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에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
금산분리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1787년 처음 설립된 은행들이 상업(Commerce)을 영위할 수 없도록 인가조건을 내걸면서 금산분리가 시작되었으며, 20세기 초 JP모건 등 금융자본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모든 산업을 장악, 공룡화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금산분리를 강화했다. 그 후 미국도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우리나라처럼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염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우려는, 2005년 7월 월마트가 1956년 은행지주법(Bank Holding Company Act)이 재확인한 금산분리원칙의 유일한 예외인 ‘ILC(Industrial Loan Company, 산업은행 또는 산업대출회사)’를 신청했을 때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ILC는 1910년 변호사 아서 모리스(Arthur Morris)가 근로자들에게 소액대출을 하기 위해 세운 분할상환대부업체가 원조인데, 그 후 GM이 자동차할부금융을 위해, GE가 중소기업사업자금 대출을 위해 각각 ILC를 설립하면서 크게 확장됐고, 현재 40여 ILC가 은행에 준하는 영업을 하면서 총자산이 150조 원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월마트가 고객들의 대금 결제업무를 ILC를 통해 직접 하게 되면 소매은행업의 강자로 등극하게 될 것을 염려한 많은 이들이 금산분리원칙을 내세우면서 극렬히 반대한 것이다. 이에 2007년 월마트는 ILC 인가신청을 자진 철회했고, 미 의회는 신규 ILC 설립인가를 잠정 금지하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강력한 금산분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는 정확히 말하면 ‘은산분리(銀産分離)’다. 금융지주사, 즉 은행자본은 산업(금융업을 제외한 제조업 등 나머지 업종)에 속한 기업을 소유할 수 없고,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브이소사이어티’ 멤버들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려고 추진했다가 금산분리원칙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이를 포기한 것이 대표적 예다.
산업자본이더라도 은행을 제외한 보험, 증권, 카드, 캐피탈,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은 소유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 재벌은 해당 금융업종들을 주요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언급할 것은 산업자본이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ing)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는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IB인 증권회사를 산업자본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하는가다.
또한 미국은 금산분리의 유일한 예외로 ILC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저축은행도 산업자본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바, 우리나라도 산업자본이 저축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하는지가 문제다. 지난 9월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증권 등 제2금융권에도 금산분리를 확대하자는 화두를 꺼냈으나 새누리당 자체 논의 과정에서 이를 추진하지 않기로 정리되었다.
금산분리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금융 정책상의 중요한 목표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방지 목적까지 더해져서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를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금산분리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실시한 금산분리 완화 정책의 결과로, 재벌들의 금융산업에 대한 지배력이 더 커졌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재벌들이 보험사 등을 통하여 지배하는 금융계열사가 2008년 74개에서 2012년 112개로 4년간 51% 증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현 정부는 2009년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한도를 4%에서 9%로 상향조정하였고, 비은행지주회사(예컨대 재벌소유 보험지주회사)가 비금융자회사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모두 이와 같은 금산분리 완화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여 금산분리를 강화하고자 한다.
문재인 후보는 ①산업자본의 은행주식 소유한도를 종전과 같이 4%로 축소 ②더 나아가 사모펀드(PEF)의 은행지분소유와 관련된 예외규정 폐지 ③비은행지주회사의 비금융자회사 소유도 전면적 금지 ④공정거래법 제11조를 개정해 재벌의 금융계열사가 갖고 있는 비금융계열사 지분 의결권 5%로 즉시 제한 ⑤금융회사 대주주에 대한 주기적인 동태적격성 심사제도를 도입해 도덕적 해이 현상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강도 높은 금산분리 방안이기에 재벌들의 사활을 건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후보는 ①은행주식 소유한도 4%로 축소 ②비금융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5%로 5년에 걸쳐 제한 ③대주주 동태적격성 심사제도 도입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입장이 거의 같다. 그러나 사모펀드의 은행지분 소유 및 의결권 행사는 계속 허용하되 재벌이 펀드의 지분을 20% 이상 갖지 못하게 축소하고, 중간금융지주사 제도를 도입해 비은행지주회사가 비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에서 문 후보와 다르다.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은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이 자회사인 증권회사 등 금융계열사를 처분하지 않아도 되도록 고안해낸 방안인데, 이는 금산분리원칙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만 중간금융지주사를 설립할 수 있고 일반지주회사는 이를 설립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현재의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에 대하여 금산분리의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완화이며,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한 산업자본에게 금융계열사 처분 의무를 면제해 준 것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두 후보가 비록 즉시 제한이냐 5년에 걸친 단계적 제한이냐가 다르지만, 공히 내건 ‘금융계열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지분 의결권 5% 제한’은 위헌 논란이 일 듯하다. 재산권의 일종인 의결권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유재산 제도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소원이 제기될 수 있다.
▲ 하종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