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후보가 11월 15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1월 13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고 전태일 열사 42주기 추모일을 맞아 오후 3시 서울 종로5가의 전태일 다리를 방문한다고 계획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전태일 다리를 찾았다. 이미 전태일 동상을 둘러싸고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사진기자들로 주변이 복잡했다. 다리 주변에는 이미 교통정리를 위해 경찰들도 나와 있었다.
35년 전부터 청계천에서 문구 도매업을 해왔다는 A 씨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전태일 동상을 찾아와서 길을 막고 있으니 짜증난다”며 “왜 전태일 동상을 복잡한 이곳에 설치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예정된 시간을 넘긴 오후 3시 14분 국화꽃을 든 경호원이 먼저 다리에 도착했다. 그는 “문 후보가 서울 창신동의 전태일 재단에서 일정이 늦어져 지금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어오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42주기 추모일을 맞아 전태일 다리를 찾은 문재인 후보. |
드디어 오후 3시 40분 문 후보가 전태일 다리에 도착했다. 카메라 불빛이 정신없이 터졌다. 문 후보는 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문 후보는 전태일 동상에 국화꽃을 헌화한 뒤 묵념을 했다. 시민들 앞에서 노동 민주화 실천 의지를 다짐했다. 전태일 다리에서의 일정은 그렇게 10분 만에 끝이 났다.
오후 3시 50분 문 후보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차를 타고 떠났다. 그가 사라지자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수건가게를 하는 B 씨는 “문 후보가 왔다기에 그러려니 했다”면서 “언제부터인가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은 전태일 동상에 인사 오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동상을 찾는 정치인들이 정말 진정성을 갖고 오는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에는 한국대학생포럼 주최 ‘박근혜 대선후보 초청, 그녀에게 직접 묻고 직접 듣는다’ 토크 콘서트가 열리는 건국대학교를 찾았다. 대학생들을 위한 초청 토크 콘서트였지만 시작되기 30분 전인 오후 6시 30분 건국대 새천년관에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C 씨는 “박 후보를 보고 싶어 직접 찾아왔다”며 “근데 주최 측에서 노인들은 앞좌석에 앉을 수 없다며 나중에 뒤편에 자리가 남으면 입장시켜 준다고 해 기다리는 중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정작 건국대 학생들은 이번 행사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건국대에 다니는 D 씨는 “얼마 전까지도 박 후보가 건국대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학교 게시판에 박 후보의 건국대 방문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장 입구에서 현장 접수를 하려하자 한국대학생포럼 관계자는 “1987년 이전 출생자는 신청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들어갈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출입이 되는 등 철저하게 검사했다.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7시쯤 공연장 한 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건국대 모임 학생들과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 8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박 후보의 방문을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인 것. 사복 경찰들과 의경들이 달려가 그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시위자들을 둘러싸고 건물 바깥으로 쫓아냈다. 시위자들이 다시 진입을 시도하려 하자 의경들이 몸으로 문을 막고 섰다.
▲ 공연장 밖에서는 일부 학생들의 기습시위가 벌어졌다. |
“자리가 꽉 차 입장이 안 된다”는 주최 측 관계자 설명과는 달리 공연장 뒷좌석은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기자가 직접 세어본 결과 총 805석 중 216석이 비어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인터넷을 통해 미리 신청을 받았는데 안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또한 공연장 밖에서 기습시위가 벌어졌는데 안에서도 비슷한 소란이 일까봐 공연 중간에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토크 콘서트는 8시 20분에 끝이 났다.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한 쪽에서는 진행관리나 모니터링 설문지를 작성한 학생들에게 봉사활동 확인증을 나눠주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박 후보의 토크 콘서트를 어떻게 보았을까. 중앙대에서 왔다는 E 씨는 “TV에서 보던 박 후보를 실제로 봐 신기했다”면서도 “정책 부분에 대한 언급이 너무 적고 입장이 두루뭉술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지난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지방분권 촉진 전국 광역·기초의회의원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결의대회에는 박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참석하기로 예정됐다. 오후 1시 30분 시작되는 행사에 후보들의 격려사는 오후 2시 30분부터 계획돼 있었다.
결의대회 중간 격려사 시간에 맞춰 박 후보와 안 후보가 나타났다. 사진기자들과 행사 참석자들의 이목이 모두 후보들에게 쏠렸다. 진행자가 단상 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두 후보가 차례로 단상에 올라 연설을 했다. 30분 동안의 격려사가 끝나고 박 후보와 안 후보는 바로 행사장을 떠났다. 그들을 따라 기자, 카메라맨, 결의대회 참석자 등이 모두 대극장을 나갔다. 아직 결의문 낭독 및 구호제창 순서가 남아있었지만 자리에 남아있는 광역·기초의회의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의문을 낭독하러 올라온 강영석 경상북도의회의원은 “후보들이 떠나니 파장이 돼버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