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부분은 재벌정책인데, 이 부분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좀 더 시장 친화적이란 평가다. 순환출자 금지도 신규만 불허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에는 반대하는 게 골자다. 익명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박 후보의 공약대로라면 재벌로서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출자총액 제한으로 인한 신규투자 제약도 없다”면서 “재벌 입장에서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기회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출자를 통한 신규투자도 지금까지와 같이 할 수 있어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신규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까지 모두 금지하는 한편 출자총액제한도 부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재벌로서는 당장의 사업보다 지배구조 변화에 대응하느라 시간과 자본을 쓸 수밖에 없다. 또 신규 출자 제약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여의도 증권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기업들의 재무부담은 늘고, 투자여력은 축소돼 주가에 부정적이라는 풀이다.
경제민주화의 또 다른 한 축은 양극화 해소를 통한 중산층 재건이다. 중산층은 투자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시장 자체보다는 ‘환경’에 해당한다. 이 부분만큼은 여의도의 기대가 박 후보 보다는 문 후보 쪽에 좀 더 크다. 한 펀드 매니저는 “현 정부 들어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의 증권투자 여력이 사라져 투자저변이 상당히 좁아졌다”며 “누가 돼도 당장 중산층을 되살리기는 버겁겠지만, 전통적으로 부유층 보다는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 쪽이 좀 더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구사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실제 민주당 또는 민주당 계열 정권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는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펀드투자 열풍이 증시를 떠받치는 주요한 기반이 됐다. 특히 2006년 하반기 이후에는 증시 최대 큰손인 외국인을 따돌릴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증권업계는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박 후보보다는 문 후보 쪽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재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이 워낙 큰 탓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지나친 낙하산 인사에 각종 규제, 증시 인프라 측면에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면서 “현재의 규제환경을 뜯어고치려면 어느 정도는 현 정부를 계승할 수밖에 없는 박 후보 쪽보다는, 전면적인 개혁에 나설 문 후보 쪽이 좀 더 나을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고 귀띔했다.
일례로 대형 증권사들이 강하게 주장했던 ‘수쿠크(이슬람채권)’ 법안은 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혜훈 전 의원 등에 의해 좌절됐고,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새누리당의 미지근한 협조 때문에 국회통과가 좌절됐다는 게 증권가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시장에서는 독이라 여겨지는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이나, 주식양도차익과세 등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적극적인 편이다.
또 다른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이라고 시장을 옥죄는 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의석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면서도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새누리당에 대해 실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털어놨다. 대형 자산운용사의 핵심 관계자도 “보통 보수 정권들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치다 보니 금융은 곁가지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면서 “증권이나 금융부문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식 간섭이 많은 것도 보수정권의 특징”이라고 꼬집었다.
투자 종목 차원에서 보면 다시 박 후보 쪽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친 재벌 성향의 박 후보가 당선되면 증시의 근간이 되는 수출 대형주가 상대적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다. 현재 코스피 시장 기준 상위 10개 종목(공기업 및 금융회사 제외)의 시가총액은 전체 시장의 37%를 차지한다. 중견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친 재벌 정책이 계속되면 대형주 랠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며 “양극화야 심해지겠지만, 어쨌든 시장 영향력이 큰 대형주가 움직이면 주가지수도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비교해 문재인 후보 공약을 보면 대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 일례로 지주사의 부채비율을 200%에서 100%로 낮추게 되면 지주회사의 경영 여지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자회사 지배가 목적인 지주회사이다 보니 배당 외에는 수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자회사나 신규사업에 새롭게 출자할 때는 빚을 내서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빚을 낼 수 있는 한도를 자기자본(대부분이 자회사 지분)의 2배에서 1배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좋게 보면 우량 자회사 지분을 바탕으로 비우량 자회사를 지원할 여지를 줄인 셈이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투자에 대한 여지를 줄인 것이 된다. 이에 대한 증시 전문가의 분석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지주사가 저평가 돼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회사의 배당을 좀 더 늘릴 수 있어 지주사 투자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어느 후보가 되든 금융권에 불어 닥칠 대규모 인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공존한다. KB, 신한, 우리, 하나, 이 4대 금융지주의 최고경영진이 모두 교체될 수도 있다. 대부분이 현 정권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4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진의 연쇄 이동이 점쳐진다. 재벌계 증권사들도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의 성향과 코드에 맞춰 일부 경영진을 개편할 가능성이 있다.
증시 유관기관들의 수뇌부들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한국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은 모두 청와대나 정부의 뜻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바뀌는 곳이다. 이밖에 금융감독기관과 함께 증권업계에 또 다른 ‘슈퍼 갑’인 정부 관련 기금, 즉 국민연금 등의 인사에 맞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주요 임원진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