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석 경사는 경기지방경찰청 최초로 화재감식 전문수사관 마스터 인증을 받았다. |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의 최민석 경사가 전문적인 화재감식요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실시한 화재감식 전문과정 교육을 받게 된 이후 2008년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비롯해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등 3000여 건이 넘는 현장에서 조사 능력을 발휘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최 경사는 경기지방경찰청 최초로 경찰청으로부터 화재감식 전문수사관 마스터 인증을 받았다. 그는 “화재 현장의 다 타고 없어진 잔해 속에서 숨겨진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그는 경기청 과학수사계 안에 개설된 화재감식팀에서 5명의 동료들과 화재 현장 조사를 전문으로 출동하고 있다.
하지만 화재감식은 불과 관련되기 때문에 경찰청보다는 소방청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 최 경사는 “소방청 화재감식요원이 화재 예방과 통계를 위한 행정적인 조사를 수행한다면 경찰청의 화재감식요원은 방화나 실화 같은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현장 조사를 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경찰청 화재감식팀은 대형화재나 사상자가 생기는 경우 출동 요청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검시팀과 같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소방청과 다르다”고 전했다.
화재 현장은 다른 범죄 현장보다도 감식이 어렵다. 불의 속성상 모두 태워 없애기 때문에 증거물과 범죄현장이 온전히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재 사고는 명백한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의 정확한 화재 원인을 결론내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경사는 “추정되는 결론은 내렸었다”며 “하지만 ‘이것 말고 다른 원인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워 추정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화재감식요원으로 일한 지 10년. 최 경사는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와 수원 서부 공장 화재 사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2009년 일본인 관광객과 한국인 가이드를 포함해 11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최 경사는 화재감식 전문수사관으로 경기청에서 지원을 나갔다. 그는 “부산에 내려가니 국내 언론사 뿐 아니라 일본 언론사까지 대규모로 취재를 와 이목이 집중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일본 조사관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국과수, 경찰, 소방 연합팀을 구성해 현장에 들어갔다. 천장 배선검사를 할 때 내가 잔해를 뒤집어쓰며 천장을 도끼로 다 뜯어냈다. 그 모습을 본 일본 대사관 측 관계자가 ‘한국의 화재 조사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놀랐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화재감식을 통해 화약 잔사로 불이 난 걸 증명했고, 이를 시뮬레이션까지 해 보여줬다. 일본에서도 ‘조사는 완벽했다’고 인정하면서 잘 마무리됐다.”
수원 서부 공장 화재 사건은 4년에 걸친 끈질긴 수사 끝에 해결한 사건이었다. “2008년 수원 서부 공장에서 불이 났다. 그런데 범인이 지능적이었다. 내가 방화라고 입증을 했지만 용의자에게 알리바이가 있어 ‘방화현장에 있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다. 꼭 해결하고 싶었다. 담당 검사가 3명 바뀌는 동안 용의자를 10번 넘게 만났다. 결국 불이 나는 시간을 조작하는 지연착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재연 실험을 통해 증명해 올해 용의자를 기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감식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위험한 일은 없었을까. 최 경사는 “화재현장은 항상 유독가스와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며 “현장에 들어갈 땐 마스크에 보호복까지 착용하지만 조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면 몸까지 화재 그을음이 묻어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화재 현장은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둡다. 지반도 약하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그럼에도 갑자기 바닥이 꺼져 수심 2m의 물탱크에 빠질 뻔한 적도 있다. 화재 현장은 들어오는 사람이 소수라 조사 과정 중 사고로 실종돼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끔 혼자 들어가면 공포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밝혔다.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2008년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최 경사는 “화재 당시 물류창고 안 화재감지기가 켜져 있었느냐를 확인하는 게 무척 중요한 사항이라 창고 안에 들어가 감지기를 꺼내 와야 했다. 근데 창고는 붕괴되기 시작했고 소방구조대도 ‘위험하니 안 들어가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화재감지기를 꺼내오는 동안은 안 무너진다’고 말하고 동료와 들어갔다. 화재감지기를 꺼내들고 나오는데 지붕이 무너지며 돌덩이가 안전모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땐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위험한 일을 시작했을까’ 후회도 되지만 정작 가장 힘들고 괴로운 건 피해자들을 볼 때라고 한다. 최 경사는 “화재가 발생하면 재산 피해가 크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화재감식요원들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 우리는 그분들이 보상받을 길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꼼꼼하게 조사해보지만 이미 다 불에 타 도와줄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아 답답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요즘 경기지방경찰청 화재감식팀은 하루 평균 2건, 3건씩 화재 현장에 출동한다. 최 경사는 “최근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다 보니 화재가 더 늘고 있다”며 “조사를 나가보면 귀찮고 불편하니까 소방안전시설을 꺼놓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럴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불조심을 강조했다.
덧붙여 최 경사는 “불이 위험한 이유는 불장난이든 방화든 불이 일단 났다 하면 얼마나 확산이 될지, 피해가 얼마나 발생할지 예상을 못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방화범을 강력범죄자로 분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