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연소 30-30클럽 가입에 100타점-100득점 달성…기념 유니폼 매출만 100억 원
이로써 김도영은 2000년의 박재홍(당시 현대 유니콘스)과 2015년의 에릭 테임즈(당시 NC 다이노스)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한 시즌 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을 동시에 기록한 타자가 됐다. 기록 달성 당시 박재홍은 27세, 테임즈는 29세였다. 김도영은 20세 11개월 6일이 되던 날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 역대 최연소 기록을 작성했다. 김도영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꽤 의미 있는 기록이라 정말 기분 좋다. 그동안 착한 일을 많이 했더니 행운이 온 것 같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매 시즌 30홈런-30도루-100타점을 해내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드롬급 인기의 비결
김도영은 올해 KBO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기록 제조기'다. 역대 최연소 및 최소경기 30홈런-30도루, 역대 최초의 월간 10홈런-10도루, 역대 21세 이하 선수 최다 홈런 신기록, 역대 두 번째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순서대로 쳐내는 것) 등을 차례로 해냈다. '역대급' 기록 행진이 이어지면서 김도영의 인기도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KIA 관계자는 "김도영의 월간 10-10과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를 기념하는 스페셜 유니폼 2종이 예약 판매로 7만 장 정도 팔렸다"고 했다. 유니폼 한 벌의 가격이 13만 9000원이니, 단순 매출 규모가 100억 원에 육박(97억 3000만 원)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다. 유니폼에 특정 선수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마킹 키트(2만 5000원)가 하나씩 팔릴 때마다 선수들은 5000원가량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김도영의 마킹 키트는 상반기에만 2만 장 넘게 팔렸고, 지금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김도영의 올해 연봉은 1억 원인데 유니폼 판매 인센티브만으로도 수억 원을 더 받아갈 것으로 보인다.
공·수·주에서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이 인기의 원동력이다. 김도영은 이미 프로 데뷔 전부터 '제2의 이종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광주 동성고 재학 시절 전국 고교야구 내야수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천재 유격수'로 불렸고, 콘택트 능력·장타력·빠른 발·수비력·강한 어깨에 타고난 야구 센스까지 두루 갖춰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극찬도 받았다. 특히 타격은 이미 초고교급이었다. 고교 3학년 때 전국 대회 21경기에 나서 타율 0.456·출루율 0.531·장타율 0.608·도루 17개로 펄펄 날았다. 결국 KIA는 202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시속 150㎞ 중반대 강속구를 던지던 오른손 투수 문동주(당시 광주 진흥고·현 한화 이글스)를 포기하고 김도영을 1차 지명했다. 타 구단 스카우트는 "강속구 투수는 당분간 여럿 등장할 수 있지만, 김도영 정도의 즉시 전력급 야수는 향후 수년 동안 나오기 힘들다고 본다"고 그 결정을 지지했다.
출발도 화려했다. 김도영은 2022시즌 개막 전 시범경기에서 전 구단 타자 중 유일하게 4할대 타율(0.432)을 기록했다. 고졸 신인 야수가 첫 시즌 시범경기 타율 1위에 오른 건 김도영이 처음이었다. 다만 시범경기의 맹활약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KIA 고졸 신인 야수 최초로 개막전부터 1번 타자로 기용됐지만, 이후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했다. 부상 악재까지 겹치면서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인 지난해에도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개막 두 번째 경기에서 발가락을 다쳐 6월에야 팀에 합류했다. 그래도 타율 0.303에 홈런 7개·47타점·25도루를 기록하면서 첫 시즌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냈다.
#천재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프로 3년 차가 된 올해, 김도영은 마침내 폭발했다. 4월 첫 경기였던 2일 KT 위즈전(3안타)을 기점으로 무서운 질주를 시작했다. 역대 최초로 월간 10홈런-10도루 기록을 세우면서 KBO 4월 MVP를 수상했다. 2022년 3개, 2023년 7개의 홈런을 때렸던 김도영이 4월 21경기 만에 홈런 10개를 몰아 치자 야구계는 깨어난 천재 타자의 비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도영은 당시 "나는 관심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요즘 야구가 잘돼 매일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도영은 멈추지 않았다. 6월 23일 한화와의 광주 더블헤더 1차전에서 메이저리그 11년 경력의 베테랑 투수 류현진을 상대로 시즌 20호 홈런을 쳤다.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올 시즌 10개 구단 타자 중 가장 먼저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 후 53일 뒤엔 역대 9번째 30홈런-30도루까지 해냈다. 국내 타자로는 2000년의 박재홍 이후 24년 만이다. 20세 10개월 13일에 기록을 달성해 박재홍이 보유하고 있던 종전 최연소 기록(22세 11개월 27일)을 2년 넘게 앞당겼다. 또 111경기 만에 홈런과 도루 30개를 모두 채워 2015년 에릭 테임즈가 남긴 종전 최소 경기(112경기) 기록도 갈아치웠다. 그래도 김도영은 활짝 웃지 않았다.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는 걸 느낀다.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며 "중요한 경기가 많이 남았다. 계속 가볍게 치고 많이 출루하면서 투수들을 괴롭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실제로 김도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 기록이 그 결과물이다. 안타를 잘 치거나 힘이 좋거나 발이 빠른 선수는 KBO리그 역사에 여러 명 있었지만, 셋 다 한꺼번에 잘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올해 김도영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역대 야수 최연소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도 사실상 예약한 거나 다름없다. 심지어 그에게는 올 시즌 도전할 수 있는 기록이 더 남았다. 김도영은 9월 18일까지 타율 0.344, 홈런 37개, 도루 39개, 105타점, 134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3할대 타율을 유지한 채 올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타율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 기록까지 완성하게 된다. 이 기록 역시 KBO리그 43년 역사에서 박재홍과 테임즈만 해냈던 기록이다.
박재홍은 2000년 현대 소속으로 타율 0.309, 홈런 32개, 도루 30개, 115타점, 101득점을 남겨 이 '꿈의 기록'에 역대 최초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그해 타점 1위, 도루 3위, 득점 2위였다. 2015년엔 테임즈가 타율 0.381, 홈런 47개, 도루 40개, 140타점, 130득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려 외국인 선수 최초로 이 기록을 완성했다. 타율 1위, 홈런 3위, 도루 5위, 타점 2위, 득점 1위로 5개 부문 모두 톱5 안에 이름을 올렸고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1.287에 달했다. 그 결과 그는 홈런 53개를 때려내고 타점왕(146점)까지 석권한 박병호(당시 넥센·현 삼성 라이온즈)를 제치고 그해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그 후 9년 만인 올해, 김도영이 이들의 뒤를 이어 최연소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40-40 도전은 계속된다
가장 큰 목표도 하나 남았다. 김도영은 올해 국내 타자 최초의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도루 39개를 해낸 그는 9월 16일 수원 KT전에서 시즌 36호와 37호 홈런을 잇달아 터트렸다. KIA가 3-0으로 앞선 3회 초 선두타자로 두 번째 타석에 나서 KT 선발투수 웨스 벤자민의 초구 직구를 힘껏 잡아당겼다. 타구는 130m를 날아가 그대로 좌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9월 1일 대구 삼성전에서 시즌 35번째 홈런을 때려낸 뒤 8경기 만에 다시 터트린 한 방이었다. 김도영은 또 KIA가 7-5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9회 초 1사 1·2루에서 KT 불펜 김민수의 3구째 직구를 걷어 올려 한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쐐기 3점포(비거리 125m)를 작렬했다. 김도영이 한 경기에서 홈런 2개 이상을 친 건 지난 4월 17일 인천 SSG 랜더스전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그는 이 홈런 두 방으로 2009년의 김상현(36개)을 넘어 역대 KIA 국내 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썼다. 외국인까지 포함한 KIA 타자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1999년 트레이시 샌더스가 기록한 40개다. 김도영이 정규시즌 종료 전 홈런 3개와 도루 1개를 추가하면 2015년의 테임즈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40홈런-40도루 고지에 오르게 된다. 잔여 경기가 6게임뿐이라 홈런 3개를 채우는 게 쉽지는 않지만, KIA 팬들은 김도영의 '몰아치기'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다.
#우승까지 했으니 금상첨화
무엇보다 김도영은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 하나를 이미 이뤘다. KIA는 9월 17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0-2로 졌지만, 2위 삼성도 이날 두산 베어스에 패하면서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를 모두 지웠다. 2017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넣은 것이다. KIA는 김도영이 신인이던 2022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다가 탈락해 가을야구를 조기 마감했고, 지난 시즌에는 6위에 머물러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올해는 김도영의 '미친' 활약을 앞세워 정규시즌 왕좌에 올랐다. 김도영은 우승을 확정한 뒤 "2년 전 5위를 할 때보다 오히려 1위를 할 때 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많이 받았다. 1위의 무게가 확실히 무겁다는 걸 실감했다"고 돌이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 하면 정규시즌 1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시리즈에서 꼭 우승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KIA는 '한국시리즈 불패'의 팀이다.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해 한국시리즈에 11번 진출해 모두 우승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준우승'이란 단어는 적어도 KIA 사전에는 없다. 김도영은 "이제 1위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동안 'KIA 왕조'를 세워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팀이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한 뒤라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를 향한 의욕도 마음 편히 드러냈다. 올 시즌 개인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유력한 MVP 후보인데, KIA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김도영은 "시즌 전이나 초중반까지는 큰 욕심이 없었는데, 조금씩 (MVP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고 막상 시즌의 끝이 다가오니까 너무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즌이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니 나도 솔직히 욕심이 있다"고 털어놨다.
40홈런-40도루 대기록은 MVP를 향한 지름길이자 보증수표다. 김도영은 "테임즈가 40도루를 달성할 때 2루에서 베이스를 뽑아 자축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정말 멋있었고, 나도 40도루를 하는 순간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이범호 감독님께서 우승이 확정되기 전부터 '이제 (순위 싸움에) 조금 여유가 생겼으니 3볼에서도 자신 있게 쳐도 된다'고 말씀해 주셔서 요즘 타석에서 좀 더 편하게 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기록을 위해 큰 변화는 주지 않으려고 한다. 디테일한 부분만 조금 더 신경 쓰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실제로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의 40-40 도전에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정규시즌 우승 확정 후 첫 경기인 9월 19일 잠실 두산전에서 김도영을 1번 타자로 전진 배치했다. 김도영은 올 시즌 주로 3번 타자로 나섰는데, 남은 경기에선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설 수 있도록 타순을 앞당긴 것이다. 이 감독은 "김도영에게 40홈런-40도루에 도전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팬들도 많이 기대하고 계시지 않나"라며 "다음 경기부터는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고 그동안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줄 생각이지만, 김도영은 예외다. 남은 경기에서도 되도록 김도영을 1번 타자로 기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도영은 이날 홈런과 도루를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또 한 번 값진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1회 첫 타석에서 잠실구장 한가운데 펜스 상단을 때리는 3루타를 친 뒤 박찬호의 볼넷과 도루로 이어진 무사 2·3루에서 김선빈의 2루수 땅볼 때 홈을 밟았다. 김도영의 올 시즌 135번째 득점이었다. 이로써 그는 2014년 서건창(당시 넥센·현 KIA)이 세운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135점)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도영이 앞으로 한 번만 더 홈을 밟으면 10년 만에 나온 신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올해 KBO리그를 들썩거리게 한 '김도영 신드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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