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백서·사법리스크 넘어야, 친윤계 견제구 속 분열 수습도 과제…윤과 서로 약점 쥐고 공생 가능성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여당의 새로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22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지 104일 만이다. 한동훈 신임 대표는 선거인단 25만 5930표(62.7%) 일반 여론조사 6만 4772표(63.5%) 등 총득표율 62.84%를 기록, 1차에서 과반을 기록하며 결선투표 없이 압도적 지지세를 확인했다.
한동훈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당원동지와 국민은 국민의힘의 변화를 선택했다”며 “그 변화는 첫째 민심과 국민 눈높이에 반응하라, 둘째 미래를 위해 더 유능해지라, 셋째 외연을 확장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대야당이 지금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폭주하고 있지만, 민심이 일방적으로 제지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아직 국민의 마음에 덜 반응하고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대항해 이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대표는 당원과 일반 국민 모두에서 높은 득표를 하며 ‘대세론’을 입증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한 대표가 과연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뒤를 잇는다. 한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친윤계 진영의 ‘한동훈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 및 친윤계에서 ‘윤심’을 등에 업은 후보를 전대에 출마시키고, 김건희 여사 문자를 공개하는 등 한동훈 대표를 낙마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세는 흔들리지 않았다”며 “이에 친윤계 내부에서 당대표 선출 저지는 무리라고 판단, 대표 취임 이후 한동훈 지도부 붕괴로 전략을 선회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전대 과정 중 정가에서 돌던 ‘김옥균 프로젝트’가 이러한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난 것처럼 한동훈 대표가 친윤계와의 충돌로 지도부가 붕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축출된다는 게 골자다. 친윤계가 한 후보의 당대표직 수행 데드라인을 6개월로 정해놨다는, 구체적 시점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준석 사례’를 떠올리고 있는 친윤계의 구상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전대에서 친한동훈계(친한) 최고위원 2명이 선출되면서 지도부 조기 붕괴 가능성은 낮아졌다. 국민의힘 현 당헌·당규상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다. 따라서 2명 이상의 우군을 확보해야 지도부를 유지할 수 있다. 앞서 이준석 의원이 여당 당대표를 할 때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하면서 당대표 사퇴 수순을 겪은 바 있다.
한 대표는 전대 출마를 앞두고 ‘러닝메이트’ 최고위원 후보 찾기에 공을 들였고, 장동혁 박정훈 의원(최고위원 후보) 진종오 의원(청년최고위원 후보)과 손을 잡았다. 투표 결과 장동혁 후보와 진종오 후보가 지도부 입성에 성공, 당대표 임기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성립됐다. 특히 ‘친한계’ 좌장으로 알려진 장동혁 후보가 최고위원 후보 중 최다 득표율(20.61%)을 기록, 수석최고위원이 되면서 한 대표에 더욱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
다만 박정훈 후보 낙선으로 친한계가 지도부 과반을 점하는 데 실패한 것은 추후 의결권 등을 고려했을 때 한 대표에게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당 최고위원회는 당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지명직 최고위원 1명에 당연직인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현 상황으로 보면 한 대표 본인과 선출직 최고위원 2명, 곧 임명할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을 포함해 4명이 친한계다.
실제 일부 신임 최고위원들은 벌써부터 한동훈 대표 견제에 나섰다. 한 대표가 공약으로 내건 ‘채 해병 특검법’ 추진에 김재원 김민전 최고위원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대 다음날인 7월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국회 운영에 관해선 교섭단체 대표인 원내대표가 최고의 권한과 책임을 갖도록 당헌에 명시하고 있다”며 “겉으로 보기에도 (채 해병 특검법에)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의견이 다른 것이 명백한데, 이런 경우 원내대표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당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같은 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채 해병 특검법과 관련된 입장이라든지 검사를 어떻게 임명할 것이냐 이런 조항이라고 하는 것은 원내 전략에 해당한다”며 “당대표가 이래라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라고 하는 게 기본적인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제22대 총선 참패 과정을 담은 ‘총선백서’도 한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당의 총선백서특별위원회는 당초 전당대회 전에 백서를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총선 참패 책임론 공방 등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대위 의견을 받아들여 발간 시점을 미뤘다. 특위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은 “전당대회를 마치고 총선백서를 즉시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선백서 공개가 미뤄지면서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도 추가로 담기게 됐다. 한동훈 대표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씹음) 논란’과 ‘비례대표 공천과정 잡음 의혹’ 등이다. 이러한 사안들이 총선백서에 공식적으로 실려서 공개될 경우 ‘한동훈 대표의 총선 패배 책임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몇몇 친윤 인사들은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문자 메시지를 무시하며 총선을 고의적으로 지게 했다’며, 이를 ‘해당 행위’로 규정하고 당 윤리위원회 징계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이준석 대표 사례처럼 한동훈 대표를 당 윤리위에 회부해 ‘당원권 정지’ 등 중징계를 내려서 당대표직 수행을 막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한동훈 대표가 6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상황에서 총선백서가 힘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자칫 무리하게 한 대표에 총선 책임을 묻다가 친윤계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 대표는 당선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총선백서에 대한 질문에 “절차에 따라 하면 되지 않겠나”라면서도 “특정한 사람이 총선에 대해 규정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심과 당심이 이번 당대표 선거를 통해 판단했다. 당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백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총선 패배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이 당심으로 이미 확인됐다고 간접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야권이 쏘아올린 ‘한동훈 특검법’도 정치적 부담이다.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특검 대상으로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취소 항소심 고의 패소 의혹’ ‘한동훈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이 포함됐다. 여기에 더해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한동훈 대표의 사설 댓글팀 운영 의혹까지 추가할 계획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한 대표 취임 다음날인 24일 야당 단독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안건으로 상정하고, 향후 청문회·공청회를 진행하기로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조성팀(댓글팀)’ 운영 의혹 규명을 위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조국혁신당은 한 후보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집권당 신임 대표 압박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훈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어왔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만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여권은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용산과의 전면전은 한 대표에게도 득보단 실이 크다는 분석이다.
친윤계 인사들은 취임과 동시에 한 대표를 향해 여러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대표의 댓글팀 운영 의혹 폭로 선봉에 선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7월 24일 KBC ‘여의도 초대석’ 인터뷰에서 “내가 했던 말 중에 사실이 아니거나 거짓인 것은 없다”며 “만약 국회에서 한동훈 특검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에 성실히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멘토’로 불린 신평 변호사 역시 24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만약 한 대표가 계속 당헌에 어긋나게 대통령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당정 협조 관계를 백안시 하면 윤 대통령이 결국 참지 않고 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대표의 가족이나 친척 관계가 윤 대통령보다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본다”며 “내가 여러 가지로 듣기에 앞으로 어떤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은 것 같다”고 ‘한 대표 가족 리스크’ 우려를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한동훈 특검법을 실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야권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보면 야당에서는 한동훈 특검법과 함께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부인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하고, 검사후배이자 여당 대표의 특검법은 재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여당 내 이탈표 ‘8표’를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다. 향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그 법안이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22대 국회 의석 구성상 국민의힘 내에서 8표가 이탈하면 의결된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대폭 수가 늘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친한계 의원들이 윤 대통령 거부권 법안에 찬성을 던지면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결국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서로 약점을 쥐고 공생하는 관계로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해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미 유능하다. 무너져버린 한·미 가치동맹을 복원하고 한·미 핵동맹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무너져버린 원전 산업을 재건해 수십조 원 체코 원전 건설을 수주했다. 무너져버린 불법에 대한 대응원칙을 화물연대 등 불법적 파업에 대해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세웠다. 무너져버린 경제범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 서민들을 금융범죄로부터 보호했다”며 “이 성과들 단 한 가지만으로도 윤석열 정부는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김건희 여사 비공개 조사에 대해 “그동안 조사가 미뤄졌는데 영부인이 결단해 직접 대면 조사가 이뤄졌다. 그러니 검찰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면서도 “다만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있어 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과 검찰의 행태에 대해 간접적으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윤 대통령은 전대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한 대표를 비롯해 신임 지도부와 대표 경선 출마자들, 주요 당직자들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 대표를 비롯해 모두 수고 많았다. 당내 선거는 선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고 단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한 대표는 총선 이후 비윤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그가 윤 대통령에 제대로 각을 세우고 비판했던 적이 있느냐”며 “결국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운명 공동체’로 묶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계속된 실정에 ‘거리두기’하지 못하면 한 대표의 차기 대권 도전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 내부에선 한 대표가 당원과 국민들에겐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과연 강한 그립감을 쥘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전당대회 막판 나경원 후보의 공소취소 청탁 폭로로 당내 인심이 떨어졌다는 이유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한 후보의 폭로 발언이 나오자 비판글이 쏟아졌다. 이 글에 친윤계뿐 아니라 3선 이상 중진 의원 다수가 동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3선 이상 중진 대다수는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현장에서 부딪혔던 사람들이다. 오래 당에 몸담은 당직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계파를 떠나 당시 함께 고생하며 동지애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를 한동훈 대표가 무시하고 건드렸다”이라며 “당장은 대표 취임 초반이니까 대놓고 반발하지는 않겠지만,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 말이다.
“전대 토론회에서 한동훈 대표가 원희룡 나경원 후보를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는 모습을 모두 봤다. 중진들이 한 대표에 힘을 보태주겠느냐. 한 대표는 나 후보가 토론에서 추궁하고 궁지에 몰자 바로 ‘공소취소 청탁’을 폭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원들은 누구나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한 대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어느 의원이 한 대표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겠느냐. 다 까발려져 버릴 수 있는데.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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