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강제동원’ 등 과거 입장 반복, 양국 협력만 강조…여 “셔틀 외교 복원” 야 “굴욕 외교 확약”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양 정상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4개월 동안 12번째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만난 셈이다. 기시다 총리가 퇴임을 20여 일 앞둔 만큼 마지막 회담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임기 동안 3번 한국을 찾았다.
양 정상은 9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100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그간 한일 협력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 한일 국교 정상 60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지속된 한일관계 개선의 흐름 견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한 북한 도발과 북러 밀착 등 역내 안정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협력 강화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궈온 성과들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며 “우리 두 사람의 견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지난 한 해 반 동안 한·일 관계는 크게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9월 말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기시다 총리는 고별 정상회담에서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에 큰 결단을 내린 이후 양국 협력이 크게 확대됐다”며 “일본의 다음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통령실은 양국 국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증진시키는 실질 협력 방안을 내놨다고 밝혔다. 제3국 위기발생시 자국민 대피·철수를 위해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재외국민보호 협력각서’를 체결하고, 국내 공항에서 일본 입국 심사를 미리 할 수 있는 ‘사전입국심사제도’ 도입 등 출입국 간소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퇴임 전 마지막 정상회담에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일한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고 과거 입장을 반복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한 계승 입장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입장을 전했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곳 서울에서 저는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도 말씀드렸다"며 과거 자신의 발언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최근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들을 둘러싸고 친일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이 불거졌다. 강제동원·위안부에 이어 최근에는 독도 조형물 철거 및 독도방어훈련 축소 비공개 실시 등 ‘독도 지우기’ 정황까지 대두됐다. 일본 방위상이 공개석상에서 ‘독도방어훈련을 일절 하지 말라’ 요구했는데, 한국의 국방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만나 제대로 된 사과 요구 없이 한일 협력만 강조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의 ‘역대 내각 역사 인식 계승’은 김대중-오부치 선언뿐 아니라 아베 전 총리 등의 극우적 인식까지도 이어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비판 받은 바 있다”며 “가뜩이나 친일 정권 지적을 받고 있는데, 제대로 된 사과나 양보를 받아내지도 못할 거면서 퇴임을 20일 앞둔 일본 총리를 왜 초대한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이번 정상회담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에서는 “기시다 총리를 위한 퇴임선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기시다 총리는 두루뭉술한 입장 표명으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뭉갰고,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굴욕적 외교를 확약 받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12번의 정상회담을 거치는 동안 기시다 총리는 윤 정부에 많은 선물을 받아갔다”며 “강제동원 문제는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한국기업이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 홍보 내조로 진행됐고, 사도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 문제도 ‘강제노동’이라는 표현 없이 등록하며 일본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굴욕외교로 우리 국민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 윤 정부가 수많은 것을 내주고 얻은 것은 일본의 칭찬과 기시다 총리와의 브로맨스뿐”이라며 “국민들은 ‘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 물으며 대한민국을 위한 외교를 하라고 질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굴종적 자세에서 벗어나 굴욕외교로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는 주춧돌이 되길 기대한다”고 반겼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기시다 총리의 적극적인 방한 희망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토대로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적·질적 교류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한일 양국은 12년 만에 셔틀 정상외교를 복원했고, 국방·외교·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다”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한미일 삼각공조의 새로운 틀이 마련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당을 향해 “정상회담 시작 전부터 훼방 놓기에 바쁘다. ‘이임 파티’ ‘혈세 탕진 파티’라며 막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의 진부한 선동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죽창가를 외치며 반일 감정에 매달리고 있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1박2일 동안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기시다 총리는 출국에 앞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일본 유학생 및 한국 학생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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