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8일 NCT의 멤버 태일이 성범죄 혐의로 피소됐으며 팀에서는 이미 탈퇴된 상태라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SM엔터)의 공식입장이 나왔다. SM엔터는 "당사는 최근 태일이 성범죄 관련 형사사건에 피소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와 관련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던 중 해당 사안이 매우 엄중함을 인지해 더 이상 팀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태일과 논의해 팀 탈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태일은 이미 지난 6월 피소됐으며, 8월 28일 첫 경찰 조사를 받았다. 8월 3~4일 양일간 개최된 NCT 127 데뷔 8주년 기념 팬미팅에 그가 참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피소 후에도 공식석상에 세웠다며 소속사에 비난이 쏟아졌으나, SM엔터는 팬미팅이 끝난 8월 중순에서야 피소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사측 차원에서도 사실 관계를 알아본 결과 '도저히 감싸줄 수 없다'고 판단해 빠른 탈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슈퍼주니어의 멤버 강인을 비롯해 소속 아티스트들의 크고 작은 범죄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SM엔터의 이 같은 '손절'은 국내는 물론, 해외 K-팝 팬덤마저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정확한 피소 내용이 공개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퇴를 결정했다는 건 그만큼 그의 혐의 사실이 '확정적'이라는 방증이 아니냐는 것이다.

다소 놀라운 점은 이런 비판이 단순히 태일이라는 개인의 범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 팬들은 태일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K-팝을 포함한 K-콘텐츠 전반을 가리켜 "이제껏 해외 팬들을 대상으로 쌓아올린 '한국 판타지' 붕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앞서 빅뱅의 전 멤버 승리, 가수 정준영·최종훈 등이 연루됐던 '버닝썬 사태'와 먹방 인플루언서 쯔양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당한 가학적인 성폭력·공갈 협박 논란에 이어 가장 최근엔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한 대규모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알려진 가운데 이 일련의 사태의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뒤떨어진 여성에 대한 인식을 짚으면서 나온 주장이다.
실제로 2008년부터 K-팝 콘텐츠를 다뤄왔다는 해외 크리에이터 C는 기자에게 "K-팝과 K-콘텐츠가 해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 사회는 그 인기에 걸맞지 않게 시류에 뒤떨어져 있다는 점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여성들이 살해 협박을 받거나 폭행을 당하고 직장을 잃는 일이 당연히 여겨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분노한 해외 팬들의 '보이콧'이 K-팝을 포함한 K-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K-팝 음반 판매량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의 OTT를 포함한 수출도 이전만 한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인한 해외 팬덤의 움직임은 국내 엔터사들마저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이 분노 여론이 엑스처럼 해외에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지 받고 있는 만큼 단순한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 K-팝 전문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엑스나 해외 연예 커뮤니티를 보니 해외 팬들이 이번 사태를 비판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왜 한국의 남성 연예인들은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는가'를 지적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여성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면서 왜 여성의 사회적 문제에 앞장서는 남성 연예인이 없는지를 짚은 것"이라며 "이런 내용이 단순히 일부의 불만에 그치지 않고 거대하게 공론화되면서 침묵하는 남성 연예인들을 향한 화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해외 시장을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산업인 만큼 관계자들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