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새해가 밝자마자 포스코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이구택 당시 회장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이구택 회장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으나 허사였다. 임기가 1년 이상이나 남은 상태였지만 거액의 스톡옵션과 탈세 혐의 등이 흘러나오면서 더는 회장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겉으로는 이 회장이 스스로 물러난 형태지만 ‘정치적 외풍’ 때문에 낙마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더욱이 2008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구택 회장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구택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정권의 압력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남았다. 비단 이구택 전 회장만이 아니다. 포스코 회장 자리는 고 박태준 명예회장 때부터 ‘잔혹사’로 불릴 만큼 정권에 따라 수시로 교체됐다.
정준양 회장은 포스코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음에도 현 정부가 밀어준 덕에 포스코 회장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만약 정권이 바뀔 경우 위기감은 더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준양 회장이 포스코 발전에 역사적인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포스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고작 ‘4조2교대’ 근무제다. 오히려 지난 3년간 덩치만 키워놓았다가 재무 상태를 어렵게 만들었고 실적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비판받고 있는 처지다. 이구택 전 회장 시절 70만 원이 넘기도 했던 포스코 주가는 현재 30만 원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실적만 놓고 보면 전임 이구택 회장이 더 좋다. 지금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달성한 것. 때문에 이 전 회장은 남은 임기를 채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직후부터 끊임없이 교체설에 시달리면서도 1년 동안 자리를 유지하던 이 전 회장은 결국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위에서 정준양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실적이 우수했던 이구택 전 회장마저 정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물러난 마당에 실적이 좋지 못한 정준양 회장이 과연 안전할까라는 의문을 품는 재계 관계자가 적지 않다. 포스코 측은 거듭 “철강과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포스코 실적 부진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막강한 경쟁자(현대제철)의 출현’에 대해서 포스코 측은 애써 외면하려 하고 있다. 막상 포스코는 지난 3분기에 현대제철보다 더 좋지 않은 실적을 기록했다.
정준양 회장이 포스코건설 사장 출신이라는 점도 경우에 따라서는 께름칙한 부분이다. 건설 계열사 출신으로 건설과 철강 경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포스코건설이 포스코 비리의 온상’이라는 일부 지적도 포스코건설을 거쳐 포스코그룹의 정점에 오른 정 회장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일이다.
정준양 회장은 취임 후 인수·합병(M&A)과 신사업 진출 등을 적극 모색하며 방만한 경영을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계열사가 늘고 자산이 늘면서 재계순위는 올라갔을지언정 실적 부진과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와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4~5년간 삼성과 현대차의 발전상에 비하면 ‘철강경기 침체’ 탓만 되풀이하는 포스코의 ‘정준양호’의 모습은 쑥스러워 보인다.
정 회장은 방만한 경영의 책임을 임직원들에게 돌리고 있다. ‘비상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허리띠를 바짝 조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준양 회장의 ‘비상경영’에 진정성이 있는지도 의심하고 있다. 혹시 시늉만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비상경영체제를 요란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정작 경영진 쪽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SK텔레콤 등 보유 지분을 매각해 5800억 원을 마련한 것이 눈에 띌 뿐이다.
일례로 포스코가 비주력사업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경남 창원에 있는 대우백화점과 부산 서면에 있는 센트럴스퀘어를 매각하기 위해 애썼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다이아몬드플라자’도 이에 해당한다. 대우백화점은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과 함께 인수한 곳.
포스코가 이들을 매각하기 위해 롯데, 이랜드 등과 접촉했으나 서로 가격 차이가 너무 커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세 곳 중 대우백화점과 센트럴스퀘어의 경우 이미 상권이 죽은 곳”이라며 “포스코 측이 세 곳을 합해 1조 원대를 예상한 것으로 들었으나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매각 작업에서 포스코 측이 현실을 모르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아마도 공기업 때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혹시라도 나중에 잘못되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 책임질 사람도 없을 것을 우려한 탓도 있다”고 꼬집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