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색소만 넣은 막걸리도 ‘탁주’ 인정하는 정책 추진…“시장 활성화” vs “소규모 양조장 피해”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지난달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세법 개정안에는 향료나 색소를 넣은 막걸리를 탁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재부는 “탁주에 허용 가능한 첨가물 확대로 다양한 맛과 향 제품 개발과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전했다.
탁주는 주세법에서 사용하는 법률 용어로, 일반적으로는 막걸리라고 불린다. 막걸리는 녹말이 포함된 재료와 누룩, 물, 당분, 아스파탐 등으로 첨가제가 한정돼 있다. 만약 여기에 향료나 색소를 추가하면 주세법에 따라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실제 △바밤바밤(국순당) △톡쏘는알밤동동((주)우리술) △허니버터아몬드주(서울장수주식회사) 등과 같이 향료나 색소를 넣어 만든 술은 기타주류로 분류돼 있다. 소비자들은 ‘향 있는 막걸리’라고 생각해 구매하지만 막걸리가 아닌 것이다. 2012년 청주지법은 “막걸리는 우리 고유의 전통주로 원형대로 유지하고 보존해야 할 공익적인 필요가 있다”며 “막걸리로 인정되기 위해선 향료나 색소를 첨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밤향, 아몬드향 등 향료나 색소를 넣은 기타주류도 탁주로 인정된다. 밤을 넣지 않고 밤 향료를 넣어도 밤막걸리가 되는 셈이다. 세법 개정안 발표 후 전통주업계는 찬반 의견이 쏟아졌다.
일부 주류업계에선 향료·색소를 넣은 막걸리의 탁주 인정이 막걸리 산업 발전에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이젠 막걸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어 많은 주류업체에서 막걸리 마케팅을 진행할 것이고, 이를 통해 고객층을 확대시켜 막걸리 산업 발전에 훈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향료나 색소를 넣은 막걸리를 막걸리로 홍보할 수 있게 되면서 해외 수출에도 용이해질 것이란 평가도 있다. 다른 주류업체 한 관계자는 “막걸리 허용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막걸리 제조사가 증가할 것이고 국내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주류업체들도 등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막걸리 해외 수출량이 감소하고 있어 국내에서 막걸리 허용 범위를 넓혀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부연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량은 1만 3982톤으로 전년(1만 5396톤) 대비 9.9% 줄었다. 막걸리 수출량은 2012년 4만 3000여 톤으로 정점을 찍고 10년 만에 1/4 수준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전통주업계에선 이번 세법개정안 발표를 계기로 막걸리 시장 전체가 하향평준화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 고유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지 않고 향료·색소 첨가 막걸리를 무분별하게 출시하며 막걸리 시장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될 것이란 우려다. 농산물 부재료 대신 향료·색상이 첨가된 저가 막걸리 출시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박사는 “지방의 전통주 양조장에서 오미자를 듬뿍 넣어 막걸리를 제조하는데 주류기업에서 오미자 향료를 넣고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하자. 오미자를 많이 넣지 않고 향료만 넣어도 ‘오미자 막걸리’로 인정되고 가격 측면에서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으니 오미자를 예전과 같은 양으로 넣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막걸리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그간 향료·색소를 넣은 막걸리의 세금 부담이 크게 완화된다. 대형 주류업체들을 위한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세법에 따르면 탁주·맥주·주정은 종량세(용량에 따라 세금 부여), 나머지 주류는 종가세(가격에 따라 세금 부여)가 적용된다. 탁주는 1L 당 44.4원의 세금, 기타주류는 과세표준의 30% 세금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한 병(750ml)의 1000원인 막걸리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주세법상 탁주에 속하는 막걸리면 세금 33원, 기타주류로 분류된 항료·색상 막걸리는 246원의 세금이 붙는다.
이에 따라 탁주보다 기타주류로 분류됐던 막걸리 제품들이 탁주로 인정되면서 주세가 낮아져 가격을 내리면 소규모 전통주 양조장들의 피해는 커질 것이란 시선도 있다. 이대형 박사는 “타 주종 간의 경쟁이 아닌 전통주 탁주 시장에서의 경쟁이 시작되면 소규모 전통주 양조장들은 공격적인 대기업 마케팅에 치여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막걸리 교육기관이나 전통주 양조장들은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세법개정안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국내 최대 막걸리 제조업체인 서울장수막걸리(서울탁주제조협회 산하법인)도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장수막걸리 측은 막걸리에 향료·색소 첨가를 허용하면 전통성 훼손, 소비자 신뢰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일각에선 향료·색상이 들어간 막걸리를 탁주로 인정하면 탁주 내 등급을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향료·색상만 들어간 막걸리인지, 우리 농산물이 부재료로 들어간 막걸리인지 등급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주업계 한 전문가는 “세법개정안은 외국과 달리 막걸리와 전통주를 구분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지 알 수 있는 등급과 그 구분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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