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가 집권 중 폭로 공세에 시달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
미국 대통령들이 아로새긴 ‘스캔들의 역사’는 대단하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시작된 ‘부적절한 관계’는 10대와 원조교제를 했던 제임스 가필드(20대)로 이어지며, 워런하딩(29대)은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고 그로버 클리블랜드(22대)는 친구의 미망인과 사랑에 빠졌다. 우드로 윌슨(28대)은 불륜녀로부터 이혼을 강요받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32대)는 아내의 비서와 정사를 벌였으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는 여자 운전기사와 섹스를 했다. 존 F 케네디(35대)는 숱한 여배우는 물론 마피아의 정부와도 ‘통하는’ 관계였다. 리처드 닉슨(37대)은 중국인 웨이트리스와 지저분한 소문을 만들었고 앤드류 잭슨(7대)은 유부녀인지 모르고 만난 여자와 2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클린턴을 능가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였냐고? 다음은 언론에 폭로된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의 대화 내용이다. “왜 폴라 존스 사건을 질질 끌죠? 돈을 줘 버리면 되잖아요.”(르윈스키) “그렇게는 할 수 없어.”(클린턴) “왜요?”(르윈스키) “그러면 ‘그들’이 모두 나타나게 될 테니까.”(클린턴) “그게 어때서요?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데요?”(르윈스키) “(한숨을 내쉬면서) 셀 수 없지….”(클린턴).
그 ‘셀 수 없는’ 여인들 중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제니퍼 플라워스였다. 아직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였던 1992년 2월. 과거 누드모델이었으며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플라워스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였던 시절 임시 직원 생활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1980년부터 12년 동안 클린턴과 성관계를 가져왔다고 주장했고, 결국 클린턴도 인정했다.
이 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1993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는 높은 지지율과 인기로 사랑 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약 1년 뒤 1994년 5월에 폴라 존스와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주지사 시절 스태프로 만난 존스는 1991년 성희롱을 당했다며 7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 대통령은 그녀를 만난 기억이 없다며 부인했고, 1심에서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송을 면제한다는 판정을 내리자 존스는 즉각 항소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이 대통령의 면책 특권과 무관하다고 밝혔고 클린턴은 증언을 해야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폴라 존스가 요청한 증인에 모니카 르윈스키가 포함되었던 것. 백악관 인턴이었던 그녀는 당시 증언에서 클린턴과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불어닥칠 폭풍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1998년 연방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기각했는데 당시 판사였던 수전 웨버 라이트는 아칸소대학 시절 클린턴의 학생 중 한 명이었고, 존스는 문제를 제기하며 또 다시 항소했다. 결국 클린턴은 85만 달러로 합의하며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존스와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건은 계속 이어졌다. 1997년 11월에 변호사인 돌리 카일 브라우닝이 30년 넘게 클린턴과 내연 관계였다는 걸 폭로한 것. 1959년부터 일어난 일이었고 그 내용을 담은 반자전적인 소설을 썼지만 클린턴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출판을 막았다며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폴라 존스가 85만 달러의 위자료를 받은 1998년엔 폭로가 이어졌다. 자신도 존스처럼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포문은 캐슬린 윌리가 열었다.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인 윌리는 1993년에 클린턴이 자신을 백악관에서 애무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4년 동안 클린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고 클린턴은 “힘들어하기에 이마에 키스한 정도”였다고 맞섰다. 결국 윌리는 근거와 일관성이 없는 증언으로 인해 사건을 법정까지 끌고 가진 못했다. 이어 후아니타 브로드릭이 나타났다. 클린턴이 아칸소에서 검찰 총책임자로 일하던 시절인 1978년, 클린턴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당시 브로드릭은 클린턴의 주지사 선거 운동을 돕고 있었는데 집무실에서 자신을 강간했다면서, 자신의 남편이 돈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자 격분해서 20년 전의 일을 터트린다고 말했다. 브로드릭의 폭로가 터지자 클린턴은 영부인 힐러리와 잠시 별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칸소 출신으로 1982년 미스 아메리카였으며 이후 배우로 활동 중이던 엘리자베스 워드 그레이슨은 1983년에 클린턴을 우연히 알게 되어 단 한 번이지만 관계를 가졌다며, 힐러리 클린턴에게 “당신의 남편과 섹스를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클린턴 부부와 부동산 사업과 금융 관계로 얽히며 그들의 친구인 짐 맥두걸과 수전 맥두걸 부부는 화이트워터 스캔들의 장본인이 되어 모두 유죄 판결을 선고 받았는데, 짐 맥두걸은 자신의 아내가 클린턴의 정부였다는 걸 폭로했다. 미스 아칸소였고 토크쇼 진행자였던 샐리 퍼두도 클린턴이 주지사 시절에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시절은 수많은 여성들의 폭로의 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거대한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고, 대통령은 DNA 검사까지 해야 했으며 결국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엔 ‘클린턴 VS 르윈스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