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어 경영권 분쟁’에서 ‘직장내 괴롭힘 은폐’로 옮겨진 초점, 분위기 반전 어려워
하이브와의 분쟁 과정에서 유출된 민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 A 씨의 '사내 괴롭힘·성희롱 사건 은폐 의혹' 카카오톡 대화 속 거론됐던 피해 여직원 B 씨가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 8일의 일이다. B 씨는 "일방적으로 가해자인 A 임원만을 감싸고 돌며 밑에서 일하는 구성원에 대한 욕설과 폭언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은 민희진 대표가 자신의 억울함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퇴사한 직원(B 씨)의 카톡을 한 마디 양해도, 동의도 없이 공개했다"며 "여기에 더해 본인은 대표자로 중립을 지켰고 본인이 한 욕설의 대상이 제가 아니며, 카톡도 짜깁기라는 등의 수많은 거짓말을 재차 늘어놓는 것까지 참고 넘길 수는 없어서 이 글을 남기게 됐다"고 뒤늦게 입장을 밝히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B 씨는 '사업 리더' 및 '임원 전략 스태프' 지위로 어도어에 경력 입사한 7년차 직급의 직원이고, A 부대표는 B 씨의 6개월 수습 기간 동안 어도어에 새롭게 합류하면서 B 씨의 업무와 인사 관리 등을 맡게 된 상사였다. B 씨는 A 부대표가 자신을 맡은 이래로 부당하고 과도한 업무 지시를 수차례 내리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일삼았고,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광고주와의 원치않은 술자리에 불렀다며 지난 3월 6일 하이브 RW(사내 윤리기준) 팀에 성희롱 1건, 직장내 괴롭힘 7건을 신고했다. 어도어에는 사내 인사관리(HR) 조직이 없기 때문에 HR 업무 계약을 체결한 하이브가 권한을 위임 받아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B 씨는 민 대표가 A 부대표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도리어 자신을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으로 공격했고, 그의 신고 사실에 대해 '편파적', '보복성', '날조' 등의 표현을 쓰며 허위이거나 과장됐다는 취지로 반박했다고 밝혔다. 당시엔 몰랐으나 최근 민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그가 조사 과정 내내 A 부대표와 긴밀히 소통하며 대처 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자신에 대한 대응 방향까지 지시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됐다는 게 B 씨의 주장이다.
이후 하이브는 B 씨와 A 부대표를 각각 대면조사한 뒤 신고 약 일주일 만인 3월 14일 민 대표에게 메일을 보내 "직장내 성희롱,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레이블 부대표로서 적절하지 못한 언행은 있었다고 보이므로 대표이사께서 구두 경고를 해주시는 것으로 제안드린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민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A 부대표에게 해당 메일 내용을 모두 공유해 그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접수 후부터 A 부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조사 과정에 관여해 왔던 민 대표가 결과가 나온 뒤에도 그를 적극 지원한 것이다.
민 대표는 지난 13일 A4용지 18장 분량의 방대한 입장문을 내고 B 씨의 주장에 반박하며, 당시 그의 신고를 '허위' 또는 '무고'로 판단한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B 씨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신입이나 적은 연차의 직원이 아닌 7년 차의 '사업리더 급' 직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당시 책정된 그의 거액의 연봉을 공개하기도 했다. B 씨가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업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과정에서 어도어 내 직원들과 불화가 잦았고, 그를 관리할 상사로 A 부대표를 새롭게 붙여줬지만 갈등이 지속되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허위 신고를 했을 가능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 대표의 주장대로 신고 배경의 진실 여부를 가리는 데 앞서 민감한 사안에 '실권자'인 대표이사가 사건의 '가해자'인 부대표에게 적극적으로 대응 지시를 내린 것 자체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당초 민 대표와 A 부대표 간의 이 사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경로가 불분명한 '불법 유출'로 먼저 지적을 받아 그 배경은 그다지 주목되지 못했고, 이후 민 대표가 해명을 위해 추가로 공개한 메시지는 A 부대표와 B 씨 양 측의 '허락' 하에 공개된 것으로 짐작돼 왔었다. 그런 추가 메시지에서 민 대표가 양 측 갈등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B 씨로부터도 이해를 받아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미 예전에 일단락된 사건이 '유출'로 인해 부정적인 조명을 받았을 뿐이라는 대중들의 해석이 따랐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실제로는 해당 메시지가 B 씨에겐 전혀 알리지 않고 임의대로 공개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철저한 제삼자 입장에 있어야할 민 대표가 A 부대표를 위해 깊이 개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명이 없다는 점 등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 한해서는 민 대표 역시 '가해자'로 지목되는 만큼, 해명문을 내기 전에 최소한 B 씨와 어느 정도 의견을 주고받아야 했음에도 독단적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한 건 그가 그토록 비난해 온 하이브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대중들이 쏟아낸 따가운 질타였다.
B 씨의 첫 입장문 공개 후 보인 민 대표의 태도도 이제까지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대중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다. B 씨에 따르면 그가 입장문을 낸 뒤 A 부대표는 "미안하다"는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을, 하이브 측은 "미안하다, (신고 사안을) 재조사하겠다"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 쪽지)을 보낸 반면, 민 대표는 "너 일 못 했잖아" "너 하이브니?" 라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 77개를 보냈다. 실제로 민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B 씨가 A 부대표를 징계하지 않은 하이브는 문제 삼지 않고 자신만 공격하고 있는 점, 언론에 관련 자료를 불법 유출한 이들을 언급하지 않은 점, 이와 관련해 당시 B 씨가 알 수 없었던 자료들을 손에 넣어 자신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삼은 점 등을 지적하며 그가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하이브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민 대표의 이 같은 의심은 문제의 카카오톡이 '어떻게' 유출됐는지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해당 카카오톡 메시지는 '하이브가 외부기관에 제출한 사내 감사 보고서'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하이브가 어도어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법원과 경찰 등 해당 보고서를 제출받은 기관은 유출 가능성이 0%에 가깝고, 사내에서도 일부 임원들만 확인할 수 있는 문서의 유출이란 초유의 사태인데도 하이브가 그 경위 파악에 전혀 나서지 않았다는 게 근거였다. 어도어 경영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는 하이브가 이 분쟁과는 별개로 민 대표의 '대표이사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썬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만큼, 유출 경위를 파악해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여기선 완전한 별개의 문제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 사안에 민 대표가 어느 한쪽을 위해서만 개입했다는 것이 확인됐으니 장황한 배경 설명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게 먼저여야 했다. 실제로 B 씨 역시 지난 14일 올린 두 번째 입장문을 통해 민 대표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대표로서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 신고 조사 중 저를 모욕하고 가해자 A 부대표를 감싸고 도와준 사실이 있는지 △그런 행동이 대표이사로서 취할 중립적인 태도인지 △7월 31일 본인의 의혹을 해명한다는 명분으로 제 카카오톡을 공개하면서 제게 사과나 양해를 구하신 적 있으신지"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다만 민 대표는 16일 오후 현재까지 추가 입장이나 별도의 답변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앞서 거대기업 하이브에게 부당한 핍박을 받아온 콩쥐의 입장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지지와 동정을 받았던 그가 B 씨의 사안에서는 팥쥐를 넘어선 '팥쥐 엄마'로까지 비춰 보일 정도이니, 초반 대처를 잘못해도 한참 잘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어 보인다. 하이브와의 법적 다툼 자체에는 이번 논란이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여론에 영향을 준 것만큼은 확실하다. 골리앗에 맞서 '승승장구'해 왔던 민 대표의 크나큰 첫 패착인 셈이다.
한편 B 씨는 하이브, A 부대표, 민 대표 등 이 사건 모든 관련자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민 대표에 대해서는 신고 조사 과정 개입과 수습기간 종료 전 법적 근거 없는 무단 연봉 삭감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 고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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