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단계 사기로 수조 원을 챙긴 조희팔.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그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현직 부장검사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다단계 사기왕' 조희팔 씨 사건이 세인들의 관심사로 재부상하고 있다.
조 씨는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범으로 불릴 정도로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전국에 10여 개 피라미드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미끼로 지난 2004년부터 5년간 4만여 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아 3조 5000억 원 규모의 돈을 가로챘다. 하지만 조 씨는 경찰 수사가 본격화된 2008년 말 중국으로 밀항했다. 밀항 당시 경찰이 좌표까지 찍어줬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고, 경찰 고위 간부와 정권 실세들이 그를 비호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조 씨가 밀항에 성공한 뒤 한동안 잠잠했던 사건은 조 씨 사건을 수사했던 대구경찰청 권 아무개 총경이 조 씨 등으로부터 9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경찰은 조 씨 일당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권 총경에 대한 수사를 유보했다.
특히 경찰은 지난 5월에 “조씨가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해 또 다른 논란을 부추겼다. 경찰은 당시 “지난해 12월 19일 중국 칭다오 위하이시의 한 호텔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며 장례식 동영상과 사망진단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이 경찰 발표와 배치되는 새로운 사실관계를 확인하면서 경찰은 수세에 몰렸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경찰의 '조 씨 사망설' 발표 무렵에 중국 공안과 협조해 공범 강 아무개 씨와 최 아무개 씨를 국내로 압송해 조사했다. 또한 검찰은 “조씨 사망설이 의심스럽다”며 중국 공안에 조 씨 사망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검찰의 심상치 않은 수사 움직임에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경찰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를 투입해 조 씨 주변을 전 방위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조 씨와 그 주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계좌추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김 아무개 부장검사의 비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그동안 조 씨 사건을 놓고 검경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기관 주변에서는 이른바 '조희팔 리스트'가 설득력 있게 나돌기도 했다. 이 리스트에는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물론 중앙부처 공무원, 전현 정권 실세 등 정관계 인사 수십명이 오르내렸다. 특히 현 정권 핵심 실세로 군림했던 일부 거물들이 리스트에 거론되자 수사기관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김 부장검사 비리 의혹 사건을 놓고 검경이 치열한 수사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배경에는 검경 간의 해묵은 수사권 독립 문제를 넘어 자기 식구들이 대거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조희팔 리스트' 사건에 대한 수사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고육책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