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1000만 달러 넘을까”로 시끌
10월 31일 한화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류현진의 포스팅 참가 승인 공문을 제출했을 때만 해도 류현진의 입찰액을 둘러싼 각기 다른 예상이 쏟아졌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류현진의 가치를 입찰액으로 환산했을 때 1000만 달러는 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표적인 이가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이었다.
손 위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통해 류현진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증명됐다”며 “좌완인데다 제구력이 뛰어나고, 평균 140㎞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흔치 않다”는 말로 입찰액이 1000만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 탄탄한 인맥을 형성 중인 허 위원은 “많은 빅리그 관계자가 류현진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며 “국내 야구인들보다 미국 야구인들이 류현진에 대한 가치를 더 후하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허 위원은 “류현진의 질 높은 투구와 내구성을 고려할 때 입찰액만 1000만 달러를 넘을 게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예상도 많았다. 몇몇 야구인은 “미국 야구계에선 KBO리그를 일본리그보다 한 수 아래로 본다”며 “류현진이 좋은 투수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계산에 밝은 빅리그 구단들이 1000만 달러 이상을 입찰액으로 써낼 리 없다”고 내다봤다.
결국 현실은 전자로 판명났다. 11월 10일 한화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최종 2573만 7737달러(약 280억 원)의 입찰액을 제시받았고 공개했다. 1000만 달러를 받느냐, 못 받느냐로 격론을 벌이던 한국야구계는 입찰액이 2500만 달러를 넘자 계면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입찰액이 높았던 세 가지 이유
류현진의 입찰액이 예상 외로 높았던 이유는 3가지로 풀이된다. 먼저 류현진의 순수 가치다. 류현진은 많은 국제대회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모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올림픽과 WBC에서 호투한 류현진에 대해 거의 모든 구단이 잘 알고 있다”며 “빅리그에서도 즉시전력감으로 통할 투수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KBO리그가 일본리그보다 한 수 떨어진다는 평가는 과거에나 통할 이야기”라며 “우리는 두 나라 리그를 동일하게 본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7년 통산 98승 52패 평균자책 2.80을 기록한 류현진은 빅리그 입장에서도 특급투수에 해당했다.
두 번째는 보라스의 위상이다. 아메리칸리그 구단의 한국인 스카우트는 “류현진은 보라스를 만났기에 더 좋은 선수로 포장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1년 전부터 보라스 측에서 끊임없이 류현진을 홍보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라는 게 주내용이었다. 무명의 에이전트가 그렇게 홍보했다면 다들 긴가민가했겠지만, 보라스 쪽에서 나온 말이라 한 번이라도 더 귀를 기울였다.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가 끝나고, 보라스는 주요 구단에 류현진 자료를 배포하며 ‘그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전력보강’이란 점을 알렸다.”
마지막으론 한화 구단의 기민한 대응이었다. 한화는 10월 말 류현진의 미국행을 조건부 허락했다. “만약 합당하지 않은 입찰액이 나올 땐 구단에 잔류하고, 합당한 금액이 나오면 미국행을 허락하겠다”고 공표했다.
당시 한화는 1000만 달러를 기준액으로 삼았다. 알려진 내용과 달리 구단이 설정한 금액은 아니었다. 보라스 쪽에서 자신한 금액이었다. 류현진도 “1000만 달러에 1달러라도 부족하면 국내에 남겠다”며 구단의 전향적인 판단을 적극 수용했다.
한화는 조건부 허락 방침을 세우자마자 KBO를 통해 포스팅시스템에 나섰다. 일부에선 “한화가 다소 성급하게 포스팅시스템에 나섰다”고 비판했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였다.
한 에이전트는 “빅리그 구단이 트레이드와 FA 영입을 통해 전력보강을 완성하기 전 발빠르게 류현진을 입찰하는 것이 옳았다. 그래야 구단에 실탄이 남아 있어 입찰액도 오르고, 류현진의 몸값도 뛸 게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한화가 잘 인식해 발빠르게 대처했고,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평했다.
# 1차 시험 통과한 류현진
류현진의 포스팅 결과가 2500만 달러를 상회했다고 그의 미국행이 확정된 건 아니다. 이젠 몸값 싸움이다. 포스팅은 LA 다저스가 단순히 해당 선수에 대한 단독 교섭권을 갖는 것일 뿐 입단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포스팅액 역시 선수가 아니라 소속구단의 차지다.
2010시즌이 끝나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부터 입찰액으로 1910만 달러를 제시받았다. 라쿠텐은 이와쿠마가 순조롭게 오클랜드에 입단하길 바랐다. 그래야 1910만 달러를 고스란히 구단 통장으로 입금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단은 무산됐다. 오클랜드가 이와쿠마에 제시한 몸값이 턱없이 낮았던 까닭이다. 결국 이와쿠마는 다음해 FA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류현진 측에서 “포스팅을 1차 시험에 통과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야구계는 류현진의 몸값이 1년에 250만 달러 이상은 될 것으로 예상한다. 4년으로 치면 1000만 달러 이상이다. 포스팅 결과로 봐선 그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몸값이 예상보다 낮더라도 류현진의 미국행엔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다. 류현진은 당장의 몸값보단 미국에서 실력을 발휘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