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원희룡 기획위원장(왼쪽)과 오세훈 청년위원장. 당내 초 선들은 최병렬 대표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 ||
재선의원들은 예상과 달리 최 대표 체제에서 멀어져가고 있으며, 거꾸로 당내 강경투쟁을 선도하면서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를 궁지에 몰아넣는 입장에 서고 있다.
초·재선의 갈등은 최근 특검법 정국에서 잘 드러났다. 원희룡 의원 등 초선의원들은 대체로 홍사덕 총무가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특검법 수정안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당내 보수파들을 중심으로 홍 총무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면서 수정안은 결국 파기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홍 총무에 대한 공격을 주도한 것은 홍준표 김영선 의원 등 ‘재선’들이었다. 이들은 절차상의 문제를 명분으로 홍 총무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당의 강경노선 회귀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홍준표 의원은 “총무가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수용 가능하나 고의적이었다면 치명적 잘못이므로 사퇴해야 한다”며 홍사덕 사퇴론의 선봉에 섰다.
역시 재선인 정형근 의원은 7월11일 의원총회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밀사가 하얏트호텔에 묵고 있다”고 폭로정치를 재개하면서 한나라당 지도부의 보수 회귀에 앞장서고 있다.
재선의원들의 불만은 주요 당직에서 전면 소외되면서 폭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재선의 김문수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막판 ‘김덕룡 총무 만들기’의 책임을 물어 총장에 발탁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김 의원은 최 대표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선의원들은 총무 선거에도 집중 도전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홍사덕 총무와 함께 총무선거에 맞붙어 2, 3위를 차지했던 안택수 임인배 의원이 모두 재선의원이다. 정책위의장 선거에서도 홍준표 의원 등 재선들이 나섰으나 실패했다.
재선이 맡았던 기획위원장은 초선인 원희룡 의원에게 돌아갔으며, 재선의원은 당직에서 거의 소외됐다. 이강두 정책위의장과 박주천 사무총장은 3선이다.
반면 초선들은 원희룡 기획위원장을 비롯, 박진 대변인, 임태희 대표비서실장, 오세훈 청년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대부분 차지했다. 한나라당 당직자회의는 요즘 초선 천국이다.
▲ 최근 당직에서 소외받은 재선 의원들이 당내 강경투쟁을 선도하 면서 최 대표와 홍 총무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정형근 의원 (왼쪽)과 홍준표 의원. | ||
김문수 기획위원장을 비롯, 이재오 정형근 홍준표 의원 등이 기획팀을 이뤄 대선의 실무업무를 주도했다. 이들은 대여 강경투쟁을 앞장서 외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맹형규 권철현 김무성 의원 등은 이회창 전 총재의 비서실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큰 입김을 발휘해왔다. 초선과 재선의 위상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재선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사실상 당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평이다. 초선과 중진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면서 발언권도 극대화됐다. 무엇보다 이회창 전 총재가 재선들을 집중 기용하면서 재선에게 힘이 실렸다. 민주당의 경우 철저히 재선그룹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 등이 이미지 면에서나 기획 면에서 신주류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당의 간판이면서 실무도 장악하고 있다. 추미애 김근태 의원 등 여타 재선들도 자신들의 확고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 재선들은 당직을 맡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중성을 지닌 스타도 배출하지 못했다. 겨우 권철현 의원과 박근혜 의원이 대권의 꿈을 꾸고 있을 뿐 당의 중심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나라당의 재선그룹은 또 서로 반목하는 경향이 많아 쉽사리 단합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단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들은 ‘바른정치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친목을 도모해왔으며, 동교동 실세와의 투쟁속에서 동지애를 느껴온 반면, 한나라당 재선들은 이회창 전 총재의 총애를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있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초선에 치이고, 중진 위세에 눌려 우울한 상황”이라며 “요즘 기분 좋은 재선의원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선들이 초선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최 대표를 원망하게 돼 있다”면서 “최 대표 체제가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는 데에는 이 같은 원인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재선의원들은 개혁 이미지에서 초선인 원희룡 오세훈 의원 등에 밀리고, 강경 이미지에서도 또 다른 초선인 엄호성 이주영 의원 등에 치이고 있는 양상이다. 초선들이 개혁과 강성 이미지를 분점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최근 탈당까지 심각히 고려중이란 후문이다. 그는 “당이 변해야 하는데 실제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며 최 대표 체제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최병렬 대표가 차기 대선후보를 품평하면서 초선 개혁파들에게 기대를 많이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선들의 심기는 더 불편해졌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한나라당의 차기군으로 원희룡 오세훈 의원 등 초선들을 주목했지만 재선에서는 박근혜 의원을 제외하고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재선의원들은 최 대표가 이미지 개선만을 목적으로 초선의원들을 집중 등용했지만 실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검법 파동에서 드러나듯 최 대표와 홍 총무의 독단이나 독주에 대해 초선들은 제어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재선들은 최 대표가 자기 페이스대로 당을 쉽게 끌고 가기 위해 재선을 배제하고 초선을 집중 발탁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선들의 상당수는 과거 서청원 전 대표 체제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서 전 대표와도 심정적으로 가깝다. 이 때문에 재선들이 자칫 서 전 대표측과 합세, ‘최 대표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초·재선갈등은 한나라당 불안의 예상치 못한 불씨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