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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다. 유경선 회장과 동생 유순태 EM미디어 대표가 부장검사에게 6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 때문이다. 유진그룹 측은 “그룹과는 무관한 돈”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상황이 유리하지 않다.
앞서 10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쇼핑의 하이마트 인수를 최종 승인하면서 유진그룹은 하이마트 지분 매각 대금 6556억 원을 받았다. 유진그룹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매각 대금으로 앞으로 펼쳐나갈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한껏 고무됐다. 유진그룹 측도 “매각 대금이 들어와 신사업 구상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들떠 있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남짓 지나 총수 형제가 동시에 검찰 소환되면서 기대감은 절망감으로 변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신사업 구상은 올스톱”이라면서 “사태가 잘 마무리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유경선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갔다. 유 회장은 2007년 말 인수한 하이마트를 직접 경영하기 위해 지난해 말 하이마트의 대표체제 변화 등을 시도했다. 그러나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을 비롯한 하이마트 임직원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유 회장의 시도는 가로막혔다. 지난해 12월 1일 유진그룹과 선종구 전 회장 등 주요 주주들이 하이마트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것을 발표하면서 유진그룹은 결국 하이마트를 놓아버렸다.
물론 팔고 싶어 판 것은 아니다. M&A(인수·합병)업계 관계자는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로만 연간 3000억 원씩 나오던 하이마트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유 회장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비록 하이마트를 매각하는 게 안타까웠을지 모르지만 금전적으로나 이미지 면에서 유 회장이 오히려 얻은 게 매우 많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일부 지분을 되팔고 증자도 하며 재평가 받은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대금은 4376억 원. 이를 6556억 원에 매각했으니 5년 만에 2180억 원을 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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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경선 회장이 하이마트를 매각해 2000억 원대 차익을 남기며 웃었다. 반면 검사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포착되며 이미지를 구겼다. 일요신문 DB | ||
롯데쇼핑의 하이마트 인수에 대한 공정위 승인과 그에 따른 매각 대금 6556억 원을 받은 유진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신사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지난 11월 초에는 전남 장성에 있는 시멘트공장을 매각해 신사업 진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투자자들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각에서 ‘매각 대금을 빚 갚는 데 쓸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6556억 원을 몽땅 빚 갚는 데 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욱이 유진그룹은 지난해 채권단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졸업한 상태다. 빚 상환보다는 또 다른 M&A나 신사업 진출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지지부진하던 주가도 공정위 발표와 매각 대금 입금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승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단 장성 시멘트공장 매각에 따른 중단사업 손실이 400억 원가량 될 것으로 파악되면서 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진그룹은 광양 시멘트공장도 매각키로 함으로써 시멘트사업을 완전히 정리할 계획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멘트사업은 그나마 낫다고 알려져 있다”며 “그런 사업을 정리한다는 것은 현금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귀띔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광양 공장 매각 대금이 1월에 들어올 예정”이라며 “거기서는 400억 원가량 오히려 이익이기에 장성공장 매각에 따른 중단사업 손실을 메울 수 있다”고 해명했다. 시멘트까지 정리한 유진그룹의 주축사업은 이제 레미콘과 증권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류업(한국통운)과 나눔로또 운영 등 다른 사업도 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비할 바가 못 된다.
유경선 회장은 그룹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었던 듯하다. 몸집을 줄이면서 현금을 확보한 다음 이를 신사업 추진이나 M&A의 실탄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검찰에 소환 조사받으면서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됐다. 유진그룹 측은 “검찰 기소 전까지 뭐라 말하기 힘들다”며 “검찰 기소 후에나 입장 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경선 회장은 지난 2000년대 중후반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 로젠택배(재매각), 하이마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국내 M&A 시장 강자로 떠오른 바 있다. M&A 판이 열릴 때마다 유진그룹은 늘 단골후보에 포함됐다. 심지어 대우건설, 극동건설 인수전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강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른 바 있다. 유진그룹이 인수한 로젠택배나 하이마트는 모두 이익을 남기고 되팔았다.
그런데 만약 대우건설이나 극동건설을 인수했다면 유진그룹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앞서의 M&A업계 관계자는 “유진이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며 “대우건설이나 극동건설을 인수했다면 유 회장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운이 수렁에 빠진 유 회장을 구해줄 수 있을까.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