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후보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경제민주화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을 만났다. 사진제공=문재인 |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 중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지난해 8월 6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는 전체 780만 인구의 3%가 넘는 25만 명이 모인 반재벌 시위가 벌어졌다. 중산층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이 시위에 놀란 네타냐후 보수정권은 강력한 개혁 입법을 하고 민심을 달래고 있다.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경제력 집중에 사용된 핵심 툴(Tool)이 순환출자였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화살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 및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정조준하게 되었다.
순환출자는 예를 들어 재벌 오너 X가 A 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A 사가 자신의 자본금 100 중 60을 B 사에 출자하고, B 사가 C 사에 30을 출자하고, C 사가 다시 A 사에 20을 출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X는 A 사를 통해 B 사와 C 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C 사가 갖는 A 사의 지분으로 A 사에 대하여 추가로 20의 지배권을 더 얻게 된다.
이러한 순환출자가 출현한 원인은 상법이 가공자본을 만들기에 ‘자본충실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상호출자(Cross-Holding)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출자는 A 사가 B 사에 투자하고 B 사는 다시 A 사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재벌은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3개 이상의 계열사를 통해 환상(環狀)형 순환출자 구조를 생각해 낸 것이다.
순환출자 금지 공약의 첫 번째 법리적 근거는 ‘자본충실의 원칙’ 위반에서 찾을 수 있다. 재벌들이 상호출자 금지를 피하기 위해 찾아낸 것이 순환출자인데, 이는 사실 상호출자 금지의 근거인 자본충실의 원칙에 마찬가지로 위배된다. 위의 예로 설명하면, C 사가 A 사에 투자한 20은 결국 A 사가 B 사에 투자한 60 중 20이 C 사를 거쳐 다시 A 사에게로 돌아간 것이기 때문에 상호출자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즉 ‘A→B→A’인 상호출자가 ‘A→B→C→A’의 구조로 변형된 것이 순환출자인데, 이 역시 상호출자와 마찬가지로 가공자본이 형성돼 자본충실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영향력은 커지고 나머지 주주들의 의결권은 희석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A→B→C→A’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A 사를 지배하는 재벌 오너는 자신의 원래 보유 주식 외에 추가적으로 C 사가 갖는 A 사의 주식을 자기 돈 안 들이고 ‘덤’으로 받아 A 사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 있다. 반대로 A 사의 나머지 주주들의 의결권은 그만큼 감소한다.
또한 A 사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C 사와 같은 법인주주는 보통 자금의 여력이 있어서 자신의 지분율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는다. 그러나 A 사의 개인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부담되어 증자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점점 감소하는 ‘희석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호출자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하는 것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위배되어 업무상 배임에 해당될까?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경영자는 상법상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자본충실의 원칙에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할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벌 오너가 자본충실의 원칙을 훼손하는 순환출자 행위를 할 경우 이는 일견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하는 것이고,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법원과 달리 우리나라 법원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상대적으로 좁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순환출자를 한 재벌 오너에 대하여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 하종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