제일 처음으로 주장한 ‘계열분리명령제도’에 대해 살펴본다.
계열분리명령제도는 세 가지 정책목표를 추구하는데, 첫째,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둘째, 금융계열사를 이용하여 전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 회장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며, 셋째, 그로 인하여 형성되는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여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을 들면, 먼저 재벌 회장들에게 그룹 내 금융계열사에 대한 주식매각, 임원사퇴, 영업양도 등을 명령하여 소유구조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산업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주력 업종을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의 문어발 식 확장을 방지하고자 비주력 기업을 그룹에서 분리시키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경제민주화의 원조라고 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진영에서는 이니셔티브를 뺏기지 않기 위하여 유사한 개념인 ‘지분조정명령제도’를 들고 나왔다. 몇 년 전부터 문제되고 있는 재벌기업 회장의 자녀 및 친·인척이 경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에 대하여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경우 그 회사의 지분을 축소시키거나 매각을 명령하는 것이 지분조정명령제도의 골자로서, 강제적 지분 매각이 필수적이기에 ‘지분매각명령제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통해 보건대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최초로 계열분리명령제도를 제안함으로써 시작된 캠프 간의 경제민주화 ‘지존 싸움’은 점점 공약의 강도를 더해가게 만들고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선점하여 제일 먼저, 강하게 공약을 밀고나가는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정치공학적 문제가 개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계열분리명령제도나 지분조정명령제도 등과 같이 기업집단의 구조에 직접적으로 칼을 대는 정책은 미국의 강력한 반독점정책 중 하나인 ‘기업분할명령제도’에서 유래하였다. 미국 정부는 1910년대 초 미국 전역에서 유일한 독점 석유회사였던 스탠더드 오일을 지역별로 분할하여 6개의 석유회사로 만들었고, 1984년에는 미국 전역에 걸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AT&T를 8개 회사로 분할했다. 이와 같은 기업분할은 미 정부가 이들 회사를 상대로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이들 회사와 법정에서 재판상 화해(Consent Order)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기업분할명령제도와 안철수 후보 측의 계열분리명령제도는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기업분할명령제도는 독점금지법을 위반한 회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화해)을 전제로 함에 반해 계열분리명령제도는 이들 회사에 대한 일방적 명령이다. 두 제도는 또한 그 지향점도 다르다. 기업분할명령제도는 거대 독과점기업의 독점이윤을 제거하여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계열분리명령제도는 재벌 기업 소유주를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입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반할 수도 있다.
헌법 제23조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되,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법률로써 제한이 가능하고, 대신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아무리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재벌기업 총수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그 재산의 처분을 명령하는 방식의 법률은 위헌의 소지가 적지 않다. 특히, ‘공공복리, 정당한 보상’ 등의 헌법 조문을 구체화시켜 그럴 듯한 법률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다툼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공정거래법 상의 규제수준이 문제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공정거래법은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며 위반자에게 제재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용인하고 있으나, 그 개입의 수준에 있어서 개별 기업들의 ‘행태 규제’를 우선적으로 하되, 최악의 경우 기업의 구조 자체를 규제하는 ‘구조 규제’로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계열분리명령제도나 지분조정명령제도 모두 개별 기업의 행태보다는 구조의 직접적 변형을 추구하는 규제로서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하종선 변호사는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사법연수원 11기)로 미국 변호사(캘리포니아)이기도 하다. 서울과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1986년부터 10년간 현대자동차 상임법률고문으로 미국 PL(제조물책임) 소송 등을 방어했고 2004년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하 변호사는 2008년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으로 영입돼 지난해 현대건설 인수전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공동필자로 참여한 김경태 변호사는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올 2월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