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 본점 합성 이미지. |
최근 2년간 우리은행은 68개의 점포를 신설했다. 그 결과 2010년 905개이던 우리은행 점포는 지난 6월 말 기준 973개로 늘어났다. 점포 수 1위인 국민은행이 2010년 1168개에서 지난 6월 말 1172개로 고작 4개가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같은 기간 외환은행과 합한 점포 수가 1002개에서 1016개로 늘어났다. 우리은행에 밀린 신한은행은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점포 수가 952개에서 948개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신한은행의 경우 2011년까지 점포 수를 꾸준히 늘려왔으나 지난해와 올해 대폭 줄이면서 우리은행에 역전을 당했다.
이처럼 주요 시중은행들이 점포 수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이는 추세에서 우리은행만은 유독 점포 수를 늘려왔다. 은행을 비롯한 전체 금융권이 불황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우리은행만 점포 수를 확대하고 있을 때 의아해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보수적인 성향의 은행권에서 오히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탓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점포를 신설한 곳은 대부분 우리은행이 그동안 취약했던 지방이었다”며 “통폐합 대상은 상권이 쇠락한 서울·수도권 지역으로 예상하고 있을 뿐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태도를 확 바꿔 점포 통폐합 움직임을 보이자 업계에서는 먼저 은행권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미 인적·물적 구조조정에 착수한 증권업계와 달리 용케 버텨내던 은행권도 더는 견뎌내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 신한 등 우리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이 몸조심을 하긴 했으나 우리은행이 공격적으로 나선 데는 아직 버틸 만한 근거가 있다고 봤지만 우리은행마저 돌변하자 그 근거마저 무너져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가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은행권도 멀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기업뿐 아니라 가계대출 부실이 현실화한 것이 은행으로서는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점포 수를 늘린 까닭은 서민경제와 더 밀착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부문 최강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만큼 개인고객이나 소매금융보다 기업금융에 더 치중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으면서 은행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서 연체율이 올라갔다. 빌려준 후 받지 못한 돈이 고스란히 손실로 처리되면서 우리은행은 어려움에 빠진 것. 국민 하나·외환 신한, 4대 은행 중 우리은행의 부실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은행이 선택한 것은 소매금융 확대와 개인고객 밀착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점포 수를 늘려야 했다. 우리은행 측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도시 위주로 점포를 신설했던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우리은행은 인천이나 일산신도시, 광교신도시 등 개인고객이 많고 상권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곳에 점포 신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부실이 위기 원인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감량경영에 따라 우리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점포 감소 추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점포 수를 한창 늘릴 당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이도 적지 않다. 앞서 말했듯 다른 대형 은행들이 몸을 사리는 와중에서도 우리은행만이 외형을 확대했던 것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금융 민영화가 한창 뜨거운 이슈였던 때다. 앞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시 우리은행이 점포 수를 확대한 것에는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외형을 확대하면서 매각 시 유리한 점수를 받고자 하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금방이라도 성사될 것 같던 우리금융 민영화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다시 들어가자 우리은행이 외형 확대보다 몸집 줄이기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로서는 민영화가 최대 과제”라며 “민영화가 먼저지, 덩치를 키워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부인했다. 어떻게든 매각이 우선인 상황에서 매각에 방해되는 일을 벌일 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는 대체 어찌 된 것일까. 금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에서 한창 서두를 때도 업계에서는 우리금융 민영화가 현 정권 내에 성사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며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닐뿐더러 정권 말 금융권이 움직이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불황이 언제 바닥을 칠지 섣불리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 제기되는 가장 밝은 전망은 ‘내년 하반기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나마 이에 대해서도 수긍하는 사람보다 고개를 젓는 사람이 더 많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경기 회복 신호 중 하나가 주식거래대금 상승인데 거래대금 상승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것이 더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유럽 위기와 G2(미국·중국) 재정 불안 등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방향성이 보이기 전까지 은행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점포 수 통폐합 추세가 은행권에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