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의자 집 앞의 CCTV 화면. 사망한 피해자가 실려나가고 있다. |
▲ 사건 당일 연탄난로의 덮개를 열어놓고 외출했던 피의자가 피해자가 사망했을 시각인 오후 1시 경 돌아와 연탄을 갈고 재를 버리고 있다. |
지난 20일 경기지방경찰청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내연남을 양자로 입양해 살다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 윤 씨와 범행을 공모하고 방조한 친아들 부부 등 4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윤 씨와 채 아무개 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말 안양의 한 골프연습장에서다. 보육원에서 자라 한때 조직폭력배 활동으로 수감된 적이 있었던 채 씨는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뒤 서울로 올라와 사채업을 하고 있었다. 윤 씨는 1995년 이혼한 뒤 건축자재 납품업 등을 하며 40억 원(공시지가 기준)이 넘는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한 재력가였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안양 근처 교도소에서 재소자 교화 활동을 해왔다. 윤 씨는 채 씨를 교화시킬 목적으로, 채 씨는 윤 씨의 재력을 보고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만남을 지속하다 내연관계로 발전했고 2개월 만에 윤 씨는 채 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윤 씨의 집에는 아들 박 아무개 씨와 그의 아내 이 아무개 씨(여·35)가 함께 살고 있었다. 윤 씨는 아들에게 “채 씨를 형으로 대하라”고 말하며 둘의 내연관계를 숨겼다.
그러나 윤 씨가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와 한 집에 산다는 소문이 이웃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2004년 윤 씨는 채 씨를 양자로 입양했다. 그 다음 해에는 박 씨 부부를 분가시켜 사실상 집에는 윤 씨와 채 씨 둘만 살게 됐다.
그러나 2006년부터 윤 씨와 채 씨의 갈등이 시작됐다. 채 씨가 윤 씨를 두고 다른 여자들을 만났고 술을 마시면 폭행을 하는 등의 문제로 다툼이 잦아진 것이다.
참다못한 윤 씨는 결국 2009년 말 채 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 때부터 윤 씨는 채 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종신보험을 집중적으로 가입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보험설계사 유 아무개 씨(여·52)가 가담한다.
2010년 1월 유 씨는 특약 없이 사망 시에만 4억 3000만 원이 지급되는 보험을 채 씨에게 만기환급금이 지급되고 추후 연금전환도 가능한 것처럼 허위 고지해 보험 계약을 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유 씨는 2주 후 채 씨가 사망하였을 때 그의 죽음이 충분히 의심이 감에도 불구하고 박 씨로 하여금 보험금을 청구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범행을 방조했다.
윤 씨는 보험 계약 후 보험금의 수익자를 친아들인 박 씨로 변경했다. 이어 보험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채 씨의 연락처를 박 씨의 것으로 바꾸고 보험회사에서 수익자 변경 동의여부를 묻는 확인전화가 오자 채 씨 행세를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윤 씨는 이 보험 말고도 2002년부터 채 씨 사망 시 자신들이 모두 합쳐 6억70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채 씨 명의의 보험 12개를 가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살해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아들 부부인 박 씨와 이 씨도 끌어들였다. 이들은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 거짓으로 수면장애 증세를 호소했다. 그렇게 수면제를 처방받은 윤 씨와 아들 부부는 지난 2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서울, 안양, 강원 평창 등지를 돌아다니며 수면제 80여 알을 구입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2월 10일 새벽 윤 씨는 자신의 집에서 채 씨에게 수면제를 탄 홍삼 즙을 건넸다. 홍삼 즙을 마시고 잠든 채 씨를 두고 윤 씨는 거실에 있는 연탄난로의 덮개를 열고 집을 나왔다. 채 씨는 결국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하고 만다. 윤 씨는 범행을 저지르고 16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윤 씨는 그보다 앞선 오후 1시경 집으로 돌아와 연탄재를 버리고 새 연탄을 가는 모습이 현관 앞 CCTV를 통해 확인됐다.
▲ 범행에 사용했던 연탄난로와 동일한 연탄난로. |
수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윤 씨와 아들 부부가 수면제를 구입한 사실까지는 확인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불면증 치료차 수면제를 샀다고 주장해 범행을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지난 5월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인계됐고 전면 재수사가 진행됐다. 광역수사대는 지난 5월 윤 씨가 사용한 컴퓨터에서 수면제 구입 방법을 검색한 사실 등을 밝혀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보험사 특별조사팀 등을 상대로 사망 직전 채 씨 앞으로 가입된 보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주변인물 수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윤 씨 등의 혐의를 확인하고 지난 10일 살인 등의 혐의로 전원 검거했다. 결국 박 씨와 이 씨는 “어머니의 지시로 수면제를 구했고 이후에도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수면제를 4회 더 구입했다”고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
2010년 2월 수사 초기부터 채 씨의 죽음이 연탄가스 사고라고 주장하던 윤 씨는 박 씨 부부의 자백이 나오자 “채 씨와의 내연관계를 끝내기 위해 동반 자살을 하려고 수면제를 샀다”고 말을 바꿨다. 보험에 대해선 “재테크 목적으로 보험에 든 것이고 나와 박 씨 부부 명의로도 보험 20 여개를 가입해 매달 500여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고 살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윤 씨의 진술이 계속 바뀌고 수면제 구매와 보험 가입 등의 정황을 봤을 때 타살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억 원이 넘는 5층 상가건물을 소유한 윤 씨가 6억여 원의 보험금을 노리고 채 씨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조사 결과 윤 씨는 매달 900여만 원의 건물 임대수익이 있었지만 건물을 담보로 5억 원의 부채가 있는 등 빚도 적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보강수사를 계속해 나가는 한편 윤 씨와 그 아들 박 씨를 구속하고 박 씨의 아내 이 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