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아이돌 음주 측정 최고치’라는데…안고 가자니 국내 여론 악화, 버리자니 해외 팬덤 반발
지난 8월 7일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빅히트 뮤직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31·본명 민윤기)의 음주운전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슈가는 전날인 6일 오후 11시 15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거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첫 보도 당시 슈가는 자택이 있는 한남동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전동 킥보드를 운전해 500m가량 이동한 뒤 주차를 하다가 혼자 넘어진 것을 용산 대통령실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 기동대원이 발견해 근처 지구대로 인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팬 커뮤니티 위버스 입장문을 통해 "집 앞 정문에서 전동 킥보드를 세우는 과정에서 혼자 넘어지게 됐고, 주변에 경찰관 분이 계셔서 음주 측정한 결과 면허취소 처분과 범칙금이 부과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드러난 사실은 슈가의 주장과 달랐다. 8월 13일 추가 보도에 따르면 슈가는 사고 당일 한남동의 한 거리에서 '전동 킥보드' 아닌 '전동 스쿠터'를 탄 채 '인도'를 질주하던 중 경계석을 들이받고 넘어졌고, 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 기동대원의 눈에 띄어 음주측정 뒤 곧바로 인근 지구대로 인계됐다. '집 앞 주차' 중에 혼자 넘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물 파손 가능성이 있는 '단독 사고'를 냈던 셈이다.
심지어 슈가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단순히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만취 상태에 해당하는 0.227%에 달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혈중 알코올 농도 0.2% 이상의 경우 2년 이상~5년 미만의 징역, 1000만 원 이상~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수치가 맞다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역대 아이돌 가수 중 최고치로, 앞서 음주운전으로 변압기 파손 사고를 냈던 배우 김새론의 채혈 검사 결과와 비슷한 수준이다.
슈가와 그의 소속사 빅히트 뮤직은 앞서 입장문에서 '전동 스쿠터'를 '전동 킥보드'로 축소하고, 음주운전 여부를 떠나 '인명 피해나 재산상 피해는 없었다'는 말로 잘못을 희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중의 반감을 산 바 있다. 슈가의 형사 처벌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 내에서도 빅히트 뮤직과 모회사 하이브 측에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만일 슈가가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을 경우 국내 방송사 출연정지 명단에 오를 수 있고, 자료화면으로 등장하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라는 굴욕적인 처분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슈가의 논란으로 다른 여섯 멤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엑스(X, 옛 트위터)에 '민윤기_자진탈퇴' '음주운전자_민윤기_탈퇴해' 'SUGA_자진탈퇴' 등 해시태그를 걸고 슈가의 탈퇴를 촉구했다. 방탄소년단 음원 스트리밍을 독려하고 성적을 홍보하는 팔로어 29만 명의 대형 엑스 계정인 '방탄소년단 음원 정보팀'도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빠른 결단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겨 빅히트 뮤직 측에 슈가의 거취를 신속하게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국내 아미의 요구는 해외 팬들의 거센 반발과 부딪치며 팬덤 내 분열을 낳고 있다. 해외 팬들은 탈퇴 총공에 나선 국내 팬들의 엑스 게시물을 집단 신고해 삭제시키는 한편, '방탄소년단 음원 정보팀'에 대해서도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벌한 공격을 가해 결국 계정을 폭파시켰다. 일반적으로 '완전체' 그룹만 지지하는 해외 K팝 팬덤의 특성상 슈가의 논란마저 감싸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 국내 팬들과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소속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제껏 해외 시장을 주무대로 삼아 활동하면서 정상의 자리를 꿰찬 방탄소년단은 해외 팬덤의 세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소속사로선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외 팬덤의 요구에 맞추면 국내 팬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터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빅히트 뮤직이나 하이브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가요계 한 관계자는 "하이브가 최근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내홍, 신규 사업의 부진, 산하 레이블 소속 그룹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 등으로 '빨간불'이 켜진 터에 방탄소년단 완전체의 컴백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진 것"이라며 "슈가를 놓자니 완전체를 원하는 해외 팬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고, 안고 가자니 국내 여론이 회복 불가능 상태로 돌아설 수 있다. 여러 모로 진퇴양난이라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짚었다.
국내 팬들은 지난 13일부터 하이브 사옥 앞에서 슈가의 자진 탈퇴 또는 퇴출을 요구하는 화환 시위에 나섰다. 팬덤 단체 행동이 아니라 팬들이 개별적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진 화환에는 '민윤기 탈퇴해', '포토라인 서기 전에 탈퇴해' '탈퇴로 팬들에게 사죄해' '우리 손을 놓은 건 너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팬들은 화환 '인증샷'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리며 다시 한 번 빅히트 뮤직과 하이브의 결단을 강하게 촉구하는 한편, 이와 관련한 공식입장이 나오지 않을 경우 트럭 시위 등 집단행동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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