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한국서 뛴 4년 동안 정말 행복했다”…정우람 은퇴식서 목이 잠길 만큼 오열
각 팀이 차례로 발표하고 있는 '재계약 불가 선수 명단'에는 방출 선수 외에 올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심한 선수들도 포함돼 있다. SSG 랜더스의 추신수(42), 한화 이글스의 김강민(42)·정우람(39)·이명기(37), KT 위즈의 박경수(40), 키움 히어로즈의 정찬헌(34) 등이다. 이들 가운네 이명기와 정찬헌은 이미 지도자로 새출발 할 준비를 마쳤다. 이명기는 친정팀 SSG의 2군 코치를 맡게 됐고, 정찬헌은 키움의 1군 불펜코치로 내년 시즌을 맞는다.
#추신수의 마지막 타석
추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타자다. 그는 부산고를 졸업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 위스콘신 팀버래틀러스 소속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뒤 4년에 걸친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겨내고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20년까지 시애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 신시내티 레즈,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차례로 입고 MLB를 누비면서 16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5, 안타 1671개, 홈런 218개, 782타점, 도루 157개를 기록했다. 출장, 타율, 홈런, 타점, 도루 모두 한국인 빅리거 최다 기록이다. 2009년엔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2015년엔 아시아 타자 최초로 힛 포 더 사이클(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작성했다. 2018년엔 한국인 야수 최초의 MLB 올스타로 선정됐고, 같은 해 텍사스 구단 단일 시즌 최다 경기 연속 출루(52게임) 기록도 세웠다.
MLB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추신수는 2021년 KBO리그행을 선택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에서 추신수의 보유권을 갖고 있던 SSG가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그해 한국에 오자마자 21홈런-25도루를 기록해 KBO리그 역대 최고령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웠다. 20홈런-20도루 달성 당시 나이가 39세 2개월 22일로, 양준혁이 200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기록한 38세 4개월 9일을 1년 가까이 넘어섰다. 은퇴를 예고하고 시작한 올 시즌에는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전 롯데 자이언츠)가 보유했던 KBO리그 최고령 타자 출장, 안타, 홈런, 타점 기록을 모조리 바꿔놨다.
그리고 추신수는 9월 30일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키움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고별전을 치렀다. 팀이 7-1로 크게 앞선 8회 말 1사 후 대타로 기용돼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타석에 섰다. 추신수의 프로 통산 1만 2145번째 타석이었다. 더그아웃에서 나온 추신수가 헬멧을 벗고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자 SSG 팬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추신수는 애써 웃었지만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고, 아내 하원미 씨와 딸 소희 양도 관중석에서 울먹이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추신수는 자신보다 22세 어린 투수 김연주의 직구를 때려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그래도 팬들의 함성은 더 커졌다. SSG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에 도열했고, 이숭용 SSG 감독은 추신수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추신수가 24년 동안 밟았던 그라운드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추신수의 KBO리그 4시즌 통산 기록은 타율 0.263, 안타 396개, 홈런 54개, 205타점, 도루 51개다. 그는 이날 경기 후 "MLB 텍사스에서 마지막 경기에 나섰을 때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상태라 아쉬웠다. 관중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 타격을 하는 이런 상황이 그리웠다"며 "미국 생활을 할 때 아내와 자녀들이 많이 고생했다. 미안했고, 고마웠다"는 진심을 전했다. 그는 또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가 온 나에게 SSG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줬고,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동기를 줘서 고맙다. 한국말로 자유롭게 대화하며 야구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며 "특히 2022년 통합우승을 차지한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한국에서 뛴 4년 동안 정말 행복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MLB 시절 추신수의 두 번째 소속팀이었던 클리블랜드의 남다른 '의리'도 빛났다. 클리블랜드 구단은 10월 3일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추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멋진 여정을 보낸 추신수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클리블랜드에 멋진 추억을 남겨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에 몸담았던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를 굳히면서 팀 타선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사실 그의 '진짜' 마지막 경기는 이튿날인 10월 1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5위 결정전이었다. 추신수는 9회 1사 1루에서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한 타석을 더 소화했다. 그러나 타이브레이커는 정규시즌(144경기)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번외 경기라 이 타석도 추신수의 공식 통산 기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추신수의 은퇴식은 내년 시즌 중으로 예정돼 있다. 시즌 마지막까지 SSG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자 추신수가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돕고 싶다"며 은퇴식 연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김강민 은퇴식은 SSG에서
김강민은 역대 KBO리그 외야수들 가운데 가장 수비를 잘하는 중견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수많은 외야수 후배들이 그를 '롤모델'로 꼽으며 야구를 해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김강민도 이제 유니폼을 벗게 되는 날이 왔다. 한화는 10월 2일 재계약하지 않는 선수 명단을 발표하면서 "김강민이 시즌 막바지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혀 구단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김강민은 SSG의 레전드였다. 2001년 SK 와이번스(현 SSG)에 신인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18순위)로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3년 동안 한 팀에서만 뛰면서 2000년대 후반을 지배한 'SK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SSG가 통합 우승을 차지한 2022년엔 역대 최고령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2023시즌 종료 후 은퇴를 고민하다 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 김강민을 아무런 대책 없이 40인 보호선수에서 제외한 SSG 구단에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을 정도로 야구계를 들썩이게 한 '사건'이었다. 그 여파로 김성용 SSG 전임 단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김강민은 고심 끝에 한화 이적을 택해 선수 생활을 1년 더 연장했지만, 하지만 올해 한화에서 41경기만 뛰고 은퇴 결심을 굳혔다. 김강민의 1군 통산 기록은 1960경기 타율 0.273, 안타 1487개, 홈런 139개, 681타점, 도루 209개. 그중 SSG 유니폼을 입고 쌓아 올린 성적은 1919경기, 타율 0.274, 안타 1470개, 홈런 139개, 674타점, 805득점, 도루 209개로 통산 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김강민이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낸 한화와 선수 생활 24년 가운데 23년을 몸담았던 SSG는 은퇴식 방법과 장소 등을 놓고 고민을 공유했다. 그리고 SSG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김강민의 은퇴식은 내년 시즌 그의 오랜 홈이었던 인천에서 '친정팀'이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SSG는 10월 15일 "김강민이 구단에서 23년 동안 활약하며 보여준 노고와 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은퇴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은퇴식 일정은 2025시즌 중으로 추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강민은 먼저 은퇴를 공표한 추신수와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추신수가 한국에 온 뒤 KBO리그 적응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의지한 친구가 김강민으로 알려져 있다. 두 친구는 올해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었지만, 은퇴식에는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참석할 수 있게 됐다.
김강민이 또 다시 'SSG 선수'로 돌아가 한 경기를 더 뛸 방법도 있다. KBO는 2021년부터 은퇴 경기를 치르는 선수에 한해 단 하루 정원 외로 1군에 등록할 수 있는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선수 한 명을 2군에 보내지 않고도 은퇴 선수가 은퇴식 당일 마운드나 타석에 설 수 있게 마련한 장치다. 그동안 김태균(2021년)·박용택·나지완·오재원(이상 2022년)·더스틴 니퍼트·정우람(이상 2024년) 등 6명의 선수가 이 규정을 활용했다. 특히 니퍼트는 김강민과 비슷한 케이스다. 2018년 KT에서 마지막 1년을 뛰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커리어의 대부분(7년)을 보낸 두산에서 올해 은퇴식을 했다. 니퍼트처럼 김강민도 내년에 '일일 SSG 선수'가 돼 친정팀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다.
#대전구장도, 정우람도 안녕
2024년 9월 29일은 한화가 39년 세월을 함께한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날이었다. 투수 정우람도 바로 이날 대전에서 21년 프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팀과 팬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정우람은 2004년 신인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11순위)로 SK에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16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한화로 이적했다. 1군 통산 기록은 977⅓이닝, 64승 47패 197세이브 145홀드, 평균자책점 3.18이다. 정우람은 KBO리그 통산 1005번째 경기였던 이날 NC 다이노스전에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나섰다. 그는 이전까지 출전한 1004경기에 모두 구원 등판한 전문 불펜 투수였다. 지난해 10월 15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003번째 경기에 출전하면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단일 리그 투수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올 시즌엔 2군에서 플레잉코치로 뛰느라 한 번도 대전 마운드를 밟지 못했지만, 한화는 이날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를 활용해 그를 1군에 등록하고 데뷔 첫 선발 등판 기회를 줬다. 정우람의 두 아들 대한(13) 군과 민후(11) 군이 이날 시구와 시타를 맡아 아버지의 새 출발을 든든하게 응원했다. 고별전에서 처음으로 경기의 첫 타자를 상대하게 된 정우람은 "나도 깜짝 놀랐다. 매번 경기 중간에만 나가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가장 먼저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한 타자와의 승부에 모든 힘을 다 담아보겠다"고 웃어 보였다.
낯선 임무를 맡았지만, 등장하는 장면은 익숙했다. 정우람은 다른 선발 투수들과 달리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에서 달려 나와 마운드로 향했다. 이어 이날 NC 리드오프 최정원을 상대로 직구만 4개를 던졌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있는 온 힘을 실어 정면승부를 이어가다 4구째에 우전 안타를 맞았다. 아쉬운 미소를 지은 정우람은 어느새 마운드로 모여든 내야수들과 한 명씩 포옹한 뒤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만원 관중과 더그아웃의 동료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정우람은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선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불펜 문을 열고 그라운드로 입장할 때부터 오열을 시작했다. 후배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직접 쓴 은퇴사를 읽어내려갈 때쯤엔 이미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 선수들마저 흐르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 정우람은 인터뷰에서 "아침부터 계속 눈물이 났고, 은퇴사를 준비하면서 더 슬퍼졌다"고 털어놓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해 말을 멈춰야 했다. 그는 이어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마음으로 야구장에 왔다. 긴장을 많이 했고, 슬프고 설레면서 뭉클하기도 했다.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다"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2016년 한화에 왔는데, 9년간 팬분들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게 가장 아쉽고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우승 주장 박경수의 작별
박경수는 KT의 올해 가을야구가 끝나는 날 22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10월 11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KT가 LG 트윈스에 1-4로 패해 탈락하자 "30년 넘게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는 날이 왔다"며 "여러 가지 감정이 솟구친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수는 KT가 자랑하는 '우승 주장'이다. 성남고를 졸업하던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2015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당시 신생 팀이던 KT로 이적했고, 10년을 뛰면서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프로 통산 204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9, 안타 1396개, 홈런 161개, 719타점, 727득점을 기록했다.
박경수는 막내 구단 KT의 기틀을 다진 베테랑 중 한 명이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리더로 활약하면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특히 2021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여러 차례 몸을 날리는 호수비를 펼쳐 KT의 창단 첫 통합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그는 당시 3차전 수비 과정에서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선수단과 동행하면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4차전 승리로 KT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목발을 짚고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던 박경수가 이내 목발을 내던지고 후배들에게 안기며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KT 구단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으로 남았다. 그해 한국시리즈 MVP도 박경수의 차지였다.
박경수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도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미 은퇴 결심을 한 뒤라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이강철 KT 감독의 권유에 따라 경기 전후 후배들의 훈련을 돕고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KT가 5위 결정전,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거치는 동안 박경수도 선수단과 항상 함께했다. 박경수는 "프로 생활을 잠실에서 시작했는데, 마지막도 잠실에서 하게 됐다"고 남다른 감회를 털어놓은 뒤 "사실 아직은 은퇴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경기 후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그저 수고했다는 한마디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난 KT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경험했고, KT에서 많은 성장을 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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